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에서 일하고 아기 키우고 살림을 하고 삽니다.
12월 20일 목요일. 현재 시각, 10:30am EST.
바깥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섭씨 4도.
보스턴의 South End 지역에 있는 작은 베이커리에서 커피 한잔과 차가운 로즈마리 스콘을 씹으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커피는 너무 뜨겁고 스콘은 차갑다. 줄은 너무 길고 점원은 그리 친절하지 않아서 스콘을 데워달라고 하지도 못했다. 감기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 급하게 advil을 뜨거운 커피와 함께 털어 넣었다.
이 모든 것이 이상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나에게 지금 여기서의 일분 일초가 주는 기쁨은 어떤것과도 바꿀수가 없다. 나 홀로 앉아서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손꼽아 기다려왔던 일년만의 진정한 휴가다.
작년 이 맘때에는 임신 9개월 만삭의 몸으로 작은 아가가 주는 행복을 기대하며 새로 다가올 한 해를 기다렸다. 모든걸 다 잘해낼 수 있을것만 같았다.
지난 일년간 나는 생각보다 훨씬 행복했고 더 많이 웃었다.
하지만 일년간 주어진 삶의 무게는 너무나 버거웠다.
출산과 육아는 교과서와는 달랐다, 왜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제왕절개 부작용이 있었던 건지,
왜 우리아기는 백일이 지나도 기적이 오지 않는건지,
책에서 이야기 하는 적정 분유량은 1000ml 인데 왜 우리 아기는 1400씩 먹어도 배고프다고 밤새 우는지.
그리고 워킹맘이 되는 건 왜 이렇게 남들에게 미안한 일이 많은건지.
살면서 죄송하다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던 한 해 였던것 같다.
회사에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역치보다 더 높은 퀄리티 높은 일을 요구하고
매일 하루를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마무리하며 모니터를 껐다.
아무튼 그렇게 일년이 지나가고 오늘부터 공식 휴가가 시작됐다.
(미국의 많은 회사들은 크리스마스가 있는 한 주 부터 새해 첫날까지 일주일을 쉰다)
지금 앉아서 조용히 타자를 치면서 다가올 내년을 생각해 본다.
내년에는 회사에서의 일 외에는 계획하는 것을 그만 두기로 했다.
육아도 살림도 어차피 계획대로 되는게 없었다, 가장 융통성과 느긋함이 필요한 부분이다.
(절대 안고쳐질것 같던 아기의 밤잠도 밤수유도 시간이 지나니 다 해결되었고, 항상 엉망인 집은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여기서 결심한 내년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나 혼자 삶을 정리하는 시간, 지나가는 사건들과 생각을 글로 옮기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매주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두 시간 정도는 글을 쓰려고 한다.
어딘가에는 털어 놓고 싶지만 그렇다고 잊어버리기는 싫은 나의 이야기들이 많다.
키와 몸무게가 또래보다 99%가 큰 무거운 11개월 아기를 키우는 어깨와 등이 빠질것 같은 신나는 하루하루,
영어과를 졸업했지만 영작에서는 C를 받아서 몸서리치게 라이팅을 싫어하던 여자가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매일 영어로 글을 써야하는 인생을 살게 된 이야기,
지난 세월들에 대한 단상,
책을 읽고 가끔 영화를 보는 이야기,
나중에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Bed & Breakfast 를 운영하고 픈 꿈에 대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매주 써보려고 한다.
어쩔수 없이 엄마와 아내가 되어버리는 집에서 말고,
나 홀로 있을수 있는 항상 따뜻한 커피가 내려지는 The Coffee Hous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