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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Nov 05. 2016

세상 모든 주드에게.

비틀즈의 Hey, Jude - 노래가 가진 힘에 대하여

  나는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던 세대들을 부러워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틀즈의 노래를 듣고 마음이 따듯해졌던 기억들을 떠올리는데, 그들의 노래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꼭두각시로서 살고 싶지 않았던 소녀의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을 대변한 'She's Leaving Home', 어떻게 해도 해쳐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이 산재했을 때 어머니의 말씨로 따듯하게 일러주는 'Let It Be' 그리고 아무리 염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The Long And Winding Road'까지. 백지 위에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명곡들을 남긴 비틀즈와 동시대를 지나온 세대들은 그때의 기억을 얼마나 아름답게 포장했을까. 비틀즈의 신곡이 나왔을 때 레코드점 앞에 줄을 서 기다리다가 뜨끈하게 구워져 나온 동그란 레코드 판을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전축 위에 돌렸을 것이고, 앞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른 채 모즈룩을 빼입은 반항아적인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전축을 켜거나 라디오를 틀지 않아도 언제든 쉽게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는 날 위로할 수 없었다.



  나에게 올드팝은 엄마의 오디오로 들었던 수잔 잭슨의 <Evergreen>이나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Boxer> 정도가 전부였다. 엄마는 요즘도 종종 유튜브로 올드팝을 듣곤 하시지만 내 핸드폰 속 스트리밍은 아이튠즈 베스트 차트의 차지였다. 비틀즈의 위대한 노래들은 다운 받아 놓은 음원 리스트 틈바구니 사이로 비집고 들 수 없었고 아마 그렇게 쭉 지속될 것 같았다. 2015년 4월 폴 매카트니(Paul Mccarteney)가 내한을 확정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시에 나는 회사가 끝나면 강남으로 학원을 다녔는데, 오가는 시간만 무려 네 시간이었다. 그동안 하는 일이라곤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영화를 보거나 포털 사이트를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그날도 목적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포털 사이트 한편에 작게 올라온 폴 매카트니 내한 광고가 눈에 차였다. 그리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구 상 가장 성공한 뮤지션의 노래가.
  비틀즈의 곡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많지 않다. <I Will>이나 <Ob-La-Di Ob-La-Da>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Let It Be>나 <Yesterday>는 들어봤을 것이다. 가끔 티브이 속 시에프나 영화 오에스티로 흘러나오기도 하니까. 그 덕에 익히 알고 있던 비틀즈의 노래들이 한두 곡은 아니었지만, 순전 내 의지대로 듣게 된 그들의 첫 곡은 <Hey, Jude>였다. 물론 4분가량 '나나나'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부분은 귀에 꽤 익었지만, 노래를 재생시키자마자 전주보다 먼저 흘러나오는 폴 매카트니의 목소리는 귀에 설었다. 그때부터 학원을 오가는 나의 네 시간은 온전히 비틀즈에게 바쳐졌다.

  아름다운 노래였다. 무드나 멜로디도 그랬지만 조언자의 입장에서 단호하면서도 다감하게 이야기하는 노랫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헤이 주드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작사 작곡한 곡이다. 이 곡이 발표되었을 때 존 레논(John Lennon)은 아내 신시아 레논(Cynthia Lennon)과 이별 후 일본인 전위 예술가인 오노 요코(Ono Yoko)와 재혼했다. 그 때문에 많은 비틀 마니아들은 곡 안에 존 레논을 향한 비판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레논은 매카트니에게 주드라는 이름을 존에서 따왔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끝까지 이 노래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함구했다.



The minute you let her under your skin,
then you begin to make it better.



