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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Jun 22. 2016

삶과 죽음의 언덕, 디낭

프랑스 브르타뉴주의 소도시, 디낭 Dinan


  생 말로 여행이 끝난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디낭으로 향하는 여정길에 올랐다. 랑스강 상류에 위치한 디낭(Dinan)은 켈트족의 언어에서 따온 말로 '언덕'(Dun)과 삶과 죽음의 여신인 '아나'(Ahna)에서 착안한 지명이다. 번역하자면 '삶과 죽음의 여신 아나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15세기 이후 지어진 집들이 많은 오래된 촌락은 브르타뉴 중에서도 단연 아름답기로 으뜸이 되는 곳이다.




 



나이 든 시계탑

La tour de l'Horloge






  디낭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곳은 도시의 번영을 상징하는 나이 든 시계탑이었다. 15세기경 이곳은 직물 산업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는데, 시계탑은 그 시기 상인들의 개인재로 만들어진 건축물 중 하나이다. 샤를 8세와 루이 12세의 왕비였던 안 드 브르타뉴(Anne Duchess)에 의해 1498년 만들어진 탑 안의 종은 지금까지도 30분에 한 번씩 마을 안을 울린다.

 




  여행하기에 앞서 시계탑 바로 앞에 자리한 크레페 가게에 들렀다. 아라비카 원두의 에스프레소 한 잔과 구운 아몬드, 초콜릿을 곁들인 크레페를 주문했다. 얇게 구워진 크레페를 썰어 포크 안에 둘둘 말아 한 입에 넣었다. 여행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시계탑 앞에 꾸며진 작은 정원에는 프랑스 특유의 달콤한 색감을 가진 꽃들이 알록달록 피어있다.

 




  시계탑을 지나 좁을 골목길을 나오면 몇몇 상점들이 거리에 늘어서 있다. 휴일에 방문해 그런지 문을 닫은 곳이 많았지만 여행을 왔으므로 기프트 스토어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브르타뉴는 대서양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바다와 관련된 기념품이 많다. 특히 이곳에서 기념품 명목으로 판매하는 버터 쿠키는 맛이 정말 좋다.






디낭의 집, 앙코르벨망

Maison à encorbellement







  디낭의 구 시가지엔 오래된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다. 카메라 렌즈 안에 담기는 곳마다 아름다워서 계속해 셔터를 누르게 된다. 거리에는 현관이 있는 집이라는 뜻의 ‘메종 듀 뽀흐쉬’(maison du porche)가 많이 지어져 있는데 바닥에 세워진 기둥 위로 2층을 쌓은 형태를 띤다. 곳곳에 위치한 메종 듀 뽀흐쉬는 오늘날 대부분 노천카페나 식당으로 탈바꿈했다.

 


디낭의 여행객들을 태운 관광 열차



  디낭에는 알자스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콜롱바주(Colombage) 형식의 집이 보통이다. 나무 뼈대를 세운 뒤 빈 공간을 진흙이나 벽돌로 채워 짓는 집을 일컫는다. 디낭의 집들은 콜롱바주식 건물에 층수가 높아질수록 평수가 넓어지는 앙코르벨망(encorbellement)이 더해진 건축 양식을 사용했다. 앙코르벨망은 돌출부라는 뜻인데, 이 돌출부가 1층의 해와 빗물을 막아주는 차양 역할을 하고, 이사할 때 위층 창문을 통해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





  브르타뉴의 집들은 보통 앙코르벨망의 콜롱바주 주택이 대부분인데 이것들은 14세기 이후부터 19세기까지 계속되어온 건축 양식이었다. 디낭의 집들은 브르타뉴 내에서도 아주 오래된 앙코르벨망 형식의 주택이므로 프랑스의 유서 깊은 쁘띠 메종을 감상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곳에 들러야만 한다.





  그 옛날 성벽 너머를 순찰하던 슈망 드 론드(chemin de ronde)로 가는 길. 거리마다 아름다운 돌길과 사랑스러운 꽃잎들이 여행자들을 반겨준다.





  오르막길을 걸어 도착한 디낭의 성벽 위. 이곳에 올라오면 아름다운 디낭의 구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좁은 거리에 늘어선 회색빛 벽돌집들은 중세의 무드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는 중세 시대를 문화•예술의 번영이 오기 전의 암흑시대(Dark age)라고 말했지만 지금 우리는 과거를 여전히 보존하고 있는 이곳을 조망하며 아름답다 말한다.

  저 멀리 높이 솟은 생 소베르 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12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교회당으로 재건이 중단되었다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이곳에는 프랑스군의 사령관이었던 베르트랑 뒤 게클랭 (Bertrand du Guesclin)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점은 이 교회당이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클래식의 건축 양식을 모두 섞어 사용한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성벽 너머로 보이는 디낭의 주택가. 일궈져 있는 텃밭과 화단에서 가꾸는 이의 정성을 느낄 수 있다.

  왼편에는 이름 모를 다양한 플래그들이 나란히 걸려있다. 붉은 기에 금색 성이 그려져 있는 것이 디낭의 대표 문장이다. 작은 부분에서부터 15세기 중세 말기의 옛 정취가 느껴진다.





  슈망 드 론드를 내려와 디낭의 운하로 가는 길목. 직물산업이 번창했던 탓인지 가죽 공예 가게가 많다. 장인이 만든 것처럼 한 땀 한 땀 정성스럽지는 않지만 손바느질의 느낌이 있는데다 가격은 12€~18€선으로 저렴해서 절로 지갑을 열게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예술인들의 아뜰리에가 입점해 있어 미술관을 찾지 않아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디낭의 벽돌집과 담. 벽 틈새를 비집고 어렵사리 생명의 물꼬를 터뜨린 꽃들이 군데군데 자라 있다. 이를 놓치지 않은 정성스러운 이는 그 아래 꽃들의 이름표와 설명을 달아 놨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쳤을 사소한 것들마저 이곳 디낭에서는 특별한 것이 된다.







디낭 항구

Porte de Dinan




디낭 항구



  드디어 도착한 디낭의 작은 항구. 랑스강으로 이어지는 이 좁은 운하는 나중에 대서양을 만나 너른 바다가 된다. 생 말로 만으로 이어지는 이 물길을 통해 생 말로와 교역을 하고 있다.

  물 위를 가로지르는 교각 위에 섰다. 운하 앞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프랑스 사람들과 한가롭게 흐르는 물, 빠르게 지나가는 흰 구름까지. 한 발 물러나 보면 구경할 수 있는 것이 배가 된다.



  

  멀리서 시외에부터 디낭까지 이어지는 비아뒤크(Viaduc)가 보인다. 이 고가다리가 설치되기 전 디낭은 브르타뉴 주 깊숙이 위치해 있어 외세로부터 침입을 당하지 않는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아름다운 중세의 천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옛것의 정취를 가지고 있는 디낭에서의 여행을 마친다. 아쉬울 만큼 아름답고 그리울 만큼 정겹다. 작지만 여전하고 구석에 밀려나 있지만 굳건하다. 그것이 디낭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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