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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강성 Jul 19. 2024

칩워(Chip War) (최종)

크리스 밀러(Chris Miller) 지음

파트 7 중국의 도전


42장 메이드 인 차이나


"사이버 안보 없이는 국가 안보도 없다." 2014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시진핑이 선언했다. "또한 정보 없이는 근대화도 없다" 중국 국가주의자들에게 시진핑의 "중국몽"은 국가의 부흥과 강대국의 지위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기업가들 앞에서는 경제 개혁을 약속했다.

[2014년 시진핑의 신년사 출처 구글 이미지]

그가 중국 공산당을 지배한 10년간 그는 가장 큰 위험은 디지털 세계라고 믿었다. 자국민들을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접속하지 못하게 막아 놓은 채, "인터넷은 세계를 지구촌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당당히 밝힐 정도로 온라인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인터넷 기업이 그 핵심 구성 요소에서 외부 세계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면, 그 공급망의 '생명줄'은 다른 이들의 손에 쥐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진핑은 2016년 이렇게 선포했다. 시진핑이 가장 우려한 것은 중국의 컴퓨터와 스마트폰, 데이터센터를 움직이게 하는 반도체들이었다.


그가 말했다시피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운영체제는 오직 인텔 칩과 짝을 이룬다." 그러니 대부분의 중국 컴퓨터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산 칩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2000년대와 2010년대, 중국이 가장 많은 돈을 쓴 수입 제품은 석유가 아니라 반도체였다. 강력한 반도체는 경제 성장의 연료가 되는 탄화수소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석유와 달리 반도체는 중국의 지정학적 경쟁자들이 지배하는 물건이다.


중국은 이미 수조 달러의 테크 기업들을 낳고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 양대 강국으로 자리 잡았으나, 중국의 감시 시스템마저 인텔과 엔비디아 같은 미국 기업의 칩이 없으면 작동할 수 없고, 그 모든 중요 기술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외국산 실리콘 위에 서 있는 것이다.


43장 돌격을 외쳐야 한다


2017년 1월, 시진핑은 스위스의 스키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사흘 전에 열린 그 행사에서 시진핑은 "역동적인 혁신 주도형 성장 모델"을 통한 "결과적 윈윈"을 약속했고, 트럼프를 겨냥하여 "무역 전쟁은 그 누구에게도 승리를 안겨 주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2017년 다보스 포럼의 시진핑 출처 구글 이미지]

사흘 뒤 워싱턴에서는 트럼프가 충격적일만큼 공격적으로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제품을 만들고, 우리의 기업을 훔쳐 가고, 우리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보호주의가 우리를 더 큰 번영과 힘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취임 연설하는 트럼프 출처 구글 이미지]

시진핑의 연설은 세계 지도자들이 비즈니스의 거물들에게 연설할 때 말해야 하는 일종의 미사여구였다. 그는 그 몇 달 전 베이징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전혀 다른 어조로 중국의 빅 테크 기업(화웨이, 알리바바 등)과 공산당 지도자들을 질책했다. "가급적 최대한 빨리 핵심 기술의 돌파구를 뚫어야 한다"라고 일갈했다.


여기서 말하는 "핵심 기술"이란 반도체를 뜻했다. 그는 "우리는 강력한 우방을 만들어 단결된 태도로 전략적 요충지를 공략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돌격을 외칠 뿐만 아니라 단결을 외쳐야 하며, 우리의 가장 강력한 협력을 통해 힘을 모아서 돌격대와 특공대를 꾸려 전선을 돌파해야 한다."고 외쳤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을 이끄는 일당제 국가, 반도체 산업은 그들이 감행하는 조직적 돌격에 맞서야 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자국에서 최신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시장 경제와 군사적 방법을 혼용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칩은 다른 어디에서도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중국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점차 초강대국이 될수록 외국산 반도체에 대한 의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중국 제조 2025"라는 계획을 수립했다. 2015년 현재 85퍼센트에 달하는 반도체 수입을 2025년에는 30퍼센트까지 줄이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모든 지도자가 중국에 반도체 산업을 건설하고자 했지만, 문화혁명을 통해 모든 노동자가 스스로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세상을 꿈꾸었던 마오쩌둥이나 리처드 창의 SMIC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중국 기업을 놓고 본다면 SMIC는 상대적으로 성공한 반도체 기업이라 할 수 있었다. 중국이 보유한 다른 파운드리 기업인 화훙과 그레이스는 아주 작은 시장 점유율만 갖고 있었고, 그나마도 국영 기업 및 지방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사업 영역의 주문을 통해 나오는 것이었다.


한 중국 파운드리 기업의 전직 CEO에 따르면, 모든 중국 지방 정부 수장은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에 칩 생산 설비를 짓기를 원했다. 겉으로는 보조금을 제시하며 자기 관할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하지만 은근한 협박도 잊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파운드리 기업은 전국 곳곳에 소규모 시설을 깔아두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비효율이 뒤따랐다. 외국인들은 중국 반도체 산업에 엄청난 잠재력을 보았지만, 재앙과 같은 기업 지배 구조와 업무 프로세스가 어떻게 든 먼저 해결되어야만 한다.


한 유럽 반도체 기업의 임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 기업에서 '자회사를 합시다'라고 말하면, 저는 '돈을 잃어봅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중국과의 합작 투자는 대체로 정부 보조금에 중독된 채 제대로 된 신기술은 거의 만들어 내지도 못하는 결말을 맞게 마련이었다.


2014년 초 베이징은 반도체 지원금을 두 배 늘리기로 결정했지만 중국은 약점을 안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실리콘밸리와 관계를 형성하는 대신에 끊어 버려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성채를 공격하라"고 외쳤고, 이것은 반도체 산업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였다.


반도체 독립의 구상은 세계화의 종말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거래되며 가장 가치 높은 상품의 생산을 뒤바꾸겠다는 것이었다. 2017년 다보스 포럼에서 시진핑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연설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과격한 세계 경제 개편의 구상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4장 기술 이전


"만약 중국 같은 나라라면, 13억 인구를 가진 그런 나라라면 IT 산업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IBM의 CEO 지니 로메티(Ginni Rometty)가 2015년 중국개발포럼에서 청중을 향해 한 말이다. "어떤 회사는 그걸 두렵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IBM은 ... 더 큰 기회로 봅니다."

[2015 중국개발포럼 지니 로메티 출처 구글 이미지]

반도체 자급자족을 향해 속도는 내는 베이징의 핵심 관심사 중 하나는 서버용 반도체였다. 2010년대 중반은 세계 각지의 데이터센터가 대부분 x86 명령어 집합 체계에 기반한 칩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IBM의 "파워" 칩은 한때 기업용 서버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2010년대부터 설 곳을 잃었다. 칩과 서버를 중국 고객에게 판매하는 대신 IBM은 반도체 기술을 중국 협력사에 제공했다.


퀄컴 역시 암 아키텍처를 이용한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사업의 활로를 뚫고자 했다. 퀄컴과 화신퉁반도체(华芯通半导体) 합작 투자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지식과 기술이 첨단무기 관련 파이티움(Phytium)에 이전되었다.

[출처 구글 이미지]

AMD는 중국기업 및 정부기관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중국시장을 겨냥해 개조된 X86 칩을 생산 허가해 주기로 했다. 중국의 저명한 반도체 전문가들은 해당 계약이 "핵심 기술"을 지배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우리는 더 이상 외국에 코를 꿸 필요가 없다"고 국영 언론에서 떠들었다.

[AMD 베이스 중국의 x86 반도체 출처 구글 이미지]

⟪월스트리트저널⟫은 그 합작 회사에 수곤(Sugon)이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곤은 중국의 슈퍼컴퓨터 제조회사로 "중국의 국방과 안보에 기여" 하는 것을 "근본 사명"으로 여기는 회사였다. 2017년 AMD는 수곤을 전략적 파트너로 언급했다. 수곤이 만들려는 슈퍼컴퓨터의 주된 용도는 "핵무기와 초음속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반도체 기업에게 중국은 너무도 탐나는 시장이어서 기술 이전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몇 기업은 심지어 중국 지사의 통제권을 통째로 넘길 것을 제안받기도 했다.


