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이 Jun 18. 2022

발렌시아가Balenciaga 가방을 산다는 건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를 떠올리며



 2065000원. 일시불로 질러본 돈 중 가장 큰 금액. 내 발렌시아가 르 카골le cagole 실버 가방의 가격이다. 패션 매거진에 잠시 몸을 담았을 때 6개월 주기로 브랜드들의 새로운 컬렉션이 나오면 그에 대한 간략한 캡션을 정리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려야 했다. 그때 업로드를 위해 본 사진 속의 이 가방에 마음을 뺏겨버렸다. 특히 하트 쉐잎의 거울의 귀여움은 기꺼이 그 가격을 지불한 용의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뒤로 구매 전까지 나의 모든 소비는 가방을 살 수 있는 가격을 대신한 무언가가 되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몇 달 뒤 구매했고, 여전히 잘 멘다. 최근에는 가방이 화보의 스타일링 중 일부로 실리기도 했다. 내가 실린 것은 아니지만 내 새끼가 실린 기분이었다. 뽕을 뽑는 기분으로, 일시불로 결제했지만 할부를 갚는 기분으로 가방을 멘다.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만으로 어떤 힘이 되는 물건들이 있다. 그 힘이 진실로 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물건은 그저 물건일 뿐이다. 그 위에 덧칠된 어떠한 기호에서 힘을 얻는 것일테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비로 드러내는 것은 가장 흔한 방식이며 어쩌면 누군가에겐 가장 어려운 방식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가장 쉬운 방식이기도 하다. 이 모든 사실을 안다고 가정해도 소비는 여전히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강력한 수단 중 하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향은 자본을 가진 이가 향유할 수 있는 선택 조건이기도 하다. 기호는 남과 자신을 구별하는 잣대가 된다.) 취향이자 경험들의 총체, 나만이 가진 무언가가 소비를 결정하는데 그 어떤 발동을 걸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걸 위해서 늘 그렇게 무언가 가슴을 뛰게 만들 물건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자본주의 현실은 계속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고 계속해서 소비를 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그게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필요하지 않은 것도 필요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마케팅의 본질일 것일테고 말이다. (이는 내가 패션 매거진에 일하면서 느꼈던 회의와 맞닿아 있다. 끊임 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컬렉션과 소비를 조장하는 에디터들.)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듯 나의 악습관은 소비이다. 물론 이 악습관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지갑 사정이라는 현실에 자주 막히기는 하지만 지금껏 원하는게 있으면 당장 먹고 살 돈이 쪼달려도 그 물건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맛있는 음식은 잠깐이지만 물건은 영원히 남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다. 삶에서 ‘안정’과 가까운 무언가를 원하게 되면서 돈을 모으는 것의 중요성과 소비와 동떨어진 취미나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소비 말고 재미를 찾는 법에 대해서 찾으려는 노력은 어쩐지 지금보다는 더욱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란 확신이 든다.


그럼에도 패션을 지켜보고 그 안에서 자유를 찾는 것은 내게 즐거운 일이다. 적당한 선에서 중고 거래 플랫폼 속 맘에 쏙 드는 옷을 찾을 때의 희열감은 엄청 나다. 몇 년이고 그 옷을 볼 때마다 모종의 뿌듯함이 마음 한켠에서 빛나니까. 그 뿐만이 아니다. 패션은 단지 패션이 아니다. 패션은 사진, 음악, 미술, 소설, 시, 영화 등 여러 영역의 미적 현상들의 총체이며 깊게 들여다보면 현재 자본주의 문화와 삶이 갇혀 있는 신화성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순간들을 운 좋게 마주할 때도 있다. 이런 순간들이 결국 내가 패션을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특히 디자이너 뎀나의 발렌시아가가 그런 흥미로운 지점을 보일 때가 많다. 공교롭게도 나의 첫 하이브랜드 가방은 위에서 말한 발렌시아가의 르카골이었고 그들이 브랜드를 보여주는 방식에 흥미를 느낀다. 무엇보다 정치와 패션이 만날 때가 더욱 그렇다.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전시 중 ‘미션 완료: Belanciege (2019) 작품

그런 중에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에서 ‘미션 완료: 벨란시지 (2019) 강연 퍼포먼스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독일 장벽 붕괴 이후 경제적 불평등과 국제적 사영화(민영화)를 다룬 ‘미션 완료: 벨란시지 (2019) 강연 퍼포먼스 작품이다. 작가 슈타이얼이 직접 등장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뎀나가 베트멍Vetement에서 패션 정치를 실험했던 것부터 발렌시아가가 어떤 방식으로 ‘빈곤의 사유화’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화두를 던진다. 내 삶의 화두인 소비와 패션에 대한 생각을 확장한 경험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영국 그리고 토트넘 vs 마린의 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