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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샘 Aug 30. 2017

영어 잘하는 법

지긋지긋하지만 놓을 수 없는 너

영어랑은 절대 상관없는 과를 갈 거야.




라는 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갓 스무 살 된 학생의 각오였다.

초, 중, 고 특히 고등학교를 외고로 가면서 영어에 대해 시달 릴대로 시달려

진절머리가 나게 된 나는 영어와는 관련이 1도 없는 과를 가고 싶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의 각 페이지에는 영어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가장 첫머리에 큰 글자로 나와 있든, 끄트머리에 조그맣게 쓰여있든 영어라는 것은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어떤 가장 강력한 접착제 중에 하나이다.

남이 강요해서, 살아 남기 위해서, 시험을 봐야 해서라는 외부적인 강압이 어느새인가 '내가 필요해서'라는 내부적 동기로 발전하는 특이한 생태를 가진 것이 바로 영어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라는 오랜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어릴 적부터 많은 방식을 실험해 왔고,

오랜 실험 결과

'내 자식을 낳으면 이렇게 공부시켜서 영어 때문에 눈물 나는 일은 없도록 해주겠다'

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했다.




그럼, 내 영어 공부의 역사를 한 번 더듬어 볼까?


나는 80년대 후반생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애들이 겪는 영어에 대한 공교육은

다음과 같은 루트를 따른다.

초등학교에서는 영어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중학교 1학년 때 알파벳을 처음 겪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면 학원이나 학습지 등의 사교육으로 영어를 익히는 분위기였다.

흔히 보는 시험인 토익과 토플 중 토플에서 말하기 시험이 추가되었던 때가 내가 고등학교 때이며,

대학교가 되자 영어 말하기 시험이 슬슬 등장하기 시작했던, 시대이다.


초등학교 시절


운이 좋았는지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지만, 우리 반 학부모들 중 한 명이 '명예교사'라는 형태로 일주일에 한 시간인가, 두 시간 정도씩 와서 영어를 가르쳐주셨다. 알파벳부터 배웠던 것 같다. a는 apple이라는 아주 단순한 단어부터 알파벳 배우는 그 순서대로 차례대로 말이다.


명예교사가 오기 전부터 나는 집에서 '재능 영어'를 하고 있었다.(엄마의 교육열은 대단했다) 학습지가 있고, 학습지 선생님이 1주일에 한 번 온다. 나는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그 발음을 들으며 따라 한다. 그런 영어를 계속해서 배우던 시기였다.

학습지의 분절적인 내용들은 머릿속에 한 번에 체계를 이으면서 들어가지 못했고, 그 당시 내가 배우던 영어의 모든 것들은 내 머릿속에 상당히 분절적으로 지식을 형성하고 있었다.

예컨대, do로 만들 수 있는 문장이나 문형들은 쉽게 이야기하고 be 동사가 들어간 문장도 쉽게 말했지만  do 동사가 일반동사인지, 왜 be 동사와는 다른 건지 이러한 관계성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절대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게 3학년 때부터 꾸준히 한 영어는 4, 5학년이 되자 학습지의 상당히 높은 단계까지 올라갔지만 완결된 지식으로써 관계성을 전혀 구축하지 못하는 단계였다.(엄마가 잘 모르고 내용을 체크해주지 않으며 아이가 스스로 잘한다고 내버려두면 이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우선 배워야 한다는 게 다 이런 것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엄마는 3학년 때 우리를 가르쳤던 엄마와 아주 밀접하게 친하게 지냈는데 (나도 그 아이와 절친이었다), 그 집 아이가 '윤선생'이라는 조금 다른 형식의 영어 학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개를 받아 그 선생님과 시스템을 접한 엄마는 나를 재능 학습지에서 윤선생으로 돌리게 되는데,


윤선생은 얇은 종이 낱장으로 이루어진 학습지와는 다르게 1개의 권으로 되어 있고, 학습량이 월등히 많다.

선생님은 아이를 1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것이 아닌 매일매일 전화를 해준다(와, 그땐 집전화 세대였고 그 선생님은 우리 집에 8시에 전화를 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것까지 기억이 나는군) 그래서 그날 배운 내용을 정리해주고 문장을 외워서 말하는 것을 테스트해준다.