2018년, 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인 암은 중국 지사 지분의 51퍼센트를 투자자들에게 매각하고 49퍼센트를 자사가 보유했다. 그 보다 두 해 전 암은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에 인수되었는데, 소프트뱅크는 중국 기술 스타트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상태였다.


그러므로 소프트뱅크로서는 투자 성공을 위해 중국의 규제 조치가 자사에 유리하게 작동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미국 규제 당국의 정밀 조사에 직면했다.


미국은 소프트뱅크가 중국과 맺고 있는 관계가 베이징의 정치적 압력에 약해질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암을 400억 달러에 인수했지만 암의 전 세계 매출 중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지사의 지분 51퍼센트를 고작 7억7500만 달러에 팔아 버렸다.  


암 차이나를 분리해 버린 결정의 논리는 무엇이었을까? 소프트뱅크가 중국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아 암 중국 지사를 매각했다는 분명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암 차이나를 중국에 매각한 소프트뱅크 손정의 출처 조선일보]

암의 경영진은 매각의 논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니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암의 임원 중 한 사람이 말한 바에 따르면, "중국 군대나 중국의 감시 기구를 위해 (시스템 온 칩) 반도체를 만들 때, 중국은 그런 과정이 중국 내에서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런 새로운 합작 회사는 그런 걸 만들 수 있죠. 과거에는 우리가 할 수 없던 일입니다.”


그의 설명이 계속됐다. "중국은 보안과 통제 가능성을 원합니다. 궁극적으로 중국은 자신들의 기술을 통제하고 싶어 하지요. ... 우리가 가져간 기술을 기반으로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도 혜택을 볼 겁니다." 이 설명에 깔린 상업적 논리는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하지만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자면 소름 끼치는 말이다.


소프트뱅크를 규제하는 일본 관료든, 암을 규제하는 영국 관료든, 암의 지식재산 중 상당 부분을 관할하는 미국의 관료든, 이 사안에 대해 더 파고들어 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칩 제조사는 그들의 핵심기술을 목숨 걸고 지키려 한다. 하나 거의 모든 반도체 회사는 핵심기술이 없다. 그들이 주도하는 특정분야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만 지불하면 자신의 기술을 남과 기꺼이 나누려 드는 것이다.


기업의 눈으로 보자면 IBM, AMD, 암이 중국에서 맺은 계약은 그 나름대로 합리적인 비즈니스 논리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모아 놓고 보면 기술 유출의 위험을 키운 행동들이다. 중국과의 기술 이전 협약이 "큰 기회"라는 IBM의 CEO 지니 로메티 말은 맞는 말이었다. 문제는 그 이득을 IBM만 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45장 일어날 합병은 일어난다


자오웨이궈(趙偉國)는 아버지가 문화대혁명 동안 체제에 저항하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추방되어 중국 서부 접경 지대에서 돼지를 기르고 양을 치던 어린아이였다. 그는 칭화대학교에서 전자공학 학위를 취득하고 칭화유니 그룹의 부회장에 올라 중국 언론의 찬사를 받는 반도체 억만장자가 되었다.


칭화유니그룹은 칭화대가 설립한 회사로 대학의 과학 연구를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표방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부동산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회사로 보였다.


2004년 자오는 자신의 투자 펀드인 베이징젠쿤그룹을 설립해 부동산, 광산, 그 외에 고위 정치권과의 연줄이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여러 분야에 투자해 왔다. 자오는 초기 100만 위안을 45억 위안으로 키우는 데 성공했고, 칭화유니그룹의 지분 49퍼센트를 인수했다. 칭화유니그룹은 후진타오 전 주석의 아들이자 자오의 개인적 친구로 통하는 이가 지주회사에서 공산당 비서로 일했고, 칭화대 총장은 시진핑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가 맡고 있었다.

[칭화유니그룹과 자오웨이궈 출처 구글 이미지]

2013년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기업에 대한 막대한 지원금을 제공하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한 직후, 자오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를 결심했다. 그는 칭화유니그룹의 반도체 전략이 정부의 뜻에 따른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부정했다. ”우리가 내린 모든 결정은 시장 중심의 결정이지요“


자오가 반도체 제국을 세우기 위해 쓴 돈의 총합은 충격적일 정도였다. 2013년 중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팹리스 반도체 설계회사인 스프레드트럼커뮤니케이션즈와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두 곳을 인수하면서 수십억 달러를 썼다.


다음 해인 2014년 자오는 인텔의 무선 모뎀 칩을 칭화유니그룹의 스마트폰 프로세서에 탑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자오는 이번 협업을 통해 칭화유니그룹이 인텔의 반도체 설계 역량을 배울 수 있기를 원했다.


칭화유니그룹은 XMC(훗날 YMTC)에 자금 지원을 제안했는데 새로운 팹을 짓기 위해 150억 달러를 요구하는 XMC에게 “세계 시장의 선두 주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은 투자가 필요하다”며 240억 달러를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 정부의 후원을 받는 “빅 펀드”는 칭화유니그룹의 회사채 매입의 첫 번째 트랑슈(tranche)로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그의 투자 전략에 정부에서 승인 도장을 찍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015년 자오는 직접 대만을 방문하여 반도체 설계와 제조 등의 분야에서 중국 투자를 금지하는 규제를 풀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리고 대만의 파워테크놀로지 지분 25퍼센트를 인수했다. 그리고 미디어텍(MediaTek)과 TSMC의 지분을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흘리고 다녔다.


2015년 7월에는 마이크론 인수 분위기를 조성했다. 230억 달러로 중국이 인수한 미국기업 중 가장 큰 액수였다. 마이크론은 미국의 안보 우려로 볼 때 거래의 현실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9월에는 37억 달러에 또 다른 낸드 메모리 칩 생산 기업 지분 15퍼센트를 매입하려다가 실패했다.


2016년 봄 미국 반도체 회사인 래티스세미컨덕터 지분 6%를 조용히 매입했다. 래티스는 캐니언브리지 투자회사의 인수 제의를 받았는데 중국 정부의 은밀한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미국 정부는 그 거래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같은 시기에 캐니언브리지는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 이매지네이션(Imagination)을 인수했다. 그 인수는 이매지네이션의 미국 자산을 배제하도록 짜여있어 워싱턴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영국 규제 당국은 거래를 통과시켜 주었는데 3년이 지난 후에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되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자오는 스스로를 열성적인 기업가로 여기고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큰 기업 사이 합병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자오는 이렇게 밝혔다. “국가주의나 정치적 맥락이 아니라 사업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칭화유니그룹의 활동 내역을 비즈니스 논리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은 모두 시진핑이 공개적으로 밝힌 “돌격 앞으로” 방침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광란의 투자가 벌이지고 있는 가운데 칭화유니그룹은 다시 2017년 중국개발은행으로부터 약 150억 달러, 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로부터 70억 달러의 새로운 “투자금”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모두 중국 정부의 돈줄이었다.


46장 화웨이의 부상


화웨이는 무선 셀 기지국, 스마트폰 사업부, 해저광케이블부터 클라우드 컴퓨팅까지 전 세계 모바일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회사로 성장했다. 다만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아주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미국의 국가 안보 문제와 얽혀 20여 년간 다투고 있었다는 것이다.


런정페이는 삼성의 이병철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업을 굴렸다. 이병철이 삼성을 세계 최고의 프로세서와 메모리 칩을 만드는 테크 기업으로 키워 낸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째, 정부 규제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값싼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적 관계에 계속 공을 들였다. 둘째, 서구와 일본이 개척한 특정 제품군을 같은 품질에 나은 가격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을 모색했다. 셋째, 새로운 고객을 찾기 위해서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회사들과 경쟁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주저 없이 세계화를 선택했다.


화웨이는 초창기부터 외국과의 경쟁을 받아들였다. 런정페이의 사업 모델은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알리바바나 텐센트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는 해외에서 선구적인 개념을 받아들여 가성비 좋은 버전을 만들어 냈고, 그것을 다시 세계 시장에 팔아서 경쟁사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가져왔다.


화웨이가 세계 시장을 중심에 둔 기업이라는 것은 1987년 창업 당시부터 분명했다. 처음 선전에서 전화 스위치 장치를 수입하는 사업으로 시작한 런은 홍콩의 사업파트너들이 직접 수요자들과 거래하려고 런과의 거래를 끊자 직접 그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고, 1990년대 초 연구 개발에만 수백여 명을 고용한 회사가 되었다.