  헤이 주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이 곡이 발표된 지 수년이 지난 후에야 드러났다.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안 레논(Julian Lennon)이었다. 그는 당시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레논이 신시아와 헤어지면서 큰 아픔을 겪게 될 것을 걱정한 매카트니가 그를 위한 위로의 곡을 써 내렸다. 겨우 다섯 살밖에 먹지 않은 줄리안은 이따금 자기를 품에 안아 들고 노래를 부르는 매카트니의 목소리 밖에는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만큼 어렸다.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에야 매카트니는 이 곡이 사랑을 담은 위로 곡임을 밝혔다. 줄리안은 "누군가 나를 위해 곡을 썼다는 건 가슴 뭉클한 일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 노래가 단순히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 곡이 만약 레논을 향한 원망과 실망에서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본질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다르게는 연민이라 불리는 그것 말이다. 폴은 노래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1968년 발매된 일명 화이트 앨범이라 불리는 더 비틀즈(The Beatles)앨범에는 <Black Bird>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예스터 데이와 나란히 세상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곡들 중 하나로 꼽히는 곡이다. 매카트니는 이 곡을 만들 당시 스코틀랜드에 머물고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흑인 인권 문제가 대두된 시기였다. 그는 흑인 민권운동에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다. 흑인 소녀를 블랙버드에 빗대어 표현하며 암흑 같은 그들의 삶에도 날아오르기 위한 힘겨운 날갯짓이 있음을 대변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 노래로 위로를 받았다. 매카트니는 이 곡을 만들고 나서 노래가 가진 진정한 힘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노래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내게는 학창 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인 K가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한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생이별을 겪었다. 이후 새어머니와 한지붕 아래 살게 되었는데, 차별과 소외로 많은 상처들을 입었다. 그녀는 이십 대가 넘어가는 지금의 순간까지도 그때의 기억들을 깊은 곳에 남겨 놓았다. 몸이 아닌 마음에 새겨진 상처들은 사실 세월이 지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고통스럽고 진저리가 날만큼 괴롭더라도 뒤돌아보면 삶은 어떻게든 살아져 있으니 말이다.

  K는 우울한 사람이 아니다. 가끔 어느 날은 이유도 알 수 없을 만큼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녀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갈무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이따금 위로는 필요했다. 남자 친구의 독려나 친구들의 격려도 그랬지만 자기 스스로를 고취시킬 수 있는 어떤 메시지를 말이다.

  K가 결혼을 앞두고 있었을 때, 그녀는 가족들과의 문제로 힘든 시기을 보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찍 사회생활에 뛰어들어 벌써 두 번째 이혼을 겪은 아버지의 곁을 뛰쳐나온 상태였고, 어렵게 찾은 생모는 그녀와의 만남을 원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없이 결혼식을 올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를 원망했을지도 모르고 좌절감에 스스로를 사랑해주는 일이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헤매고 있었고, 말로 전할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었다. 그때 그녀의 마음을 얼러 준 곡이 바로 이 노래였다.


Anytime you feel the pain, Hey Jude, refrain.
고통스러울 때, 이봐, 주드. 견뎌봐.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
이 힘든 세상을 네 어깨에 짊어지지 마.


  K는 너무 많이 커버린 게 문제였다. 모든 일을 홀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이 노래를 듣고 나서 자기가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마음 안에 공간이 생겼다'라는 고백을 했다. 외롭고 무거운 세상을 좁은 어깨 위에 홀로 짊어지지 않고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말이다.


  이별과 실패를 겪거나 과거의 상처에 메어있는 이들은 어딘가에서 위로와 격려를 얻기를 원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일까? 대가 없이 진심 어린 위로를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대안이 있다. 사람들의 딱딱해진 가슴을 안아주고 녹여주고 불려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도구가 바로 곁에 있기 때문이다. 노래이다.

  헤이 주드는 세상의 차가움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따듯함을 지켜낼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준다. 어린 시절 아픈 가정사로 힘들어하고 있던 친구를 위로했고, 관계에 대해 냉소적인 마음들을 이해했으며, 엄마와 아빠만이 세상에 전부였던 다섯 살짜리 아이의 등을 두드려 줬다. 어느 누구도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거든 노래를 들어보길 바란다.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그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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