재능보다야 훨씬 좋고 실력도 향상되었던 것 같지만 문제는 스트레스였다.


학습량이 우선 너무 많다. 그리고 재능과 시스템이 달라 내가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부터 다시 복습을 해나가야 해서 지루하다. 그리고 매일 전화가 오는 게 너무 부담이 된다. 대답을 못하면 날카로운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짜증과, 왠지 그 아이와 나를 비교하는 듯한 그런 것들이 느껴지면서 자존감이 엄청 깎여나간다.


윤선생 선생님이 나와 그 아이를 비교하는 것도 짜증 나는 데, 엄마도 그 아이는 진도가 어떻다더라, 이걸 열심히 해야 얼른 그다음 단계를 나갈 수 있다(윤선생에는 만약 완벽하게 숙지가 안된 것 같으면 다시 그 교재를 반복하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나도 그게 싫었을 뿐만 아니라 엄마도 굉장히 진도에 대한 압박을 주었다)라는 압박에 하면서 즐겁고 재미있는 게 아니라 제발 하기 싫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졌던 것 같다.




결국 6학년이 되면서 나는 학원 시스템으로 영어공부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50년대생인 우리 아빠가 배운 방식으로 말이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는 유명한 학원이 2개 있었는데(어쩌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하나는 스파르타식 학원이고, 하나는 규모와 물량을 앞세워 들어온 큰 학원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후자를 다니는데, 엄마는 꼼꼼한 상담을 통해 전자가 더 좋다는 결론을 얻었고, 영어와 수학만 가르치는 그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영어는 원장 직강이고, 수학은 그때그때 강사가 바뀌고는 했다.

스파르타식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때린다는 것이다. 한 번도 누구에게 맞아 본 적이 없던 나는 첫날부터 애들이 숙제를 못 외웠다, 태도가 나쁘다는 식으로 나와 손바닥을 맞는 장면을 보고 문화 충격을 받았다.


이 선생님이 하는 방식이 바로 우리 부모 세대가 영어를 배우던 방식이었다.

성문 기초 영문법, 기본 영문법 이런 식으로 영문법 책을 구입하게 한 다음, 그것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외우게 시키고 못하면 때린다. 문법 설명도 정확하게 해야 하지만 예시 문장 같은 것도 한 글자도 틀림없이 완벽하게 외워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1 형식, 2 형식 이런 형식이 있다는 것도 난생처음 알았을 뿐만 아니라, 전치사니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쓰이고 (그전까지는 위치 in on off만 생각했었는데 체계적인 쓸모를 배우면서 전치사를 새로 알았다) 이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엄청난 압박에, 무조건적인 외우기가 바탕이 되었던 영어 수업이었지만 그 간 배워왔던 영어의 체계를 다시 알게 한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 시절



그리고 나는 중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다.

중학교를 들어가게 되자, 이 학원에서는 '본문 외우기'라고 하여 2쪽 길 때는 6쪽 정도에 걸쳐서 나오는 짧은 이야기들을 통으로 외우게 시켰다. 사실 이 문장들을 통으로 외우면 문법이나 어색한 문장 찾기 등에서 틀릴 일이 전혀 없다. 어차피 시험은 그 '본문'에 있는 문장이 그대로 나오거나 약간만 변형되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영어 성적은 늘 거의 100점 아니면 하나 틀리는 수준을 계속 유지했다. 신기한 것은 똑같은 방식으로 학원의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데 이런 성적이 나오는 것은 나 외에 2,3명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학원 반에는 15-2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 1 때 월등한 성적이 나오고, 학원에 내 위로 높은 성적이 나오는 학생이 하나도 없자 엄마는 다시 학원을 옮길 생각을 하셨다. 이제 애도 컸겠다 무조건 동네로만 보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우리 때 그야말로 '난리'가 난 학원이 있었으니 바로 청담어학원이었다. 무조건 100% 영어로만 수업하며, 원어로 된 교재만 사용하는 청담어학원은 어쩌면 영어 학습계의 혜성과 같은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돈을 준다고 해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일정 이상의 레벨테스트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소문이 파다했다.