화웨이의 장비는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데이터 송수인 분야의 중요한 때로는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화웨이는 무선 셀 기지국 분야에서 핀란드 노키아, 스웨덴 에릭슨과 더불어 세계 3대 사업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화웨이 5G 장비와 글로벌 통신장비 점유율 출처 구글 이미지]

화웨이의 비판자들은 그 성공이 지식재산 도둑질 덕분에 가능했다고 비난하는데 분명히 그런 면이 있다. 화웨이는 지식재산 침해로 여러 차례 고발당했고 그중 일부는 인정한 바 있다. 2003년 자사 라우터에 사용된 코드 중 2%가 미국의 시스코 것을 베껴온 것을 시인했다. 캐나다 통신회사 노르텔이 중국 지원받는 해킹 공격을 당했다고 발표했는데 그 결과 혜택을 본 것은 화웨이였다고 한 캐나다 신문이 보도하기도 했다.


화웨이는 효율적인 제조공정을 개발해 낮은 비용으로 고객이 만족할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냈다. 연구개발 비용은 매년 150억 달러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과감하게 IBM 컨설팅 부문을 고용해 세계 수준의 기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배워왔다.


또한 중국 정부 역시 화웨이의 편이었다. 화웨이는 성장 과정에서 처음에는 선전의 지방 정부로부터, 중간에는 국영 은행으로부터, 나중에는 베이징의 중앙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아 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화웨이가 중국 정부로부터 받은 것을 환산해 보면 750억 달러에 이른다.


런정페이가 인민해방군에서 화웨이로 옮기게 된 과정이나 화웨이의 소유 구조는 복잡하고 불투명한데 화웨이가 중국 정부가 만든 기업이라는 주장에는 확실한 근거가 제시된 바는 없다.

[런정페이 인민해방군 당시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미국 정보 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화웨이는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확장했다. 화웨이가 성장해 나감에 따라 통신 네트워크 장비를 판매하는 서구 기업은 합병하거나 시장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캐나다 노르텔은 파산해 버렸고, 벨연구소를 물려받은 알카텔루슨트는 통신 장비 사업 부문을 노키아에 매각했다.

[파산한 노르텔 본사 출처 구글 이미지]

화웨이의 야망은 커져만 갔다. 스스로 스마트폰을 만들어 팔기 시작해서 2019년 출하량 기준으로 애플, 삼성과 경쟁을 하고 있다. 더욱이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 사태 이후 공급망 확보를 위해 자사 스마트폰용 반도체 설계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2018년 화웨이 스마트폰 출처 구글 이미지]

화웨이는 자사 제품이 필요로 하는 250개의 핵심 반도체를 선별하여 가능한 한 많은 칩을 자체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들 칩은 주로 통신 기지국 구축 사업과 관련 있을 뿐 아니라 화웨이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화웨이 역시 칩 제작은 외주로 넘기기로 결정했다. 자연스럽게 대만의 TSMC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2010년대 말 화웨이의 하이실리콘 사업부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 중 하나가 되었고, TSMC의 두 번째로 큰 고객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칩 설계 산업이 미국의 거의 독점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위기에 놓인 것이다.

[화웨이의 5G Multi-mode Chipset 'Balong 5000' 출처: HiSilicon)

화웨이가 한국의 삼성이나 일본의 소니가 수십 년 전에 해냈던 것을 성공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보여 줄 수 없었다. 바로 첨단 기술 생산 방법을 배우고, 세 계 시장에서 승리하고,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미국의 선도적 테크 기업에 도전하는 일을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화웨이는 모든 환경에 컴퓨터가 사용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를 앞서갈 수 있는 고지를 이미 차지한 것처럼 보였다. 차세대 통신 기반 설비인 5G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47장 5G는 미래


런정페이가 홍콩의 전화 스위치를 수입해 오는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네트워크 장비는 어떤 전화기를 다른 전화기에 연결해 주는 기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제 화웨이는 무선 통신망으로 전화와 데이터를 주고받는 최신 세대 통신, 이른바 5G용 장비 기술을 습득했다.


5G는 사실 전화의 문제가 아니다. 컴퓨터의 미래에 대한 것이며, 그러므로 반도체와 관련되어 있다. 5G는 이미 네 세대의 모바일 네트워크 표준을 통과한 셈인데 세대가 달라지면 전화기도 바뀌어야 하고 새로운 기지국 설비도 필요해진다.


2G폰은 사진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3G폰은 웹사이트를 열 수 있었다. 4G로 넘어오자 비디오를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일이 가능했다. 5G 역시 그와 유사한 도약을 제공할 것이다.


무선망과의 연결을 관리하는 모뎀 칩 덕분에 스마트폰은 안테나로 송신되고 수신되는 수많은 0과 1을 더 많이 암호화하고 복호화할 수 있는 것이고, 무선 네트워크 기지국에 숨어 있는 반도체들 역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무선 주파수를 할당할 수 있을 만한 스펙트럼 공간은 제한되어 있다. 무선주파수 자체는 많지만 그중 많은 데이터를 실을 수 있거나 먼 거리를 오갈 수 있는 주파수는 한정되어 있다. 통신사가 기존의 스펙트럼 공간에 더 많은 데이터를 집어넣기 위해 반도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5G 기술에서는 더 많은 데이터를 송수신하기 위해 더 복잡한 알고리즘과 더 큰 연산력을 가진 스마트폰 및 기지국이 필요하다. 그렇게 0과 1을 무선스펙트럼의 아주 작은 빈 공간에도 채워 넣는다. 또한 이전까지 실용성이 없다고 여겨 쓰지 않았던 새로운 빈 무선주파수 스펙트럼을 사용한다.


여기에 무선 전파를 이전과는 다른 정확도로 더 멀리 보내는 것도 가능케 하고 있다. 기지국이 전화기 위치를 확인한 후 전화기를 향해 직접 무선전파를 보내는 '빔포밍(beamforming)'이다. 일반적인 무선전파는 모든 방향으로 보낸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에너지 낭비일 뿐 아니라 더 많은 파장과 간섭을 만들어낸다.


빔포밍 기술은 오직 필요한 방향으로만 쭉 무선전파를 보낼 수 있다. 그 결과 모든 것의 간섭이 최소화하고 신호는 더 강력해진다.

[빔포밍과 5G 안테나 출처 구글 이미지]

더 많은 데이터를 무선 네트워크로 주고받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더 많은 기기를 무선 네트워크에 연결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기기가 많아질수록 그 기기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 또한 많아진다. 결국 더 많은 연산력이 필요하게 된다.


무선 통신을 통한 연결과 연산력의 성능이 구세대 제품을 디지털 기기로 바꿔 놓은 가장 좋은 사례는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테슬라이다. 테슬라는 짐 켈러(Jim Keller) 같은 반도체 설계 분야의 스타를 고용해 자율 주행의 필요에 부합하는 특화된 반도체 설계를 맡겼다. 테슬라의 자동차는 "스마트폰을 떠올리게 한다". 전기차가 확산되면서 특화된 반도체의 필요성도 커졌다.

[테슬라 당시의 짐 켈러 출처 구글 이미지]

2017년 무렵 전 세계 통신사들은 5G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한 장비 공급자 계약에 착수하고 있었다. 중국의 화웨이는 그 경쟁에서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질 높은 장비를 경쟁사인 에릭슨이나 노키아를 능가하는 경쟁력 있는 가격에 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화웨이의 기지국 장비는 경쟁사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실리콘을 포함하고 있다. 화웨이의 무선 장치를 일본 신문 《니케이아시아》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미국산 반도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FPGA 반도체는 오레곤주에 위치한 래티스세미컨 덕터에서 만든 것이었는데, 래티스는 칭화유니그룹이 인수하고 나서 몇 년 후 약간의 지분을 매각한 회사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아날로그디바이시스, 브로드컴(Broadcom), 사이프레스(Cypress) 반도체 역시 화웨이의 무선 장비에 필요한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했다. 《니케이아시아》의 분석에 따르면 화웨이의 통신 시스템 가격 중 약 30퍼센트는 미국산 반도체 및 기타 부품이 차지한다.

