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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다운 Mar 12. 2021

1화. 갑자기 찾아온 공백

나의 갭이어(Gap Year) 이야기

 나는 일을 안 하면 불안해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밤을 새우면서 몰아치게 일하는 워커홀릭은 아니지만, 그래도 규칙적으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존재가 무의미해지는 그런 우울한 기분이 든다.


2020년 12월,

 서울에서 열일을 하던 나는 갑자기 남편으로부터 '부산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응? 그럼 내 일은?"

연구소를 다니며 올 한 해 프로젝트를 잘 마감하고 내년도 사업을 한창 기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강의는?"

수업 첫 개설부터 30기까지 회사를 다니면서도 퇴근시간과 주말을 할애해가며 꾸준히 이어온 수업이다. 그리고 이제 2 기수를 동시에 열어도 항상 조기마감으로 연승을 달리는 안정된 브랜드가 되었다.


 남편에게 물어본들 해결책이 있을까... 그렇게 하루만 벙쪄 있다가 다음날부터 바로 연구소와 학원에 굽신굽신 하며 사정을 말씀드리고 인수인계할 후임자를 찾았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유산을 했고 수술도 받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연말이 지나고...



2021년 1월,

나는 부산이 있다. 대저토마토로 유명한 동네의 김해공항 안 공군관사에 산다.

주변이 휭~하다.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긴 어디...)


 이사 오기 직전, 대전에 있는 친정집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었었다. (부산에 내려가면 코로나 검사와 격리를 해야 해서 아직 종강하지 않은 강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종강할 때까지 친정집에서 다녔다) 엄마와 같이 지내면서 왠지 모르게 엄마의 잔소리가 거슬리고 피곤해서 짜증을 내다가 결국 울음이 터졌다. 그동안의 모든 내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았고, 주변 사람들은 나의 커리어는 생각도 안 해주고 그저 '이제 드디어 건강한 아기가 생기겠구나' 하며 좋아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펑펑 울면서 부산으로 등 떠밀려 왔고 백조가 되었다.


2021년 3월,

바쁘게 살고 있다ㅋㅋㅋㅋㅋㅋ

벌써 적응을 다 했다.


그새 남편보다 더 많은 친구가 생겼다. 무기력을 깨워줄 집무실도 있고, 대저 짭짤이 토마토도 너무 맛있다.

출처 : https://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58377


관사 동네 안에 캠핑장도 좋고, 가끔 아주 큰 비행기가 날아가는 하늘도 멋있다.

여전히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한 생계수단은 아니지만, 경력단절이 아닌 안식년의 시기로 올 공백기(Gap year)를 보내려고 한다.


사실, 이사 온 직 후에는 습관적으로 다시 일거리를 찾았다. 마침 또 부*은행에서 uxui 디자이너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봐 버려서 (이미 마음은 100번 지원함) 손이 덜덜 떨렸고, 지인이 어디 추천해준다 어쩐다 하면 그때마다 고뇌끝에 정중히 거절하고 바로 남편에게 달려가 '아까웡 아까웡' 하며 투정을 부렸다. 그렇게 마음은 계속 흔들렸지만, 강력한 나의 탈은 계속해서 나를 새뇌시켰다.


올해는 열일 말고 자유

갭이어(Gap year)란 1960년대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제도로, 학생들에게 고교 졸업 후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새로운 일이나 여행을 보내면서 자아탐색을 할 수 있는 1년의 자유시간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갭이어를 도입하고 나니 대학에서도 중도 포기자가 급격히 줄고, 학업 성취도도 15% 이상 향상되었다고 한다.

http://lltimes.kr/?p=26120


인생 전환기는 고등학생도 맞이하지만 성인들도 맞이한다고 본다. 그리고 물론 결혼한 30대 중반의 여성에게도. (아이를 낳으면 더 심해지겠지..ㅠ 앞으로 더더 심해질 거야 ㅠㅠ)


이 타이밍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새로운 곳에서, 깨끗한 자연과 탁 트인 활주로를 보며 휴식기를 갖는 건 누가 계획했는지 몰라도 너무나 완벽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보낸 갭이어를 기록하려고 한다.

나의 갭이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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