레벨테스트를 보고 난 절망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영어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듣기 시험부터 뭐라고 하는지 거의 알아듣지 못해 찍은 것과 다름이 없었으며, 문법 문제나 읽기 문제도 거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레벨테스트 결과 나는 가장 낮은 단계에서 2번째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내 영어 공부의 잔혹사가 시작되었다.


윤선생을 하면서도 지겹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재미없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의 수업은 정말 내 상상을 뛰어넘는 정도의 어려움을 요구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생각해보면 도저히 하루나 이틀 사이에 소화하기에는 불가능한 양이다.


voca(+문법), listening, reading 요렇게 세 분야로 나누어 한 수업을 한 시간씩 진행했다.

월수금, 혹은 화목토 식의 수업이어서 각 수업의 간격은 1박 2일 정도? 2일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단어는 100개를 외우고 시험을 보게 된다. 익숙한 것도 있지만 낯선 것도 있다. 단어 100개?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파생어'이다. 예를 들어 converse라는 단어를 배운다면 그 단어에 해당하는 1,2,3번의 뜻을 모두 외워야 할 뿐만 아니라 conversant(형용사형), conversation(명사형)을 모두 외워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변형되면서 생기는 다른 뜻이 있다면 그것도 모두 외워야 한다. 즉, 단어 1개에 파생되는 것은 정말 적으면 2 개 정도고, 많으면 6개에서 10개를 육박한다. 학습량은 100 단어라지만 1000개에 육박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며, 시험은 기본형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 파생어에도 나온다. 100 단어를 외우면 대개 20에서 30 단어를 시험 보는데, 내 성적은 반 정도만 맞아도 그날은 잘 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형편없었다. 특히나 문장에 단어를 넣는 식의 시험이 나오면 그 예시 문장도 외워야 한다는 건데 단어의 뜻에 그 문장까지 외우자면 학습량은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었다.

문법은 원서로 진행하는데, 문법이 나온 페이지가 대략 1쪽 정도 되는데 그것을 정말 엄청난 속도로(대략 5에서 10페이지가량이 한 차시에 진행량) 나간다. 쉬운 것이라면 그럭저럭 따라가는데 문법도 난이도가 올라가니 도저히 헷갈려 죽겠다. 근데 뭐 질문도 하기 전에 이미 다음 것에 진도가 나가 있다.


듣기 같은 경우는 cnn의 약 5분 정도 되는 토픽을 듣게 하거나, 시트콤 friends를 듣고 빈칸을 채워오는 식이었다. 시트콤의 경우 7분에서 10분 정도로 듣는 양이 더 길었다. 세상 낯선 단어들이 앵커와 배우들의 입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토픽 중에는 중학생인 내가 관심 가질 만한 소재는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세계정세와 전쟁과 석유 문제 등등과 같은 낯설디 낯선 토픽들. 그리고 수많은 묵음과 줄임말, 발음 때문에 빈칸을 채우는 것은 쉽지 않다. 듣고 뜻을 파악하기 전에 이미 빈칸이 채워져 있어야 한다. 3번 정도만 들려준다.


읽기 같은 경우, a4 용지 반쪽 (이날은 운이 좋은 경우다)이나 한쪽 빼곡히 써진 내용을 읽게 되는데 단어에 대한 친절한 해설이나 문장의 뜻을 하나하나 말해주는 친절한 설명은 전혀 없다. 당연히 모두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짜 어려운 단어 대여섯 개 정도를 설명해주고, 바로 문제를 풀리게 시킨다.


그 당시 나는 거의 돌아버리기 일보직전이었으며, 이 심각하게 많은 학습량에 눌려 거의 신경쇠약 상태에 이르렀다. 당시 나는 반항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착한 어린이였기 때문에 엄마가 그 당시로써는 상당히 비싼 돈을 주고 다니는 학원을 도저히 못하겠다고 깔 수 없었으며 당연히 이 정도 양이 내가 해야 하는 당연한 양인데 못하는 지진아인 줄 알았다.


수학도 해야 하고, 암기과목도 해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며 할 것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영어까지 저 정도 양을 소화하라는 것은 지금 보면 거의 가혹행위와 다름없는 일이었다. 영어에 대한 죽어도 풀 수 없는 증오심과 진절머리 생기기 시작한 시점은, 사실 정확히 보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영어 공부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돌파구를 찾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 방법을 찾는 것은 어쩌면 내 사활을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영어 때문에 미치느냐, 살아남느냐라는 매우 절절한 동기가 있었으니까.