[아날로그디바이시스와 인피니온이 인수한 사이프레스 반도체 출처 구글 이미지]

하지만 핵심 프로세서 칩은 화웨이의 하이실리콘 반도체 설계 사업부가 중국 내에서 설계한 것이며, 제작은 TSMC에서 이루어졌다. 화웨이가 기술 독립을 이루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여러 특화된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으며, 회사 내에서 설계한 칩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TSMC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화웨이가 각 무선 시스템에서 가장 복잡한 전자기기 중 일부를 만들고 있다는 것, 그 모든 구성 요소를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사업부는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니 중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들이 실리콘 밸리의 대형 업체들만큼 TSMC의 큰 고객이 될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만약 2010년대 말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2030년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실리콘밸리와 견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될 터였다. 이것은 단지 테크 업계와 무역의 이동만 뒤바꾸는 일이 아니다. 군사력 역시 새로운 균형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48장 차세대 상쇄전략


자동화된 드론 군단부터 사이버 공간과 전자기파 스펙트럼 속에서 펼쳐지는 보이지 않는 전투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미래는 연산력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미군은 이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선두 자리에 있지 못했다. 1991년 걸프전의 충격파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고, 베이징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중국은 첨단 기술 무기 체계에 막대한 자금을 퍼부었다. 중국의 위성 요격 무기는 미국의 통신과 GPS 네트워크를 작동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중국은 사이버전을 통해 미군 전체 시스템을 무너뜨리고자 할 것이다.


전자기파 스펙트럼마저도 미래의 전장이다. 그곳에서 중국은 미래의 통신을 교란하고 감청시스템을 속이며 미군이 적군을 볼 수 없게 만들고 동맹과 소통하는 것을 차단하려 할 것이다.


중국군이 이런 능력을 키워 나가게 된 것은 중국 군부 고위층이 품고 있던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은 앞으로의 전쟁이 단순히 "정보화(informationized)"되는 차원을 넘어 "지능화(intelligentized)"할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을 무기 시스템에 적용한다는 뜻이다.


이 컴퓨터 전쟁은 어떤 요소에 의해 결정될까? 구글의 전 CEO 에릭 슈미트(Eric Schmit)가 회장으로 있는 모임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AI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을 앞지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진핑도 "군대 지능화 개발 가속화"를 국방 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국이 인공지능으로 강화된 무기 체계를 개발하고 배치하는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그 "경쟁"은 단일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체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AI 시스템에 대해 중국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사릴은 분명하다.


조지타운대학교 벤 부캐넌(Ben Buchanan)은 AI를 제대로 다루려면 데이터, 알고리즘, 연산력의 '세 기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중국은 그중 두 영역에서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고, 부족한 것은 오직 연산력뿐이다.

[에릭 슈미트와 벤 부캐넌 출처 구글 이미지]

AI 알고리즘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에 접근하는 데에서 중국도 미국도 확연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중국이 감시 시스템을 통해 더 많은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군사 영역에서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영리한 알고리즘을 고안해 내는 문제에서도 어느 한쪽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AI 전문가 숫자를 놓고 볼 때, 세계를 선도하는 인공지능 연구자 중 29%가 중국인, 미국인은 20%, 18%는 유럽 출신이다. 그러나 AI 연구자 중 59%가 일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연산력에서는 미국은 여전히 확연한 우위를 갖고 있다. 인공지능 작업을 위해 돌아가는 중국 서버의 95%가 엔비디아에서 설계한 GPU를 장착한다. 인텔, 자일링스, AMD, 그 외 다른 회사들 역시 중국의 데이터센터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중국 군사 시스템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이 설계하고 대만이 제조한 칩을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미국이 수출 금지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지 않는 한, 인민해방군은 필요한 만큼 실리콘밸리에서 설계한 반도체를 구입해서 쓸 수 있을 것이다.


중국군의 전투력이 향상됨에 따라 펜타곤은 새로운 전략을 택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2010년대 중반, 척 헤이글(Chuck Hagel) 국방장관 같은 관료는 새로운 "상쇄" 전략의 필요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척 헤이글 출처 구글 이미지]

1970년대 상쇄전략은 디지털 마이크로프로세서, 정보기술, 새로운 센서와 스텔스였다. 이번에는 "인공지능과 자율운항의 우위"가 관건일 것이다.


지금 DARPA는 가장 큰 전함부터 가장 작은 드론까지 "전장에 배치된 모든 컴퓨터가 서로 의사소통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전쟁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팀워크"라는 연구 프로그램에 자금을 투입했다.

[출처 구글 이미지]

냉전의 승부는 미국 미사일의 유도 컴퓨터 주위를 도는 전자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싸움은 전자기파 스펙트럼 속에서 결판이 날 수 있다. 전자 센서와 통신 장비에 온 세상의 군대가 더욱 의존할수록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적을 탐지하고 추적하는 데 필요한 스펙트럼 공간에 접근하기 위한 싸움도 치열 해질 수밖에 없다.

[전자기파 스펙트럼 출처 구글 이미지]

우리는 전시에 전자기파 스펙트럼이 어떻게 작동할지 단지 얼핏 보았을 뿐이다. 가령 2007년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핵 시설을 공습했을 때,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레이더를 교란하거나 해킹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던 시리아의 방공 시스 템을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다양한 레이더와 신호 교란기를 동원하고 있다. 또 러시아 정부는 보안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있을 때 방문지의 GPS 신호를 차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DARPA는 GPS 신호나 인공위성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 항법 체계'를 연구 중이다. GPS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미국의 미사일이 목표물을 맞힐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다.


전자기파 스펙트럼을 두고 벌이는 싸움은 반도체에 의한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될 것이다. 레이더, 전파 교란, 통신은 모두 복잡한 무선 주파수 칩과 디지털-아날로그 변환기에 의해 관리된다. 


이들 칩이 개방된 스펙트럼 공간에서 신호를 발산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보내며, 적의 센서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레이더나 교란기에 담긴 강력한 디지털 칩은 복잡한 알고리즘을 작동시켜 수만분의 1초 내로 수신한 신호를 해석하고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할지 결정한다.


미래의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도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AI 알고리즘을 작동시키기 위한 강력한 프로세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대용량의 메모리 칩, 전자파를 감지하고 생성하기 위해 완벽하게 맞춘 아날로그 칩 등이 필요한 것이다.


2017년 DARPA는 '전자산업부흥계획(Electronics Resurgence Initiative)'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족시켰다. 군사와 관련된 반도체 기술의 차세대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려는 목적이었다.

[출처 DARPA 사이트]

하지만 DARPA와 미국 정부는 새로운 현실에 맞닥뜨렸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제시하는 일이 이전처럼 쉽고 간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민간기업의 연구개발비 규모가 DARPA의 예산보다 훨씬 크고 반도체를 만드는 비용도 너무 비싸졌다. 그리고 로직 칩에 관해 이제 인텔의 첨단 칩 생산 능력은 TSMC나 삼성에 뒤처진 상태이며, 칩 조립과 패키징 역시 대부분 아시아에서 이루어진다.


미군은 해외에서 생산되고 조립되는 칩이 보안 위험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심지어 2018년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스펙터(Spectre)와 멜트다운(Meltdown) 오류가 발견되었는데 인텔은 미국 정부보다 중국 테크 기업을 포함한 고객들에게 먼저 이를 알렸다.

[출처 구글 이미지]

DARPA는 조작이 불가능하거나 완전히 의도한 대로 제작되었음을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반도체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제로 트러스트") 모든 것을 검증하여 마이크로칩에 실린 아주 작은 센서까지도 약간이라도 수정이 가해지는 순간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의 확보가 목표다.


새로운 "상쇄" 전략에는 근본 전제가 깔려 있다.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우위를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그 전제를 믿고 가는 것은 위험한 도박처럼 보인다. 최신 로직 칩의 제조에 있어서 대만에 의존하는 정도가 날로 커지고 있고, 중국 역시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며 미국과 같은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펜타곤은 자체적인 상쇄 전략에 착수했다. 중국이 군사 근대화를 통해, 특히 중국 해안에서 벌어질 싸움에서 격차를 크게 줄였다는 사실을 시인한 다음이었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 모두의 군대가 미래를 걸고 있는 첨단 반도체 생산지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실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래의 전장이기도 한다.


