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에서 환대가 갖는 의미에 대해 말한다. 낯선 곳에서 여행자는 그들의 환대 덕에 그들에게 신뢰를 보내고, 신뢰는 다시 환대로 이어진다. 이런 순환은 결국 그곳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한 달 전 떠난 블라디보스톡 여행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치거나 지나치며, 친구와 이런 얘기를 나눴었다. 한 여행지의 인상은 결국 그곳에서 마주하는 사람에 따라 180도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이다.
여행지를 완성하는 것은 그 장소가 가진 유산 혹은 그 속을 채우는 사람이다. 장소는 오래전의 공간을 보여주고, 사람은 그곳에서 쭉 이어진 문화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여행지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의 유산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현재로 끌어오는 것, 그 문화를 느끼게 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우리는 환대와 홀대를 모두 경험했다. 그들의 반응에 따라 여행자로서의 우리가 기분도 하늘과 땅을 오갔다.
가령 첫 날 숙소 주인들은 우리를 환대로 맞아주었다. 새벽 시간임에도 지친 기색없이 밝은 미소와 함께 우리를 맞았고, 숙소를 떠날 때는 우리의 여행이 즐겁기를 빌어주었다.
루스키 섬에서 가이드 알렉스는 친절했다. 그는 자신의 얘기를 우리가 들어주길 원하는 것 같았는데, 어떤 대상이 자신의 이야기를 애써 하는 것은 최소한의 존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만하고, 자신이 즐거움을 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환대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그들에게서 우러나온 친절함 말고도 '계획된 환대'도 있다. 가령 수프라 레스토랑에서의 기운 넘치는 환대는 계획되고 교육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에너지와 미소는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여행을 함께 한 리보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로 이곳에서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를 꼽았다.
반면, 다수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홀대는 그 여행지의 수준을 상상 이상으로 낮춘다.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오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물었던 질문 중 하나가 '인종차별 없었냐'였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애석하게도 '있었다'였다.
한 번은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갑자기 프리허그를 하자며 영상을 찍었고, 한 번은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인사하고 말을 걸며 키득거렸다. 그나마 나는 '저런 사람이 결국 이곳에도 있구나'하며 실망하고 이곳을 좋게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정도였지만, 인종차별을 처음 겪은 친구는 정말 기분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다음 날까지도 그 순간의 수치스러움이 계속 생각나고 그걸 처음부터 알아채지 못한 자신이 생각나 몸서리를 쳤다.
'일부'라고 생각하고 치워둘 수도 있지만, 그들의 사소한 행동에서 우리는 그들의 문화와 교육수준을 보게된다. 저들은 오래된 악습의 가치관을 본능적으로 가진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문화속에서 내재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의 문화수준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여행자를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경험은 적대감을 쉽게 낳고 만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톡이라는 공간은 내게 '간다고 말리지는 않지만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은 장소' 정도로 남았다. 첫 날 숙소에서 우리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던 숙소 주인은 블라디의 방문자들이 이곳을 어떻게 생각했으면 했을까? 모든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분들 같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질문은 혹시 이곳에 방문한 여행객을 만난다면, 환대와 신뢰라는 긍정의 순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를 낯선 이곳의 문화로 보는 여행객들이 이곳을 더 나은 곳으로 기억하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