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 갈리아 전쟁기 1년째에서 4년째까지
갈리아 전쟁 1년째
(기원전 58년, 카이사르 42세)
1. 게르만인을 더 이상 라인강 너머 서쪽으로 들여보내지 마라.
2. 지금까지 잡아둔 하이두이족 인질을 송환하라.
3. 하이두이족과 그 동맹 부족에게 더 이상 굴욕을 주거나 싸움을 걸지 마라.
로마는 군단의 행군 속도를 세 종류로 분류하였다. 수만 명에 이르는 병력의 행군이기 때문에 시속 얼마가 아니라, 하루의 행군 시간과 거리에 따라 분류했다.
1. 평상시의 행군(이테르 유스툼)─5시간에 25킬로미터.
2. 강행군(이테르 마그눔)─7시간에 30 내지 35킬로미터.
3. 최강행군(이테르 막시뭄)─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의 거리를 행군.
“아리오비스투스는 내가 집정관이었던 해에 로마와의 우호관계 수립을 강력히 요청한 자다. 그가 광기에 사로잡혀 우리에게 도전했다 해도, 그대들이 왜 두려워해야 하는가. 그대들 자신의 용맹과 나의 생각에 왜 의심을 품어야 하는가.
로마는 우리 아버지 시대에 게르만인과 대결했다. 마리우스가 킴브리족과 테우토니족을 궤멸시켰을 때다. 그 후로는 노예전쟁(여기에 참전한 자들 중에는 게르만인이 많았다)이 있지만, 그들이 로마와 맞서 그런 대로 싸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로마인한테 배운 전술과 군율 덕분이었다.
이런 예를 보더라도, 싸움에 이기는 데에는 불굴의 의지야말로 최상의 무기임이 분명할 것이다. 로마인들은 오랫동안 아무 이유도 없이 게르만인을 두려워했지만, 대결하자마자 게르만인을 무찔렀다. 게르만인은 헬베티족이 자주 무찌른 사람들과 같은 민족이다. 그 헬베티족을 우리는 굴복시켰지 않은가…….
내일 밤 제4보초시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숙영지를 떠날 것이다. 그대들의 마음속에서 수치심과 의무감이 이기는지, 아니면 공포심이 이기는지를 알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를 따라오는 자가 없다 해도, 제10군단만은 데리고 떠나겠다. 그들의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제10군단은 앞으로 내 친위대가 될 것이다.”
갈리아 전쟁 2년째
(기원전 57년, 카이사르 43세)
첫째, 갈리아 중부가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상, 로마군의 다음 표적은 자기네 영토일 거라는 위기감.
둘째, 게르만인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로마인의 침입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자부심.
셋째, 로마의 세력이 미치면, 약육강식의 방식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리라는 우려.
“이런 진영은 지형상 유리하다. 배후에는 강이 흐르기 때문에, 적의 공격으로부터 배후를 지켜주는 동시에 레미족을 비롯한 우호 부족들이 보급해주는 군량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다. 강에는 다리가 걸려 있기 때문에 다리 건너를 요새화하고, 막료인 사비누스에게 6개 대대를 주어 경비하게 했다. 또한 진영 앞쪽의 저지대에는 좌우에 3.5미터 높이의 방책을 세우고, 너비 5.5미터의 참호를 팠다.”
“강화 교섭도 무장 해제가 이루어진 뒤에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네르비족에게 취한 것과 같은 조치는 취해주겠다. 즉 로마와 강화를 맺은 부족을 공격하는 것은 로마에 반항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므로, 너희 부족을 공격하지 말라고 다른 부족들에게 명령하겠다.”
갈리아 전쟁 3년째
(기원전 56년, 카이사르 44세)
1. 부장 라비에누스에게는 기병대를 주어 갈리아 북동부로 보낸다. 라인강과 모젤강 사이에 있는 트레베리족 영토가 목적지이나, 가는 도중에 로마의 동맹 부족인 레미족의 충성을 확인하고, 게르만인들이 이 틈을 이용하여 라인강을 넘어오면 그것을 저지하는 것이 임무였다.
2. 젊은 크라수스에게는 보병 12개 대대 7천여 명과 나머지 기병을 전부 주어 남쪽의 아퀴타니아(아키텐) 지방으로 파견한다. 이 지방의 갈리아 부족들이 대서양 연안을 따라 북상하여 베네티족을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3. 막료 사비누스에게는 3개 군단을 주어 북쪽으로 파견한다. 오늘날의 노르망디 지방에 사는 베넬리족을 제압하기 위해서다.
4. 카이사르가 깊은 애정을 담아 ‘젊은 브루투스’라고 기록한 데키우스 브루투스는 선단을 이끌고 바다 쪽에서 베네티족을 공격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5. 카이사르 자신은 나머지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육지 쪽에서 베네티족을 공격한다.
갈리아 전쟁 4년째
(기원전 55년, 카이사르 4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