파트 8 반도체로 숨통을 조이다


49장 우리가 경쟁하는 모든 것


인텔의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Brian Krzanich)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기 위해 밀어붙이고 있는 중국 때문이었다. 2015년 현재 미국 반도체산업협회 회장이기도 했던 그의 이번 역할은 중국의 막대한 반도체 보조금에 제동을 걸어 달라고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출처 구글 이미지]

중국은 미국의 태양광 패널 제조업을 끝장내 버렸다. 반도체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중국 내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을 육성하고자 중국의 중앙과 지방 정부가 내놓은 보조금 총액 2500억 달러 펀드 폭격이 우리를 묻어 버릴 것이라고 오바마 정권의 한 관료가 근심을 토로했다.


2015년 무렵 미국 정부의 무역 협상가들은 중국의 반도체 보조금이 국제 협약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고 보았다. 중국이 새로운 무기를 연산력에 도입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펜타곤도 긴장하기 시작했고, 정보 당국과 법무부는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업체들과 협업하여 미국의 반도체 기업을 몰아내고 있다는 증거를 더 많이 캐내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를 받아들이고 "더 빨리 달리는 것", 미국 기술 정책의 양대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이 두 가지 방침의 너무도 깊게 뿌리 박혀 있어 정부의 행동은 오바마 정권 마지막 시점까지 미뤄졌다. 오바마 퇴임 후 다음 날 발표된 반도체 업계의 미래에 관한 보고서의 핵심 권유 사항은 "더 빨리 달려서 경쟁에서 이겨라"였다.


워싱턴과 반도체 업계의 거의 모든 사람이 세계화라는 꿀단지를 끌어안고 단물을 마셔 왔다. 언론과 학자들 역시 세계화를 진짜로 "글로벌"한 것처럼 전달해 왔다. 기술 확산은 막을 수 없고, 다른 나라의 기술 역량이 발전하면 미국에 이익이 되며, 설령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기술의 진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식이었다.


"반도체 산업이 세계화된 세상에서 일방적인 행위는 점점 더 무의미한 것이 된다"라고 오바마 정권의 반도체 보고서는 주장하고 있었다. “이론적으로 정책은 기술의 확산 속도를 지연시킬 수는 있으나 그 확산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었다. 그냥 그럴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세계화”가 아니라 "대만화"였다. 기술은 확산되지 않았다. 대체 불가능한 한 줌의 기업이 독점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살펴봐도 세계화의 불가피성이란 틀린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미국의 기술 정책은 그 흔한 상투적 어구에 인질로 잡혀 버리고 말았다.


미국은 제조, 리소그래피, 그 외 다른 영역에서 기술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우위를 헛되이 흘려보냈다. 경쟁의 주체는 기업이며 정부는 그저 평평한 운동장을 깔아 주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워싱턴이 빠져 있는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특히 아시아의 반도체 산업에 정부가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미국의 관료들은 다른 나라가 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부분을 움켜쥐고 있는 현실을 그저 무시해 버렸고, 그러는 사이 미국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깊숙한 곳, 국가 안보 관련 기관들은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중국이 세계의 핵심 기술 체계에 발휘하고 있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많은 안보 관련자의 근심거리였다.


그들은 미국이 수십 년간 그랬던 것처럼 중국이 주요 전자 제품에서 핵심 제조 업체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부정한 수단을 끼워 넣거나 더 효율적으로 첩보 활동을 할 수도 있다고 여겨졌다. 특히 주목한 것은 통신 인프라였는데, 미국의 동맹국들마저 점점 유럽과 미국산 장비 대신 중국의 ZTE나 화웨이 같은 기업을 택했다.


2016년 오바마 정부 마지막 해, 두 회사는 이란과 북한에 물품을 공급했고 미국의 제재를 어겼다고 지적당했다. 오바마 정부는 ZTE에 금융 제재와 미국 기업들의 수출 제한을 가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2017년 3월 ZTE는 트럼프 정권이 집권한 직후 미 정부와 형량 거래를 하고 벌금으로 처벌을 낮췄다.

[출처 연합뉴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모인 대 중국 강경파들은 관세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들은 중국의 지정학적 의제와 기술적 기반에 주목했다. "더 빨리 달리기" 전략은 먹히지 않았다. 중국이 기술우위를 전복하기 위해 엄청난 공력을 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새 정부의 중국 팀은 동의하지 않았다. 반도체의 관점이 달라지고 있었다. 새 정권의 국가안정보장회의는 훨씬 전투적인 제로섬 게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술 정책의 방향을 잡았다. 중국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반도체 업계 리더들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의 어떤 경영자는 한 백악관 관료에게 이 상황을 한 문제로 요약해 전달했다. "우리의 근본 문제는 우리 최대 고객이 우리의 최대 경쟁자라는 겁니다."


NSC의 대중국 강경파들은 미국 반도체 산업을 스스로가 빠진 모순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주주의 원성에 떠밀리고 시장의 힘에 쫓긴 반도체 기업은 서서히 직원, 기술, 지식재산권을 중국에 넘기고 있었다. 미국의 강력한 수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2018년 4월, 트럼프와 중국의 무역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국 정부는 ZTE가 형량 거래를 어겼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관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규제가 회복된다면 ZTE는 미국산 반도체를 비롯한 다른 물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트럼프 본인은 기술보다 무역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는 이 기회를 시진핑과의 협상카드로 바라보았고, 중국 지도자들이 그런 방향의 거래를 제안하자 트럼프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곧 ZTE는 다시 한번 벌금을 내고 미국의 부품 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출처 파이낸셜뉴스와 ZTE 홈페이지]

ZTE 대소동을 통해 분명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테크 기업들 모두가 미국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는 한 관료의 표현처럼 그저 "우리가 경쟁하는 모든 것"의 "주춧돌"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었다.


50장 푸젠진화반도체


케니 왕(Kenny Wang)은 마이크론에서 900여 개의 파일을 내려받아 USB드라이브로 옮기고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해 마이크론이 생산하는 첨단 D램 칩 제조 기밀을 복사했다. 파일들에는 "마이크론 기밀자료/복사하지 말 곳"이라는 부가 설명이 딸려 있었다. 마이크론의 추산에 따르면 이는 몇 년간 수억 달러를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그런 비밀들이었다.


오늘날 세계의 D램 칩 시장을 지배하는 회사는 마이크론과 삼성, SK하이닉스 셋이다. 대만 역시 D램 사업에 끼어들지 못했다. 관건은 노하우를 확보하는 것이다. D램 노하우를 취득하는 더 빠른 길이 있다. 바로 경쟁사 전 직원을 매수하고 파일을 훔치는 것이다.


2017년 12월,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대만 반도체 업체 UMC푸젠진화반도체(福建省晋华集成电路)를 기술도용 혐의로 미국 연방법원에 고소했다. 당시 마이크론은 자사의 직원 Steve Chen(마이크론 대만 지사 대표)과 Kenny Wang이 기술자료를 빼돌려 대만 UMC 경영진에게 넘겨줬고, UMC는 푸젠진화에 이 기술을 전수했다고 주장했다.

[푸젠진화반도체 공장 출처 구글 이미지]

마이크론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대만 검찰이 왕의 전화를 도청해 UMC를 기소했고, 마이크론에서 UMC와 푸젠진화를 특허권 침해로 고소하자 푸젠진화는 푸젠성 법원에 맞고소를 했다.

[미국 법무부의 푸젠진화 기소 발표 출처 구글 이미지]

푸젠성 법원은 마이크론이 UMC와 진화의 특허를 침해한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들이 훔친 기술을 자신들 것으로 특허 출원 중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이크론 제품 중 26개 품목의 중국시장 판매를 금지해 마이크로는 최대의 시장을 잃고 말았다.


이것은 국가가 뒤를 봐주는 지식재산권 도둑질의 완벽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반도체 제조설비 생산자인 비코(Veeco) 역시 미국 법정에 지식 재산권 소송을 제기했는데, 중국 경쟁사인 AMEC는 푸젠성 지방법원에 맞고 소를 제기해 예비적 금지명령을 받아냈고, 비코는 더는 중국시장에 공작장비를 판매할 수 없었다.


