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브르타뉴주의 소도시 생 말로 Saint-malo
홍수로 센 강이 넘쳐흐른 6월의 어느 날, 이제는 비 내리는 파리의 잿빛 도시보다는 푸른 하늘과 마주한 쪽빛 바다가 보고 싶어 질 때쯤 나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주에 위치한 항구 도시 생말로로 향했다.
Ni francais ni Breton, mais Malouin suis
파리에서 차를 타고 세 시간을 달려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 생 말로. 차창 너머로 생 말로의 바다가 보인다.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 짙은 감청색의 바다가 색다른 곳이다. 하지만 해가 잘 쬐이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일조량 덕에 청록색으로 빛나는 바다를 볼 수 있다.
생말로의 선착장은 무역항인 탓인지 정박한 배들이 많았다. 유람선은 물론이고 원양 어선과 무역선들이 줄줄이 교각 너머로 드나든다.
나는 프랑스 사람도, 브르타뉴 사람도 아니다. 나는 생 말로 사람이다.
(Ni Francais, Ni Breton, Mais Malouin suis.)
생 말로는 브르타뉴 랑스강 하류에 위치해 있으며, 6세기경 이곳에 수도원을 세운 영국 웨일스 출신의 성 말로(Saint malo)의 이름을 딴 항구 도시이다. 말로는 7년간의 긴 순례 중 만난 아름다운 바다 마을에 반해 생 말로를 만들었다.
시가지 주변에는 12세기에 지은 성벽이 세워져 있고 그 내부에는 동시대에 지어진 중세 시대의 촌락이 여전히 남아 있다. 잦은 해적들의 침략으로 인해 세워진 두터운 방벽이 생 말로의 묵묵함을 대변하고 있다.
생 말로는 15세기 이후 수많은 해적들을 배출했고 나중에는 프랑스 왕가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외국의 배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해적들로부터 골머리를 앓던 영국군과의 전쟁이 잦았다. 지금도 생 말로의 요새 위에 오르면 나란히 놓여있는 대포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남아있는 해적의 후예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프랑스 사람도, 브르타뉴 사람도 아니다. 나는 생 말로 사람이다 (Ni francais ni Breton, mais Malouin suis).
성곽의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골목골목 아름다운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12세기 이후에는 노르만족과, 15세기 이후에는 영국군과의 전쟁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마을은 모두 짙은 회갈색의 벽돌집이다.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기자기한 멋은 없을지언정 이곳 생 말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정취와 남다른 매력이 있다.
생 말로는 캐나다 퀘벡을 발견한 자크 까르띠에(Jacques Cartier)가 난 곳으로 유명하다. 수차례 침략을 당하던 생 말로에서 탐험가라 불리지만 실은 원주민들의 땅을 식민지로 삼도록 퀘벡의 문을 연 인물이 났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해적들의 본거지였기 때문인지 기프트 스토어에는 이렇게 해적 모양의 기념품들이 즐비해 있다. 내가 들러 본 프랑스의 기프트 스토어 가운데 가장 예쁜 기념품들이 많았던 것 같다. 대체로 브르타뉴의 기념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어져 있으니 이곳에선 아낌없이 선물을 사도 좋다.
Saint-malo de Atlantique
조금 걷다 보면 마을을 에두른 벽에 숨겨진 것처럼 난 작은 문이 보인다. 해변가로 향하는 문인데 멀리서 보이는 수평선과 파란색의 바다가 벌써부터 마음을 설레게 한다.
생 말로는 프랑스 낭만파의 대표 문호인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 (Francois Rene de Chateaubriand)의 고향이다. 간조 때는 육지를 걸어 샤토브리앙의 묘를 방문할 수도 있지만 내가 생 말로에 도착한 오후 5시는 이미 만조로 물이 많이 차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생말로 해변. 이곳에서는 동양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관광지로서는 이름이 나지 않은 곳이라는 뜻이지만 휴가철이면 바쁜 도시를 피해 쉼을 얻으러 온 프랑스인들로 붐빈다. 외국인보다는 내국인들에게 피서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므로 프랑스 소도시의 멋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모래사장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자리를 펴고 누워 여유를 즐긴다. 아직 날이 추워 물놀이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해변가에 앉아 만조를 향해 밀려 들어오는 생 말로의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이곳의 의미가 충분하다.
군데군데 심어진 이름 모를 꽃들과 요새가 생말로의 해변과 잘 어울린다. 이 도시의 잿빛 건물들과 어우러지는 사랑스러운 파스텔 색감은 차가운 바닷바람에도 내 마음을 따듯하게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요트를 타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온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삼삼오오 모여 배를 조립하고 있었다.
캐나다를 발견한 자크 까르띠에의 고향인 만큼 4년마다 이곳에선 그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그 기간에는 많은 캐내디언들이 캐나다 세인트 로렌스에서부터 이곳 프랑스 생 말로까지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한다.
요새 주변의 주택들.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 되었기 때문에 좁은 골목에 집들이 빼곡하다. 멀리서 보면 흡사 미로처럼 차곡차곡 나열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집들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실제로 생 말로는 1976년 개봉한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요새 위에 올라 생 말로의 너른 바다를 감상했다. 대서양의 수평선 너머로 불어오는 봄의 바람을 만끽하다 보면 도시에서의 삭막함이 모래알처럼 날아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끔은 아는 이 없는 소도시에서의 여행이 마음의 여유를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