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시 Dec 10. 2018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건 윤리적인 걸까?

논리와 정보에 매몰되지 말고 항상 양면을 살피자

친구와 어떤 가치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것은 항상 윤리적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입장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NO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해당 문장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은 윤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전제 자체가 당위를 획득하지 못하는 사레가 워낙에 많음으로, 잘못된 전제에서 파생된 위의 문장도 틀렸다고 볼 수 있다.

방송인 이경규가 한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누구든 확고한 신념을 가지면 무서워지지만 그것이 멍청한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위험하다. 인간은 무지할수록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며, 자신의 행위를 경계할 수 있게 해주는 다른 시각을 볼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례 - 자유 보장에 대한 논의


최근에 친구가 카페에서 옆 테이블 손님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한 일이 있었다. (테이블 사이 간격이 가까웠던 데다가 혼자 있었던 탓에 친구의 귀에는 옆 테이블의 대화가 오롯이 들렸다고 한다)


그들은 새내기 배움터를 준비하는 학과 학생회 구성원들이었다. 학생회까지 할 정도면 자신들이 어느 정도 의식도 있고 바른 가치관을 지녔을 거라는 확신에 스스로 빠져있었을만도 하다.


실제로 이들은 '자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소신 있게' 말했고, 새내기 배움터에서 자유가 실현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야기해 나갔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의 개념에 대한 논리적 추론에 갇혀 윤리성을 상실한, '맹목적인 자유'에의 추구로 번졌음에도 아무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는 정말 중요하다. 자신이 성소수자가 싫다면 그렇게 발언할 자유가 있어야 하고, '병X' 같은 단어를 자유롭게 쓸 수도 있어야 한다. '병X'의 경우 사회에서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라며 쓰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새터에 장애 학우가 온다고 하더라도 그 단어가 자기들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건 장애 학우들도 알 것이다. 그러므로 '병X' 같은 단어를 쓸 자유를 막지 말아야 한다. 보통 이런 자유가 억압되는 경우가 많아 새내기들은 자유롭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테니, 우리 학생회 멤버들이라도 나서서 이런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자유는 옳다'는 전제에 심취해 윤리가 결여된 논리에 갇힌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었다. 그 전제 자체가 과연 어떤 상황에서든 보편타당한가, 한도와 조건이 없이 긍정적이기만 한 미덕인가에 대한 의심이 결여된 논의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맹점을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해 바보같은 결정을 내리고 마는 '집단 사고'의 예라고도 볼 수 있겠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유는 더 이상 지향되어야 할 형태일 수 없다는, 아주 기본적인 맹점조차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셈이니.


논의와 논쟁의 장이 많아지고, 정보를 얻을 창이 많아질수록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아주 작은 단면의 정보를 가진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똑똑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나 스스로를 똑똑한 것처럼 바라보는 착각에 빠질 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럴 듯해 보이는 정보와 논리에 매몰되지 말고 항상 양면을 살피자. 내가 주장하는 것에 허점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내가 가치판단을 내리는 기준 자체가 완전하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래야 나의 알량한 아는 체와 소신발언의 탈을 쓴 오만, 내가 보고 싶은 정보만으로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을 버리고, 진짜 해결을 위한 논의와 성숙을 위한 사고가 가능해질 것이다.


P.s. 물론 발언을 하는 것과 발언의 장을 만드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누구에게든 지향되어야 할 행위라고 믿는다. 단, 그것에는 '반론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하고 화자와 청자 상호 간에 그것의 타당성을 적극적으로 '검증할 의지', 그리고 더욱 진실 혹은 진리, 더 나은 방향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것을 '수용할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P.s. 무지 속에서 피어난 신념으로 '개념인'이 되고 싶은 소망에 오만으로 점철된 '소신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진실과 진리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게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현재 믿는 것이 진리라고 일단 전제해두고 검증의지 없는 발언, 자신을 마치 깨어 있는 시민으로 만들어 주는 착각을 주는 발언에만 중점을 둔다. 얕은 지식으로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스탠스를 취했다가, 욕을 먹으니 자신은 사실 '얕은 지식으로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거였다고 했다가, 제 분을 못 이겨 다시 '정상적인 여자를 지지한다'는 마음 속의 오만한 잣대를 꺼내버린 래퍼 산이가 대표적인 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지는 무지를 부른다 - 심리학으로 본 산이의 무지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