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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Y Jul 13. 2020

시부모님, 혹은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 그 어딘가 사이

일간이슬아를 읽고 - 어려운 시부모님 극복기. 

하마의 할아버지를 만난 에피소드를 읽는 도중 1920년도에 태어나 2020년을 사는것은 어떤 것일까 라는 문장에 눈과 마음이 멈추었다.

 

1937년과 1944년에 태어나 겪는 2020년은 어떤 것일까. 이제는 나의 부모님 집에서도 조금씩 느껴지는 공기이지만, 특별히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면 느껴지는 오래된 물건의 체취와 외로움이 있다. 자식들이 출가하고 나서 덩그러니 주인 잃은 물건들 위에 앉아있는 작은 먼지 들은 공기 사이를 유영하며 세월의 무게를 집 위에 한번 더 덧칠한다. 그래서 시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을 다녀오면 그래서 마음이 더욱 안쓰러워 지는것. 


오직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 먼저 생각하시는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씀에 종종 섭섭하여 상처받지 않기위해 적당한 거리를 둔 신세대 며느리가 되어야겠다 생각도 하지만 뒤척이는 남편의 등을 보며, 두살 아들의 엄마인 며느리 역시 마음이 편치 만은 않다. 오늘처럼 이렇게 아들이 엄마와 전화로 다투고 난 날에는 저 멀리 다른 대륙에서 온종일 아들 생각 뿐일 엄마도, 괜히 누워서 심드렁하게 핸드폰을 보는 아들도 편안하게 잠들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게 며느리의 삼십년 후 모습일수도 있지 않을까.


삼십년을 함깨 살아온 나의 부모는 긴 세월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을 맞대고 살아왔기에 아무리 답답한 말과 행동을 해도 학습된 메뉴얼이 있기에 자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떻게 한달도 채 같이 안 살아보고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시부모님을 마음속 깊이 이해할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실거라는 생각도, 혹은 젊은이들 처럼 쿨한 사이로 남자는 마음도 포기하기로 해본다. 돌아보면 서로의 생각과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 이기고 지기고의 문제가 아닌것 같다.


1930년과 1940년도에 조선땅에 태어나 광복을 겪고 남북전쟁을 겪고 역동의 70년대와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와, 아랍에미레이트 건설 붐을 40대에 겪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2020년을 살고 계신 분들. 

1980년에 태어나 김건모와 서태지 노래를 듣고, IMF를 겪고 월드컵을 겪고, 모든 내 친구가 대학교를 가고, 힐링이 대세였던 2010년도 중반을 보내고, 꼰대를 놀리는 문화에 격한 공감을 보내며, 미투를 응원하고, 신신 르네상스 마냥 모든이의 생각과 취향이 존중되는 2020년을 살고있는 나의 이야기는 정말 다를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는 인터뷰이라고 생각하면 그 무겁고 부담스러운 공기가 조금은 애틋하고 정겨워 지지 않을까, 이렇게 글을 써 놓고 내일은 또 한 소리 듣고 실망 할까봐 걱정하는 내일의 며느리를 잠재우고 오늘의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작은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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