그 당시 나의 취미는 '고속터미널'가기였다.

엄마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나의 취미는 책 읽기와 서점 가기로, 서점만 간다고 하면 뭔 책을 산다고 하는 이야기도 듣지 않고, 2-3만 원씩 돈을 쥐어주며 책을 사 오라고 했다. 주로 나는 문제집을 사기 위해 간다고 했지만 소설을 사는 경우도 많았고, 팬시 코너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엄마의 눈에는 매우 건전한 놀이이자 취미로 여겨졌기 때문에 나는 두어 달에 한 번은 돈을 두둑이 얻어 서점을 가고는 했다. 그리고 내가 즐길 수 있을 만한 대형 서점은 고속터미널에 위치하고 있었다.

서점을 가면 지금도 항상 하는 일이 있다. 베스트셀러 진열장을 유심히 보는 것이다.

요즘은 어떤 책이 유행이며, 뭘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는지를 보고 나도 구입 도서를 정하는 것이다.

그 베스트셀러 진열장을 보는데, 내 눈에 확 들어오는 도서의 제목이 있었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지금도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 파란 표지의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내가 해왔던 성문 영문법이니 이런 것들은 다 필요가 없다. 죽은 영어로는 아무리 공부해도 영어를 잘하기 힘들다. 아이가 말을 깨우쳐하는 방법 그대로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우선 귀가 트일 때까지 듣고 또 듣고를 반복하라. 그리고 그것을 말하고 외워라. 그럼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들리는 영어의 귀가 트일 것이며 그에 따라 문법이니 단어니 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라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나는 그 책을 사 왔다. 그리고 그날 밤이 새도록 읽었다.

그리고도 일주일 가량, 나는 그 책을 읽고 또 읽고를 반복했다.

영어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어학원에서 죽도록 많은 양을 소화해내며 혼란과 부담 속에 사는 것도, 영문법을 죽어라 외우는 것도, 영어책을 죽어라고 외우는 것도 아니다. 우선 많이 듣는 것. 그것도 하나를 반복해서 듣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내면화가 일어났고 나는 엄마에게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아직 몇십만 원을 주고 산 두꺼운 원어 교재들이 반의 반도 끝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책의 내용을 엄마에게 열정적으로 소개하며 이 방법이야말로 진짜 방법임을 말했고, 엄마도 승낙하였다. 후에, 이 분이 말한 학습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테이프도 같이 발매되었고 방법론을 더 자세히 다룬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2 가 출판되어 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방법은 책에 나온 그대로였다. 우선 열심히 테이프를 듣는다. 마침 여름방학 시즌이 시작되었으므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하고 테이프를 켜고 식탁에 앉는다. 열심히 듣는다. 절대 중간에 끊으면 안 된다. 안 들리고 후루룩 지나가는 게 있어도 인내심을 갖고, 20,30분가량되는 테이프를 열심히 듣는다. 문제는 집중력의 구간은 나름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처음은 높은 집중력으로 경청하지만 '어? 이게 무슨 단어였지?'라는 잡념, '무슨 뜻이지?'하는 생각이 들어오면 그새 몇십 문장이 후루룩 지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태클이 걸리는 구간은 항상 같다. 


통으로 듣기 일주일 만에 나는 두 손 두발을 다 들었다(너무 지루했고, 안 들리는 것은 끝까지 안 들렸다. 이때 나는 16살 중학생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


그리고 구간별 듣기 및 받아쓰기를 시작했다. 우선 구간을 수동으로(테이프니까) 나눠서 듣고 받아쓰기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받아쓰는 시간보다 구간 맞춰서 카세트를 누르는 시간이 더 길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대본을 읽는다. 큰 소리로. 도저히 단어 같지 않은 알쏭달쏭한 것들은 사전을 찾는다(절대 스크립트를 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무슨 콜린스 영영사전, (꼭 영영사전이어야 한다). 이 영영사전의 두께는 코끼리가 발차기해도 막아낼 수 있을 만큼의 두께인데 가격도 상당히 비쌌다.


