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이문동 블루스 7화 - 이문동에 전하는 작별(作別)
재개발 준비가 한창인 이문동의 골목,
오늘도 빈집이 하나씩 늘어가는 이곳에서
간판 없는 슈퍼 할머니의 인사를 전합니다.
"가정슈퍼야, 가정슈퍼. 돈이 없어서 간판을 못 달고 시작했어. 옛날에는 간판도 비싸니까, 그냥 했어.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껏 그냥 있었지 뭐."
"내 이름 소개하겠지. 이 종 련. 옛날에는, 처녀 때는 예명을 썼어. 이 금자.
호적 이름 이종련은 부르기 어렵다고 예명을 지어서 이금자라고 했어 다들.
열 칠팔세 됐을 때는 나는 시골에서 올라와서 길을 물어도 파출소에 찾아가서 묻는 순진한 이금자였어. 서울에서는 코도 베어 간다고 해서 무서웠어. 그래서 파출소 단골이었지.
그다음에는 오지랖이 넓었어. 내가 돈이 없어 쩔쩔맬 망정, 남 좋은 일 하고 그랬어. 헛되게는 안 살았어.. 지금은 그냥 이종련으로 살아. 딸 아들 다 커서 손자들 놓고 잘 사니까.
"내가 이문동에서 산 지는 50년 됐고, 슈퍼는 35년 정도 했지.
요 앞 골목에서 석유 장사를 10년 넘게 했는데, 여기 살던 할머니가 땡볕에 앉아있지 말고 너 여기 들어와서 슈퍼나 해라, 하면서 자리를 내줘서 시작하게 됐어. 고맙게도.
옛날에 우리 큰 아들이 군인을 갔다 왔는데, 복학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근데 또 큰 딸이 그때 대학을 합격됐다고 하는데, 그때는 석유를 바가지로 펐거든.
내가 그 바가지를 팍 던지면서 막 울었어. 되지 말기를 바란 사람이야, 난 사실은. 돈이 없으니까..
사실은 10원도 없었어. 그 바가지를 탁 놓으면서 앉아서 엉엉 울었어. 남들은 돼서 좋다고 하는데 나는 돈이 무서워가지고..
우리 아들은 기가 막혀서 그러더라고. '엄마 왜 그래, 기쁜 일인데 왜 그래..' 그러더라고. 그래도 어떻게 다들, 갔어. 고생한 거야."
"사람 많았지 그때는. 여기가 명동 거리야. 막 사람이 바글바글했지. 그때는 장사도 잘 되고. 그때는 담배만 팔아도, 내가 손 안 대도 집세가 빠졌어, 그때는."
[동네 할머니 손님이 옴]
"(막걸리 두 병과) 라일락 하나 거 얼마고?"
"4천원 하고 7천원, 아이다, 아이다 2,400원. 6,400원. 소주로 계산했네."
"여기."
"고맙소. 계속 여기 와주고. 복 받겠소. 600원 줄게.
다리 아프겠다 앉아. 그리고 귤 사왔던데, 뭘 사와. 학생이 한창 돈 들어갈 땐데. 그런 거 하지 마."
"그렇지. 나는 저 꼭대기에 가도 잘 찾아와. 이쪽엔 나무를 심든지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의릉도 살고, 대학들도 살고, 이 동네도 확 건사할 텐데.
개발이고 새발이고.. 이제 다 나가라고 자꾸 그래."
"찾아봐야지. 돈 있는 사람은 가고, 돈 없는 사람은 꼼짝도 못 하고 그러고 있어. 빈 집도 있고 그래.. 이제 다들 이사를 준비하나 봐. 우린 보상 시세고 뭐고 잘 몰라. 그냥 나가라고 두드려 대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 뭐. 저기 사는 할머니한테 들어보니까 그래.
괜히 가만히 사는 집을 들썩거려가지고. 뭐 당할까 싶어 가지고.
모르겠어 나는. 암만 보상이라고 돈을 주지만, 자기네가 남의 집을 좌지우지할 순 없잖아. 그런 게 국가는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설명회 할 때 간다고 했는데 고추 널어놨는데 비 오는 바람에 내가 못 가고. 요번에 또 한다고 하더라고. 나는, 내가 말귀는 잘 못 알아들어도, 이해가 안 된다 싶으면 내가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고. 그 사람은 많이 배웠으니까 말을 알아들을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은 못 듣거든?
난 내 생각을, 왜 이렇게 했느냐 물어볼 수도 있잖아. 그걸 물어보려고 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고추 때문에 못 가고 말이야.
"개발된다고 이제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지. 여기선 이제 못살아.
이 집주인도 참 좋은 사람 만났어. 저번에 내가 기억력이 옛날 같지 않아서 (가게세를 안 냈는데) 나중에 법적으로 보니까 돈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그 주인이 날 보고 '할머니, 미안해요. 법이 그래요.' 하더라고. 난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고 했지. 그렇잖아. 늙은이 그동안 잘 살게 해 줘서 고맙다고 했어.
그래도 여기 슈퍼 있어서 '나도 직업이 있다' 하고 영감이랑 할머니랑 살 수 있었지. 우리 영감 다리도 불편한데 집 바로 앞이라도 여기라도 왔다 갔다 하면 그것도 운동이 되고. 그래서 내가 좋은 거 생각하면 아무것도 나쁠 것이 없다고 했어.
내가 만약에 (슈퍼 일이 없어서) 일찍 병이 들었으면 병원비가 그거보다 적게 나왔겠어?
사람이 할 일이 있어야 되는데, (이 슈퍼 떠나면) 빨리 죽을 것 같아. 배운 거 많은 사람은 앉아서 학문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잖아. 그래도 내 나이가 80인데 이만큼 산 거 보면 괜찮아.
"나는 꽃을 굉장히 좋아해.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어느 집에 꽃이 피면 내려서 구경하고 싶어. 세상에 우리 딸들도 꽃 하나 안 사주는데. 어디서 이렇게 예쁜 꽃을 가져왔어. 너무 좋아. 고맙네. 아이구 세상에.. 웬일이야. 난 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야."
"제2의 고향이지. 시골에서 올라와서 처음 산 집이 여기고, 그렇게 지금까지 여기 살았어. 지내는 동안 참 괜찮았어.
내가 돈이 있으면 여기서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를 하나 사서 살면 좋은데, 돈이 없으니까 그건 내가 못하지. 돈도 없고, 나이가 있으니까..
그래도 여기 많이 투자한 젊은 사람들이 이 늙은이 하나를 위해서 공사 안 한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안 그래? 그러니까 늙은 사람이 비켜줘야지..
젊은 사람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에너지로 살지 몰라도, 우리는 아니야. 그게 조금 아쉽지.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 다만 집 값을 현시가로 (이주를 잘할 수 있게) 쳐 주면 괜찮은데, 그게 안되니까. 많은 피해가 있지. 그게 아쉬워. 그래도 여기서 잘 살았어. 고마워."
"학생, 내가 해준 말 중에 학생한테 하나라도 쓸모 있는 말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와서 이야기만 해도 나는 고마워. 이렇게 얘기도 들어주고, 고마워요. 고마워. 학생도 잘 지내요."
재개발 준비가 한창인 이문동의 골목.
오늘도 빈 집이 하나씩 늘어가는 이곳에서 가정슈퍼 할머니의 인사를 전합니다.
ⓒ 2018 이재원 of 이문맵스(Imunmaps) & 이문 소사이어티(E'moo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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