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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moon society Oct 16. 2018

할머니의 인사

2018 이문동 블루스 7화 -  이문동에 전하는 작별(作別)







재개발 준비가 한창인 이문동의 골목,
오늘도 빈집이 하나씩 늘어가는 이곳에서
간판 없는 슈퍼 할머니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문동 골목의 간판이 없는 슈퍼. 앞에 놓인 의자들에는 햇살을 즐기러 온 주민들이 머물다 간다.



슈퍼에 간판이 없는데, 슈퍼 이름이 뭔가요?


"가정슈퍼야, 가정슈퍼. 돈이 없어서 간판을 못 달고 시작했어. 옛날에는 간판도 비싸니까, 그냥 했어.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껏 그냥 있었지 뭐."



할머니는 누구신가요? 자기소개를 해주신다면?


"내 이름 소개하겠지. 이 종 련. 옛날에는, 처녀 때는 예명을 썼어. 이 금자.

호적 이름 이종련은 부르기 어렵다고 예명을 지어서 이금자라고 했어 다들.

열 칠팔세 됐을 때는 나는 시골에서 올라와서 길을 물어도 파출소에 찾아가서 묻는 순진한 이금자였어. 서울에서는 코도 베어 간다고 해서 무서웠어. 그래서 파출소 단골이었지.

그다음에는 오지랖이 넓었어. 내가 돈이 없어 쩔쩔맬 망정, 남 좋은 일 하고 그랬어. 헛되게는 안 살았어.. 지금은 그냥 이종련으로 살아. 딸 아들 다 커서 손자들 놓고 잘 사니까.

나는 이종련이야."



할머니에게 슈퍼는 어떤 곳인가요?


"내가 이문동에서 산 지는 50년 됐고, 슈퍼는 35년 정도 했지.

요 앞 골목에서 석유 장사를 10년 넘게 했는데, 여기 살던 할머니가 땡볕에 앉아있지 말고 너 여기 들어와서 슈퍼나 해라, 하면서 자리를 내줘서 시작하게 됐어. 고맙게도.

나는 여기서 자식들 다 키우고 보냈어.

옛날에 우리 큰 아들이 군인을 갔다 왔는데, 복학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근데 또 큰 딸이 그때 대학을 합격됐다고 하는데, 그때는 석유를 바가지로 펐거든.

내가 그 바가지를 팍 던지면서 막 울었어. 되지 말기를 바란 사람이야, 난 사실은. 돈이 없으니까..

사실은 10원도 없었어. 그 바가지를 탁 놓으면서 앉아서 엉엉 울었어. 남들은 돼서 좋다고 하는데 나는 돈이 무서워가지고..

우리 아들은 기가 막혀서 그러더라고. '엄마 왜 그래, 기쁜 일인데 왜 그래..' 그러더라고. 그래도 어떻게 다들, 갔어. 고생한 거야."


슈퍼 벽면에 할머니가 간직하신 글귀. "오늘이 내 인생의 좋은 날이다. 크게 웃어라. 하하 웃어라."



옛날에는 지금이랑 많이 달랐겠네요.


"사람 많았지 그때는. 여기가 명동 거리야. 막 사람이 바글바글했지. 그때는 장사도 잘 되고. 그때는 담배만 팔아도, 내가 손 안 대도 집세가 빠졌어, 그때는."

[동네 할머니 손님이 옴]

"(막걸리 두 병과) 라일락 하나 거 얼마고?"

"4천원 하고 7천원, 아이다, 아이다 2,400원. 6,400원. 소주로 계산했네."

"여기."

"고맙소. 계속 여기 와주고. 복 받겠소. 600원 줄게.

다리 아프겠다 앉아. 그리고 귤 사왔던데, 뭘 사와. 학생이 한창 돈 들어갈 땐데. 그런 거 하지 마."


할머니가 슈퍼 한 켠에 마련해주신 앉을 자리와 알밤.



여기 골목이 꽤 복잡한데, 오래 사셔서 이제 훤하시겠어요.


"그렇지. 나는 저 꼭대기에 가도 잘 찾아와. 이쪽엔 나무를 심든지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의릉도 살고, 대학들도 살고, 이 동네도 확 건사할 텐데.

그걸 다 까부쳐서 집 짓는다고 뭐가 되겠어. 새 집 짓는 게 다 능사가 아닌데. 

개발이고 새발이고.. 이제 다 나가라고 자꾸 그래."



어디 가실 곳은 정하셨어요?


"찾아봐야지. 돈 있는 사람은 가고, 돈 없는 사람은 꼼짝도 못 하고 그러고 있어. 빈 집도 있고 그래.. 이제 다들 이사를 준비하나 봐. 우린 보상 시세고 뭐고 잘 몰라. 그냥 나가라고 두드려 대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 뭐. 저기 사는 할머니한테 들어보니까 그래.

무지무지 오래 살았는데, 괜히 가만히 있는 집을 나가라 해서 내가 이제 어디 가야 할지 모르겠다. 

