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성쌍둥이 영화 #2
첫사랑 영화 특유의 청량한 포스터. 늦여름에 어울리는 로맨틱코미디 영화 <너의 결혼식>은 고등학생 시절 풋풋한 첫사랑을 좇아 대학까지 진학한 한 남자의 꽁냥꽁냥하고 처절한(?) 얘기를 다룬다. 그런데 이 영화, 플롯이 어떤 영화와 묘하게 닮았다. 바로 로코계의 레전드 <500일의 썸머>다. 이에 두 영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보았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의 결혼식>은 제목 그대로, 황우연(김영광)이 운명이라고 믿는 첫사랑 환승희(박보영)와 만나고, 헤어지고, 결국 승희의 결혼식을 마주하기까지의 과정이다.
<500일의 썸머> 역시, 톰(조셉 고든 레빗)이 운명이라고 믿는 썸머(주이 디샤넬)를 만나고, 헤어지고, 결국 썸머가 다른 이와 결혼하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너의 결혼식>의 승희가 현실에 맞추어 사랑한다면, 우연은 사랑을 통해 현실을 바꾼다. 승희는 고등학교 시절 우연과 풋풋한 마음을 교환하지만, 결국 현실에 쫓겨 우연을 떠난다. 그 후 대학교 때는 학교 선배와 연애를 하고, 벨기에 연수 때는 벨기에 주재원의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 항상 승희의 곁에 있는 것은 그녀가 속한 현실에서, 현재 현실 속의 승희를 받쳐주는 사람이다. 즉, 승희는 사랑을 현실에 맞춘다.
반면 우연의 경우, 운명적 사랑이라고 믿은 첫사랑 승희를 만나기 위해 재수를 한다. 대학에서 승희를 만난 후에도, 남자친구가 있는 승희를 따라다니고, 제대 후 승희를 재회했을 때는 자신이 여자친구가 있는 상황임에도 승희와의 로맨틱한 순간을 꿈꾼다. 즉, 현실을 자신의 사랑에 맞추어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첫사랑을 운명으로 여기는 우연은 승희가 원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승희가 준 것 보다는 자신이 첫사랑이라는 대상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 승희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500일의 썸머>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주의자인 썸머는 변하는 현실에 맞추어 톰을 대한다. 톰과 로맨틱한 순간을 보내다가도, 톰의 로맨틱한 기대와는 달리 이별 후 재회했을 때의 파티에서는 거의 친구 미만인 정도로 톰을 대하기도 한다. 썸머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운명 같은 것도 없다는 현실주의에 기반한다.(하지만 이는 결국 썸머 자신 그대로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바뀌게 된다)
반면 톰은 사랑 때문에 일희일비하고, 운명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을 꿈꾼다. 톰은 자신과 썸머가 보낸 순간을 항상 로맨틱하게 기억하고, 이는 결국 썸머가 톰을 떠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썸머가 원한 것을 하지 않은 순간, 썸머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신경하게 대했던 순간, 그 모든 순간을 톰은 로맨틱하게만 기억했기 때문이다.
<너의 결혼식>의 승희가 우연과 헤어지게 된 것은 우연이 뱉은 말실수가 자신의 아버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승희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후회할까 두렵다는 것이었는데, 그는 늘 어머니를 탓하며 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가 하던 말이었다.
<500일의 썸머>의 썸머는 사랑에 의존하지 않는다. 또한, 연인 같은 관계에서도 언제든 떠날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주는 벽을 가지고 있다. 이는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자신에게서는 누군가 떠나도 상처받지 않지 않으리라고 스스로를 훈련시킨 결과다.
<너의 결혼식>은 두 사람의 만남부터 시작된다. (제목이 스포이긴 하지만 그 결혼식이 너와 나의 결혼식인지 너와 남의 결혼식인지는 모르므로...) 그래서 끝까지 두 사람의 결말이 어떨지 모른다는 열린 마음으로 보게 된다. 우연 개인 혹은 승희 개인보다는 커플로서의 그들의 행복, 아릿함 등 감정에 더욱 이입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500일의 썸머>는 시간적인 흐름보다는 무언가를 회상할 때의 뒤섞인 기억의 흐름처럼 전개된다. 그렇기에 구성이 다소 역순행적이다. 우선, 톰이 썸머에게 차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결별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만남부터 다시 제시된다. 결말을 알고 보는 데에서 오는 객관화에 이어 전지적 시점에서의 톰과 썸머의 배경 및 유형 설명은 그들의 관계를 더욱 객관화해서 보게 만든다. 커플로서의 두 사람보다, 그들 각각이 가진 서로의 오해에 더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 다 이기적인 사랑이긴 했지만 방식이 완전히 반대다. 우연이 승희가 원하지 않는 것을 굳이 한다면, 톰은 썸머가 정말 원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우연은 사랑에 있어 자기 자신을 지우고 승희만 생각하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승희 중심의 사랑이다. 독이 되는 순간도 많았고, 그렇게 한 것에 우연이 회의를 가지면서 더 큰 파란이 일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순간도 있었다. 우연은 승희가 좋아한다고 말한 노래를, 승희가 우울한 날 방송실 문을 걸어 잠그고 불러준다.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승희가 마음의 문을 여는데에 일조한 사건이기도 하다.
톰의 경우, 썸머가 원하는 것을 대놓고 말해도 못알아듣고, 썸머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기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썸머에게 주려고 하는 자기 중심의 사랑이다. 그래서 썸머가 링고스타를 좋아한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톰은 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며 넘겨 버린다. 반면, 썸머가 톰이 듣던 음악에 대해 자신도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했을 때는 썸머를 거의 운명의 상대로 확신한다.
물론 두 사람 모두, 결국 정말 상대가 원하는 것보다는 다소 자기 중심적이고 독단적인, 다소 이기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대했다는 점은 같다.
우연 중심이긴 하지만 승희의 입장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는 <너의 결혼식>이 서사나 감정의 전개 구조에 있어서는 더 친절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500일의 썸머의 전개구조를 더 좋아한다)
<너의 결혼식>이 기승전결을 가진 두 사람의 연애사를 다룬 '스토리'라는 느낌이라면, <500일의 썸머>는 뒤죽박죽이고 왜곡 투성이인 사랑의 '회상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형식이다. 그래서 거의 오롯이 톰의 시야 안의 대상화된 썸머만 등장한다. 톰에 대해 썸머가 느끼는 감정이라거나, 톰과 헤어지기 전까지 썸머가 무슨 고민을 했는지 등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그 대상화를 깨고, 썸머가 생각하는 것을 묻고, 제대로 소통하는 것이 톰이 했어야 할 일이다. 그런 만큼, 영화의 주제와 형식이 아주 밀접하고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닮은 점과 다른 점이 많을텐데(마지막부분 남자주인공의 깨달음과 성장 등...), 일단 이 정도로 맺음을 짓도록 하자. 사실 <500일의 썸머>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고 굉장히 탄탄한 작품인 만큼, 비교가 다소 편향적이었을 수 있긴 하겠다. 하지만 <너의 결혼식>도 오랜만에 커다란 유쾌함, 그리고 오래 남는 애틋함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계속 생각날 만한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