미국 법원의 판결은 몇 달이 걸린 반면 푸젠성 판결은 고작 평일 9일 만에 나왔고, 판결문의 자세한 내용은 여전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출처 구글 이미지]

NSC의 대중 강경파는 이 구도를 바꾸고자 달려들었다. 그들은 마이크론 판결이야말로 트럼프가 고쳐 놓겠다고 약속했던 불공정 무역 관행의 사례로 보았다. 심사숙고 끝에 트럼프 정부는 푸젠진화반도체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미국 장비 구매를 금지시켰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램 리서치, KLA 같은 미국 기업은 대체 불가능한 장치를 만드는 소수 과점 기업의 일부다. 이에 견줄 만한 장비를 만드는 회사를 보유한 나라는 일본뿐이다.


그러니 도쿄와 워싱턴이 합의한다면 어떤 기업도 어느 나라도 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이는 미국이 새롭게 손에 넣은 강력한 무기였다. 이제 미국은 세상 그 어떤 칩 제조사든 문을 닫게 만들 수 있었다.


상무부 장관 윌버 로스는 이 카드를 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일단 푸젠진화가 핵심 장비를 공급하는 미국 회사에 청구 금액을 지불하자 미국 정부는 수출을 끊어버렸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푸젠진화의 생산은 중단되었다. 중국이 만들어낸 최신 D램 기업이 무너진 것이다.

[출처 MBC뉴스, 구글 이미지]

51장 화웨이 습격


"나는 그 회사를 스파이웨이(spyway)라고 부릅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 중 하나인 <폭스 앤 프렌즈>에 출연한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에 대한 질문을 받자 한 말이다. "우리는 화웨이 장비가 미국에 설치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화웨이는 우리를 염탐하니까요 ... 그들은 뭐든 알고 있습니다."

[트럼프 인터뷰 출처 구글 이미지]

펜타곤과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내부에서 화웨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한 스파이 활동에 따른 위협 정도가 아니었다. 미국의 관료들은 화웨이가 중국의 스파이 행동을 돕고 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화웨이는 기술 주도권을 두고 벌일 긴 싸움의 첫 번째 전장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펜타곤의 마크 터핀(Mark Turpin)은 화웨이를 더 큰 문제의 징후로 간주했다. 중국 기업이 "미국의 시스템 내부에 제대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화웨이는 우리가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는지 보여 주는 상징과도 같다." 트럼프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또 다른 인물이 한 말이다.


호주는 공식적으로 화웨이 장비를 5G 네트워크에서 배제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고, 일본, 뉴질랜드, 기타 다른 나라가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같은 식으로 대응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을 적극 따른 폴란드나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자동차와 기계 장치에서 대중국 수출 비중이 높아 중국의 경고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영국은 놀랍게도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고 화웨이를 금지하지 않고도 위험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 호주와 영국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이 화웨이의 위험에 대해 각기 다른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기술적 요소를 두고 해석이 달랐다고 볼 근거는 없다. 가령 사이버 보안 문제를 다루는 화웨이의 태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은 영국의 규제 당국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진짜 논점은 따로 있었다. 중국이 세계의 기술 인프라에서 더 큰 역할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저지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영국의 신호정보(signal intelligence) 기관의 장을 역임했던 로버트 해니건(Robert Hannigan)은 이렇게 주장했다.


"서구가 중국의 기술 발전을 억누를 수 있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대신에, 우리는 중국이 미래에 세계의 기술 강국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 위험을 지금부터 관리해야 한다."

[로버트 해니건 출처 구글 이미지]

미국 정부는 동의하지 않았다. 화웨이 경영진은 그들이 미국의 이런 제재를 어겼다고 시인했고 이는 워싱턴을 분노케 했지만 이 또한 곁가지에 불과했다. 그들이 우려한 진짜 문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기업이 기술 사다리의 꼭대기에 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웨이가 연구개발에 매년 투입하는 비용은 이제 MS, 구글, 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고, 화웨이는 모든 중국기업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수출기업이었으며, 기지국용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첨단 스마트폰 칩도 설계하고 있었다. 애플에 이어 TSMC 두 번째 큰 고객 자리를 차지했다.


NSC는 소니나 삼성과 달리 화웨이는 미국 최대의 지정학적 경쟁자가 배출한 대표선수이고, 화웨이가 중국 반도체 설계의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보았다.


최신 전자제품을 직접 만드는 경험이 쌓일수록 중국은 더 많은 첨단 칩을 구입할 것이고, 세계의 반도체 생태계는 점점 더 중국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것은 결국 미국의 영향력 축소로 이어진다.


트럼프 정부가 한 첫 번째 일은 화웨이에 미국산 칩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반도체 제조의 해외이전은 반도체 산업의 일극화를 불러왔고 치명적인 병목이 생겼다. 병목 중 다수가 여전히 미국 수중에 있다. 미국이 갖지 못한 병목은 대체로 미국과 가까운 동맹국의 것이다.


이 무렵 헨리 패럴(Henry Farrel), 에이브러햄 뉴먼(Abraham Newman)이라는 두 미국인 학자가 "무기화된 상호의존(weaponized interdependence)"이라는 현상에 주목했다.


국제정치와 경제가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전례 없이 얽혀 있는데, 갈등해소와 화합이 증진되기는커녕 상호의존은 새로운 경쟁의 장을 열어 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볼 때 미국정부가 무역과 자본이동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세계화를 위협하며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부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가진 특별한 힘을 기꺼이 무기화하기로 했다.

[출처 구글 이미지]

2020년 5월 트럼프 정부는 화웨이 제재를 더욱 끌어올렸다. 이제 상무부가 나서서 "화웨이가 미국의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해외에서 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에 제약을 가하고 미국의 국가 안보를 지키겠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상무부의 새로운 지침은 "미국산 기술을 통해" 만든 모든 제품의 화웨이 판매를 금지했다. 이러한 조치는 거의 모든 칩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말과 같다. 화웨이는 이렇게 간단히 전 세계 반도체 제조업에서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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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업계는 미국의 규칙에 재빨리 적응해 나갔다. TSMC 회장 마크 리우(Mark Liu)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규칙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의도를 해석해야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지 다른 나라들, 특히 영국도 화웨이를 차단하기로 했다. 미국산 반도체가 없다면 화웨이가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을 수 없다고 판단에서 비롯한 결정이었다.


화웨이에 대한 공격은 화웨이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러 다른 중국 기업들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미국과의 논의 끝에 네덜란드는 ASML이 극자외선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고자 해도 승인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2017년 AMD가 "전략적 파트너"라 불렀던 중국의 슈퍼컴퓨터 회사인 수곤(中科曙光, Sugon)이 2019년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수곤 본사 출처 구글 이미지]

그 목록에는 파이티움(Phytium, 飛騰)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미국 관료들은 파이티움이 설계한 칩이 탑재된 슈퍼컴퓨터가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에 사용되었다고 보았고, 이 내용은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보도되었다. 파이티움의 칩은 미국산 소프트 웨어로 설계되고 대만의 TSMC가 제조했다.

[파이티움 칩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러나 최종적으로 볼 때 중국 테크 기업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 최대의 테크 기업인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은 미국산 반도체를 구입하거나 TSMC에 반도체를 주문하는 일에 있어서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중국 최고의 로직 칩을 생산하는 SMIC는 첨단 반도체 제작 도구를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제재가 가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성업 중이다. 심지어 화웨이마저 구형 반도체 구입은 가능한 터라 4G 네트워크 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국 최고의 글로벌 테크 기업의 발목을 부러뜨리고 있을 때, 중국이 그 어떤 복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미국 테크 기업을 응징하겠다고 여러 차례 위협하긴 했지만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공급망을 끊음으로써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었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화웨이 습격 사건을 두고 이렇게 곱씹었다. "무기화된 상호 의존,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52장 중국의 스푸트니크 모먼트?


중국의 도시 우한이 락다운에 들어갔다. 2020년 1월 23일, 코로나 19 발병 사례가 해일처럼 밀려드는 가운데 그 어떤 도시 그 어떤 시점에도 겼지 않은 최장기 락다운이 막 시작되는 참이었다. 인구 1000만 명에 육박하는 이토록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를 이런 식으로 봉쇄해 버린 일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 한 시설만은 예외였다. 우한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 최대의 낸드 메모리 칩 생산 업체인 양쯔강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바로 그곳이었다. 전 세계 반도체 회사들에 투자했던 칭화유니그룹은 YMTC에 최소 240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추산되고, 국영 반도체 펀드와 지방 정부 보조금도 추가로 지급되었다.


