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정말 안 읽었다. 우리 가족이 모두 그랬다. 학교에서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책을 조금 읽다 포기하고 바로 인터넷으로 '독후감'을 검색하거나 해피캠퍼스(ㅠㅠ)를 돌아다니며 편법을 썼다. 그만큼 나에게 '책'은 너무 지루하고 어렵고... 그런 활동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지식이나 상식도 풍부하고 정서적인 안정도 취하는 것 같고, 타인에 대한 이해력도 높고... 간접경험을 많이 해서 그런가 뭔가 통달한 느낌... 나도 그런 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나보다.
갭이어(Gap year)를 맞이하면서 여유롭게 즐기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작게나마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고, 그렇게 책 많이 읽기를 목표로 잡았다. 막연히 몇 권 읽기 이렇게 정했는데, 여전히 나는 실행하지 않았다. '책 읽는 습관'을 갖고 싶었지만 이 작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런 고충을 지인에게 털어놓았더니 어느 친구가 좋은 아이디어를 줬다. 하루에 딱 15분만 읽어보라고....
Q. 어떻게 해야 내가 제발 책을 읽을까?
*습관 설계 레시피 1. 혼자서는 절대 꾸준히 안 할 것 같아서 카톡으로 함께할 동지를 모았다. 2.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15분 이상 책을 읽었다. 3. 책과 읽은 시간을 폰으로 찍어서 카톡방에 공유하고 참여인원들과 함께 '칭찬칭찬', '으쌰으쌰'했다.
습관의 목표를 '한 달에 2권읽기'에서 '하루에 15분 읽기'로 바꾼 것이 신의 한수였다. '하루에 15분 책 읽기'는 너무 쉬운 행동이다. 그리고 단순하다. 거창한 목표 말고 아주 쉽게 목표를 바꿨더니 아무 부담 없이 실행할 수 있었고, 동지들과 함께 읽다 보니 꾸준히 지속할 수 있었다.
매일 15분씩 읽은 흔적들
내 평생 책을 이렇게 많이 읽어본 것은 처음이다. 습관적으로 책을 찾고, 일상에서도 어떤 상황에서 내가 읽었던 책 내용이 생각나고, 다음에는 무슨 책을 읽을까 습관적으로 고민하고... 그렇게 내가 변해갔다.
2021년 1월부터 4월까지 읽은 책들.. (내 기준에서는 정말 많이 읽었다)
Q. 하하, 책 읽기 습관이 생겼으니 이제 독후감도 써볼까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ㅋㅋㅋ
그새 나는 또다시 더 높은 목표를 품기 시작했다. 과연 실행을 했을까? 실행하기 직전 나는 본능적으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독후감을 블로그에 쓸까? 노트에 쓸까? 블로그에 쓴다면 책 주제도 통일할까?, 스포가 너무 많으면 안 될 텐데, 책 사진을 예쁘게 찍어야지, 노트북은 충전되어있나? 카페 가서 써야 영감이 좋을 것 같은데......
온갖 생각이 많아지면서 '독후감 쓰기' 습관은 완전 대 실패로 끝났다. 목표를 정한 단 하루만 동기(기대감)가 높았고, 그다음 날부터는 두려움과 걱정이 지배했다.
Q. 습관이 잘 지켜지지 않아도 '내 탓'하지 않기
자기 계발 또는 자기 관리를 하기 위한 습관을 잘 지키지 않았을 때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내 탓부터 하기 시작한다. 또는 남이 꾸준히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에도 그 사람의 의지력을 탓하곤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교육업계에 종사하면서 습관 형성과 동기부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우선 결론은 '의지력' '열정' '각오'와 같은 동기는 원래 변덕이 심하다.
동기(Motivation) = 변덕쟁이
따라서 습관 설계를 할 때에는 동기에 의존하면 절대 안 되고 실행하기 쉽게 계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포그의 행동모델에 따르면 행동(Behavior)은 동기(Motivation), 실행할 수 있는 능력(Ability), 자극 (Prompt)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한다.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이 3가지 요인을 잘 설계해야 하는데 3가지 요인중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 바로 '능력'이다.
포그의 행동설계모델
위에서 언급했듯이 동기는 변덕이 심하고 또한 여러 가지 마음이 항상 상충된다. (잘하고 싶은 성취욕구가 있으면서 동시에 여유롭게 쉬고 싶은 안정의 욕구가 있다. 이 상충되는 2가지 욕구는 외부 상황에 따라 너무 쉽게 변한다) 따라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도록 즉, 실행하기 쉽도록 목표를 잡는 것이 첫 번째 고려사항이다. 게다가 능력은 실행하면 할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점점 더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행동하기 쉽게 목표를 잡았다면 '언제' 할 것이냐를 정한다. 이것이 바로 자극을 설정하는 것이다. 나의 책 읽기 습관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확히는 '알람 소리'가 나의 자극이였다. 자극이 있어야 행동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라도 꼭 만드는 것이 좋다.
마지막이 동기를 높이는 것이다. 동기는 마음가짐으로 성취욕, 기대감과 같은 긍정적 마음과 불안감,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마음이 동시에 있다. 여기서 긍정적 마음을 높이는 방법(보상, 경쟁)은 스트레스나 경직,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들 수 있으므로 부정적 마음을 낮추도록 상황을 바꾸는 것이 꾸준한 동기 유지에 더 바람직하다. 익명으로 글을 쓴다거나, 달콤한 음식이나 약간의 알코올을 마신다거나, 조명을 어둡게 하는 등의 방법이 부정적 마음을 낮추는 방법이다.
Q. 자기계발과 자기관리 그 사이 어디쯤...
열일하면서 살아온 나에게 갭이어(gap year)라는 시간은 여유를 주면서 동시에 불안을 준다. 남들은 매일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데, 나는 멈춰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가끔 가끔씩 든다. 물론 삶에서 달려가는 '속도'보다 어디로 가느냐 그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그래서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아로마 목욕을 하고 건강식 요리를 하고, 식물을 가꾸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세상'에 집중된 삶에 익숙했는데, 갑자기 '나'에게 집중된 삶을 살게 되니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해 발견하고 수련하는 자기관리와 외부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자기계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우당탕탕 즐기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