괜히 가만히 사는 집을 들썩거려가지고. 뭐 당할까 싶어 가지고.

모르겠어 나는. 암만 보상이라고 돈을 주지만, 자기네가 남의 집을 좌지우지할 순 없잖아. 그런 게 국가는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설명회 할 때 간다고 했는데 고추 널어놨는데 비 오는 바람에 내가 못 가고. 요번에 또 한다고 하더라고. 나는, 내가 말귀는 잘 못 알아들어도, 이해가 안 된다 싶으면 내가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고. 그 사람은 많이 배웠으니까 말을 알아들을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은 못 듣거든?

난 내 생각을, 왜 이렇게 했느냐 물어볼 수도 있잖아. 그걸 물어보려고 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고추 때문에 못 가고 말이야.

고추도 비 다 맞고 나도 다 맞고... 근데 지금은 마이 말랐어 허허."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할머니의 가정슈퍼



슈퍼는 잘 정리하고 계세요?


"개발된다고 이제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지. 여기선 이제 못살아.

이 집주인도 참 좋은 사람 만났어. 저번에 내가 기억력이 옛날 같지 않아서 (가게세를 안 냈는데) 나중에 법적으로 보니까 돈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그 주인이 날 보고 '할머니, 미안해요. 법이 그래요.' 하더라고. 난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고 했지. 그렇잖아. 늙은이 그동안 잘 살게 해 줘서 고맙다고 했어.

내 공식하고 그 공식하고 다른데 어떻게 해. 그게 정확한 거지.

그래도 여기 슈퍼 있어서 '나도 직업이 있다' 하고 영감이랑 할머니랑 살 수 있었지. 우리 영감 다리도 불편한데 집 바로 앞이라도 여기라도 왔다 갔다 하면 그것도 운동이 되고. 그래서 내가 좋은 거 생각하면 아무것도 나쁠 것이 없다고 했어.

내가 만약에 (슈퍼 일이 없어서) 일찍 병이 들었으면 병원비가 그거보다 적게 나왔겠어?

만약 이 곳을 떠나면, 내 생각에 난 빨리 죽을 것 같아. 아무 일도 없으면.

사람이 할 일이 있어야 되는데, (이 슈퍼 떠나면) 빨리 죽을 것 같아. 배운 거 많은 사람은 앉아서 학문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잖아. 그래도 내 나이가 80인데 이만큼 산 거 보면 괜찮아.

고마워요."



"나는 꽃을 굉장히 좋아해.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어느 집에 꽃이 피면 내려서 구경하고 싶어. 세상에 우리 딸들도 꽃 하나 안 사주는데. 어디서 이렇게 예쁜 꽃을 가져왔어. 너무 좋아. 고맙네. 아이구 세상에.. 웬일이야. 난 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야."



곧 떠나시는데, 이문동이 할머니께 어떻게 기억될 것 같으세요?


"제2의 고향이지. 시골에서 올라와서 처음 산 집이 여기고, 그렇게 지금까지 여기 살았어. 지내는 동안 참 괜찮았어.

그러니까 이문동은 나한테 제2의 고향이지.

내가 돈이 있으면 여기서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를 하나 사서 살면 좋은데, 돈이 없으니까 그건 내가 못하지. 돈도 없고, 나이가 있으니까..

그래도 여기 많이 투자한 젊은 사람들이 이 늙은이 하나를 위해서 공사 안 한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안 그래? 그러니까 늙은 사람이 비켜줘야지..

근데 있잖아, 늙은 사람이 자기 고향을, 살던 곳을 떠나면 그만큼 생명이 단축이 돼.

젊은 사람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에너지로 살지 몰라도, 우리는 아니야. 그게 조금 아쉽지.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 다만 집 값을 현시가로 (이주를 잘할 수 있게) 쳐 주면 괜찮은데, 그게 안되니까. 많은 피해가 있지. 그게 아쉬워. 그래도 여기서 잘 살았어. 고마워."



순진한 파출소 단골 이금자로 도착한 이문동은 할머니의 두 번째 고향이었습니다. 그럼 꽃을 좋아하는 이종련은 이제 어디로 가면 될까요?





"학생, 내가 해준 말 중에 학생한테 하나라도 쓸모 있는 말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와서 이야기만 해도 나는 고마워. 이렇게 얘기도 들어주고, 고마워요. 고마워. 학생도 잘 지내요."


이문동 꼬불꼬불 골목 사이에서 길을 잃으면 만나게 되던 간판 없는 슈퍼를 사람들은 뭐라고 기억할까요?




재개발 준비가 한창인 이문동의 골목.
오늘도 빈 집이 하나씩 늘어가는 이곳에서 가정슈퍼 할머니의 인사를 전합니다.










2018 이문동 블루스는 이문 소사이어티와 이문맵스가 함께 가꿉니다.



ⓒ 2018 이재원 of 이문맵스(Imunmaps) & 이문 소사이어티(E'mo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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