중국 정부의 YMTC에 대한 지지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심지어 2020년 2월 말과 3월 초에는 신규 인력을 채용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기술 경쟁이 과열되면서 중국 정부가 "스푸트니크 모멘트"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흔히 제기되었다.


미국이 화웨이 같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면서 중국이 스푸트니크급 충격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댄 왕(Dan Wang)은 미국의 규제가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새로운 정책을 촉진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볼 때 미국의 새로운 수출 규제가 없었다면 '중국제조 2025'는 다른 산업정책과 같은 결말, 상당한 액수의 헛돈만 쓰고 끝나는 결말을 맞이했을 터였다. 그런데 미국의 압력 덕분에 중국 정부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그보다 훨씬 큰 지원을 제공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가 새로운 기술의 생산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우한홍신반도체(HSMC)' 사건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도체 기업에 돈을 삽으로 퍼 주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우한 지방정부를 속여 가짜 회사에 투자하게 한 후 TSMC 전직 연구개발 총괄 책임자를 CEO로 고용했으나 HSMC는 파산하는 그날까지 첫 번째 칩을 제조해내지 못했다.

[우한홍신반도체 현장 출처 구글 이미지]

실패로 귀결된 것은 지방 정부 차원만의 일이 아니었다. 칭화유니그룹은 전 세계적인 돈 살포 끝에 수중의 현금이 말라 가기 시작했고 보유 중인 채권의 일부가 부도나고 있었다. 중국 정부에서 경제 기획을 담당하는 한 관료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해 "경험도 없고 기술도 없고 재능도 없다"라며 한탄했다.


사실 여러 나라에 걸친 공급망을 지닌 분야에서 기술독립은 언제나 허황된 꿈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세계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손인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ASML의 예를 들면, 극자외선 장비를 모방하려면 그 구성요소 중 하나인 레이저만 해도 완벽하게 구현된 45만7329개의 부품을 조립해야 한다. 거기에 30년의 개발과 상용화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설사 10년 내에 자체 개발해도 투입 시점에서는 더 이상 첨단 장비가 아닐 수밖에 없다.


베이징 역시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국산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목표라는 것을 잘 안다. 가능한 많은 병목지점을 차지해 버리는 것 정도가 중국이 품을 수 있는 현실적인 야심이다.


오늘날 중국은 인텔과 AMD가 지배하는 PC와 서버의 x86 아키텍처와 모바일의 암 아키텍처 기반 대신 새롭게 도입된 'RISC-V'라는 오픈 소스 아키텍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프로세서를 설계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로직 칩용 구식 프로세서 기술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마트폰과 데이터 센터는 최첨단 칩을 필요로 하지만, 자동차나 다른 소비자는 그보다 전 세대의 프로세서를 이용한다.

[RISC-V 재단과 제품 비교 출처 구글 이미지]

중국은 또 실리콘 카바이드나 질화칼륨처럼 새롭게 주목받는 반도체 물질에 큰 투자를 하고 있다. 이 소재들은 전기자동차의 출력 관리용 반도체에서는 큰 몫을 차지할 수도 있다. 여기에 정부 보조금도 큰 역할을 한다.


중국이 기술적으로 뒤처진 처지에 놓이겠지만 양적으로 반도체 생산량이 늘어감에 따라 중국은 기술 이전을 요구할 만한 지렛대를 손에 넣게 된다. 또한 중국은 여전히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막대한 인력 풀을 지니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 거의 대부분은 정부 보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상업적 목적보다 국가적 과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윤을 내고 상장하는 것은 ... 우선순위가 아닙니다"라고 YMTC의 한 임원이 니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지만 YMTC의 초점은 따로 있다. "이 나라 반도체 산업의 기틀을 다지고 중국몽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53장 공급 부족과 공급망


"우리가 국제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 필요한 크고 담대한 투자를 국가 차원에서 수행한 지 너무도 오래되었습니다." 화면에 나와 있는 CEO들을 상대로 바이든 대통령이 선언했다. 테디 루스벨트 초상화 밑에서 12인치 실리콘 웨이퍼를 손에 든 채 그는 "우리는 연구개발과 제조에서 뒤처져 있으며... 게임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합니다."라고 질책했다.

[출처 구글 이미지]

미국이 겪고 있는 반도체 부족을 논의하기 위해 바이든은 인텔과 같은 미국 반도체 제조 업체와 TSMC 같은 외국기업을 초청했고 더불어 심각한 반도체 공급난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포드나 GM 같은 중요한 반도체 사용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2020년 미국이 중국의 핵심 테크 기업에 대한 미국 기술 제공을 중단하면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숨통을 조르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 반도체 업계는 두 번째로 숨 막히는 '기초적인 로직 칩 부족' 상황을 맞았다. 2021년 팬데믹 이후 전 세계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그들의 삶은 반도체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이 적어도 2019년부터 칩을 쌓아 놓고 중국 팹들 역시 가능한 많은 제조 장비를 구입하고 있었던 원인도 있지만, 더 큰 원인은 팬데믹이 시작된 후 주문량이 크게 요동쳤다는 데 있다.


2020년 재택근무로 인해 가정용 PC의 업그레이드 수요, 온라인 활동 증가로 인한 서버와 데이터센터용 칩 수요 그리고 자동차 수요 회복에 대한 예측이 모두 어긋났다.


바이든 정부와 대부분의 언론은 반도체 부족을 반도체 공급망의 문제로 해석했다. 반도체 업계가 코로나의 락다운에 잘못 대처했고, 생산이 지연됐다는 식으로 문제를 바라보았다.

[출처 한국경제]

하지만 2021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칩을 생산하고 있었다. 반도체 부족의 주요 원인은 새로운 PC, 5G 스마트폰,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 우리가 연산력을 엄청나게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코로나 초기 특히 자동차 회사들 스스로 겁에 질려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반도체 주문을 너무나 일찌감치 취소해 버린 그들은 적시공급생산방식(just-in-time)을 채택하고 있어 보유재고가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반도체 산업 전체가 재구성되었다. 미국이 쥐고 있는 병목은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 비록 시간과 비용이 들고, 때로는 엄청나게 어려울지라도, 국가와 정부는 그러한 병목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 그러나 두 나라는 모두 한국의 대형 반도체 업체를 꼬들여 자국에 더 많은 생산기지를 짓도록 애쓰고 있다. 미국은 SK하이닉스가 중국의 우시에 자리 잡은 설비에 극자외선 장비를 배치하려 하자 압력을 넣었다.


대만의 TSMC에서 중국이나 미국에 짓는 새로운 팹 중 그 어느 것도 최신 반도체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TSMC가 지닌 최고의 기술력은 여전히 대만에 남아 있었다.


유럽, 싱가포르 역시 반도체 신규 투자를 원하고 있었으며, 일본이 TSMC의 새로운 생산 설비에 보조금을 주기로 한 것은 소니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이 공급망에서 강점을 보이는 요소들마저 해외로 이전하게 될 가능성을 우려해서였다.


반도체 제조에서 미국은 현재 뒤처져 있는데, 미국의 대표 선수인 인텔은 2021년 팻 겔싱어(Pat Gelsinger)를 CEO로 임명했다.


그의 확장 전략은, 첫째, 반도체 제조에서 삼성과 TSMC를 꺾고 선두 자리를 차지한다, 둘째, 삼성 및 TSMC와 직접 경쟁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출범한다, 셋째 불편하지만 TSMC의 도움을 받는다는 세 갈래로 이루어져 있다.

[인텔 CEO 펫 갤싱어 출처 구글 이미지]

미국 안보 관료들 사이에서는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와 제조 장비의 수출 제한을 무기로 삼아 TSMC를 압박해서, 최신 기술을 대만뿐 아니라 미국에도 동시에 도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혹은 미국의 애리조나나 일본, 더 나아가 잠재적인 유럽의 신규 팹에 새로운 설비를 짓도록 TSMC에 압력을 넣어 확약을 받아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대만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런 압력이 필요하다 해도 현재로서는 워싱턴이 그것을 실행할 의지가 없다. 전 세계가 대만에 의존하고 있는 현 구도는, 그러므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54장 대만 딜레마


"대만에 전쟁이 날까 봐 고객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을 무렵, 한 금융 분석가가 TSMC의 회장 마크 리우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2021년 7월 15일 이 질문을 받았을 때 TSMC의 재정상황은 좋았다. 아시아에서 시가 총액이 가장 큰 기업이었고 세계에서도 10위권에 드는 회사가 되었다.


TSMC가 이토록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갈수록 그 위험 역시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힘주어 강변했다. "중국의 침공 가능성이 문제라면, 제가 한마디 하죠. 모두가 대만해협의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고, 아무도 그걸 교란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TSMC 마크 리우 출처 구글 이미지]

하지만 바로 그다음 날인 6월(7월?) 16일, 인민해방군의 05식 수륙양용 장갑차 12대의 도하 훈련이 시작되었다. 중국 관영 신문 ⟪글로벌타임스⟫는 이 훈련이 홍콩과 대만 사이에 위치하고 대만이 지배하는 작은 환초인 프라타스섬(Pratas Islands)에서 고작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치러졌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중국군 상륙 작전 출처 구글 이미지]

대만해협의 군사력이 중국 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군사 전문가는 없다. 1996년 발생했던 제3차 대만해협 위기처럼 미국이 항공모함 전단을 이끌고 대만해협을 항해하는 것만으로 중국을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아득한 과거의 일일 뿐이다.


현재 중국의 미사일은 대만 인근의 미군 함정뿐 아니라 저 멀리 괌과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제한적인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자 할 때, 미국으로서는 힘의 균형을 면밀하게 따져본 후 중국을 몰아내려 힘을 쓸 필요까지는 없다는 결론을 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TSMC 회장은 그 누구도 대만해협과 얽혀 있는 반도체 공급망을 "교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히 옳은 말을 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 공급망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압박하여 TSMC의 팹에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혹은 다른 나라보다 더 우선순위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미국과 일본은 첨단 장치와 소재 수출에 새로운 제약을 가하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하지만 대만의 반도체 생산 역량을 다른 나라에서 따라잡으려면 몇 년이 걸릴뿐더러 그동안 세계는 여전히 대만에 의존해야 한다. 그 경우 세계는 중국에 아이폰 조립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아이폰에 들어가는 칩까지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미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입지에 재앙과도 같은 충격을 준다. 차라리 TSMC의 팹이 전쟁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보다 더 나쁜 경우다. 아시아와 대만해협에 매달려 있는 세계 경제와 공급망은 이런 아슬아슬한 평화 위에 놓이고 마는 것이다.


애플부터 화웨이, 심지어 TSMC까지 대만해협 양쪽에 투자한 회사들은 절대적으로 평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 회사가 수조 달러를 투자한 설비들이 대만해협과 선전, 홍콩, 푸젠과 타이페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모두가 미사일의 쉬운 표적인 것이다.


전 세계의 반도체 산업, 더 나아가 반도체를 쓸모 있게 만들어 주는 전자 제품의 조립까지, 그 모든 것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연안에 기대고 있으며 그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곳은 실리콘밸리뿐이다.


펜타곤의 보고서에 의하면, 인민해방군의 상륙작전보다 실행가능한 것은 부분적인 해상, 항공 및 해양 봉쇄를 통해 대만이 스스로 방어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봉쇄를 끝내려면 중국 영토 내에 있는 중국의 수 백 여 군사시스템을 무력화해야 한다. 대만의 국방전략은 미국과 일본이 와서 도울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며 살아남는 것이다.


대만은 세계 메모리칩 11%를 생산하고 더 중요한 건 전 세계 로직 칩 37%를 제조한다는 것이다. 대만이 재앙을 겪고 나면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조 달러 단위가 될 것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년 이상이 소요된다.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최근 ⟪포린어페어스⟫를 통해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대만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실리콘 방패'이며 국제 공급망을 교란하려는 독재 정권의 공격적 시도에 맞설 수 있게 해 준다"라고 대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현 상황을 대단히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견해이다.

[출처 구글 이미지]

1954년과 1958년  마오쩌둥의 군대는 진먼섬에 포격을 가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오늘날 대만은 훨씬 더 파괴적인 중국군의 사정권 안에 있다. 지난번의 싸움은 불모의 섬 하나를 두고 벌어졌지만 이번에는 디지털 세계의 심장을 두고 싸움을 하게 된다. 이번 싸움에서 베이징은 자신들이 이기는 데 판돈을 걸고 있다.


나오는 말


인민해방군이 대만 땅 진먼(金門)섬에 포격을 가했던 1958년 즈음에 대만과 지구 반대편에 있던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잭 킬비가 집적회로를 발명하고, 모리스 창, 제이 라스롭, 팻 해거티, 웰던 워드 같은 재능 있는 엔지니어들이 TI로 모여든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1958년 진먼 포격전 출처 구글 이미지]

국방부의 달러가 전자 회사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은 군사 우위를 지키기 위해 기술에 의존하고 있었다. 산업 역량을 바탕으로 군의 규모를 키워 나가는 소련과 공산 중국 앞에서 미국은 더 많은 수의 군인과 탱크로 맞설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이 더 많은 트랜지스터와 정교한 센서, 더 효율적인 통신장비를 만드는 건 가능한 일이었다.


트랜지스터의 발명자는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이었지만, 트랜지스터의 대량생산은 벨 연구소 동료인 모하메드 아탈라와 강대원이 트랜지스터 구조 - 모스펫(Metal-Oxide-Semiconductor Field-Effect-Transistor, 금속 산화물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을 고안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스펫 특허 도면과 모하메드 아탈라와 강대원 출처 구글 이미지]

미국의 반도체 생산 기지들이 세계에서 가장 명석한 이들을 빨아들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텍사스, 매사추세츠, 그리고 가장 큰 중심지는 캘리포니아였다. 그것에 모인 엔지니어와 물리학자는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축소하는 것이 다른 미래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는 믿음에 따라 활동했다. 그들의 꿈은 담대했지만 그들이 성취한 바는 그 꿈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기술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장을 만났을 때만 발전 가능하다. 반도체의 역사는 반도체 판매, 마케팅, 공급망 관리, 원가 절감의 역사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는 사업가들이 아니면 탄생할 수 없었다. 밥 노이스, 찰리 스포크 그리고 페어차일드 직원의 퇴직 설문조사에서 남긴 말에서 그런 발전이 가능했던 이유를 더듬어 볼 수 있다. "나는 … 부자가 … 되고 … 싶다"


물론 반도체가 지금처럼 계속 중요한 무언가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연산력에 대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어의 법칙이 끝난다는 것은 반도체 산업,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는 계속 그 장벽을 뛰어넘었다.


오늘날 반도체 산업에 들어오는 돈의 액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 AI 알고리즘에 특화된 칩을 설계하는 스타트업들은 지난 몇 년간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모두가 차세대 엔비디아가 되는 꿈을 품고 있는 것이다. 구글, 아마존, MS, 애플,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많은 빅테크 기업은 이제 엄청난 돈을 들여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고 있다.


게다가 무어의 법칙은 특화된 목적의 칩이 나오면서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누구나 엔비디아 칩을 구입하거나 AI에 최적화된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입함으로써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범용 목적 칩을 사용하는 ’일반 차선‘이 아닌 강력한 전용 칩에서 작동하는 ’추월 차선‘”에 올라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서로 다른 종류의 칩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일이 더욱 쉬워졌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대형 칩 제조사들은 그들이 만든 칩이 어떤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어디에 쓰일지 이전보다 훨씬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한계에 도달했을까? 수천여 엔지니어들은 여전히 ‘아니오’라고 말하고 있다.


1958년 12월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전자공학 회의에 모리스 창, 고든 무어, 밥 노이스가 참석했다. 밤에는 젊고 활기찬 그들이 적당히 맥주에 취해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아무도 그들이 새 시대를 여는 기술 거인들과 맞닥뜨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발명한 반도체와 그들이 이룩한 반도체 산업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구조를 형성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의 미래를 규정지을 것이다.

[고든 무어, 밥 노이스, 앤디 그로브, 모리스 창 출처 구글 이미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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