모르는 단어를 영영사전으로 찾아본다. 근데 그 영영사전의 뜻풀이에서 모르는 게 나온다. 그럼 다시 영영 사전으로 그 뜻을 찾는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데 심하면 20번이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너무 많이 찾다 보니 앞의 내용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리고 영영사전이라고 모든 단어가 나와있는 것은 아니니 중간에 끊기는 경우도 생겼다.
그래도 한번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의 챕터원 스크립트를 내 손으로 완성했을 때 이미 방학의 절반이 지나있었다.
그리고 나는 '놀랍게 귀가 뚫리고', '놀랍게 모든 문법 체계를 통달하게 되고', '놀랍게 영어가 모국어처럼 되는'
경험을 하나도 하지 못한 채로 2학기부터는 더욱 혹독한 외고 준비에 몰리게 되었다.
외고 입시 전문학원에서 수학과 영어를 배웠는데, 화목은 수학 논술식의 모의고사 1개, 30문제 가량되는 모의고사를 하나씩 풀고 답을 맞히면 밤 11시, 월수금은 영어를 배우고 시험을 보는데 끝나면 밤 10시. 너무나 혹독했는데 스트레스가 극단에 이른 학원 아이들은 서로 헐뜯고 미워하고 난리가 난 상태였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져 갔다.

결국 영어와는 별 상관없이 성적우수자 특별전형으로 외고 입시에 성공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이런 나에게 영어는 더 가혹하게 다가왔다.
괜히 외고가 아니다. 영어 과목만 해도 4개였다.
영어 문법, 문법에 대해 원서로 배운다. 진도는 눈썹 휘날릴 정도라고 보면 된다.
토익과 토플. 토플을 원서로 배우고 매일 시험을 본다.

원어민 수업. 원어민이 준비한 반쪽에서 한쪽 가량의 주제를 강독 후, 주제에 대한 프리토킹이나 토론을 실시한다.
영어 강독. 약 5~10페이지가량이 짧은 소설이나 신문의 특집기사를 읽고 분석하고 외운다.

플러스로 여기는 외고로, 제 2 전공어가 있다(나는 독어였다) 이에 해당하는 위와 비슷한 시간이 3시간씩 배정이다. 물론 진도는 모두 '잠깐 넋 놓거나 졸면 아무것도 이해 못할 정도의' 폭풍 진도다.

반에서 외국에 6개월 이상 살거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의 비율은 90%가 넘었다. 외국 한번 안나 가본(여행으로도) 순수 한국 파는 내가 유일했다. 격차는 따라잡기 힘들었다. 평균적으로 약 2년을 외국에서 결정적 언어 형성 시기에 살다 온 아이들이었다. 콩쥐팥쥐 대신에 폴라 익스프레스를 듣고 자란 아이들. 문화적 격차 및 언어적 격차가 너무 컸다.
나는 극복할 생각도 못하고(물론 내 나름대로 미치게 노력했지만 기습 시험이라도 볼 때면 항상 반에서 꼴찌 거나 하위권을 맴돌았다. 그게 너무 싫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 맞은 사람, 손들어. 1개 틀린 사람, 손들어. 2개 틀린 사람, 손들어. 3개 틀린 사람, 손들어. 그 이상 틀린 사람, 손들어. 그 이상 틀린 사람이 있어?) 점심시간에는 아이들이 원서로 해리포터 니 브리짓의 일기니 하는 소설을 읽고 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뼛속까지 인이 박히게 한이 생긴 게 이 시점인 것 같다. 나는 글렀다고 해도 내 자식까지 이렇게 설움을 주지는 않으리라.
아이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물어봤다. 대개는 언어 형성 시기에 영미권 국가에 가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하게 된 것이 가장 많은 사례였지만, 일부 눈에 띄는 사례가 있었는데 반복적인 비디오 학습과 카세트 학습이었다.

영어 절대로 하지 마라

그 책에서 스크립트를 만들고 읽어보고 뜻을 알아보는 고차적인 단계만 쏙 빠진, 그냥 통 텍스트를 이해가 되든 안되든 한 4살 때부터 계속 듣기, 가 핵심이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통으로 듣기와 통으로 말하기. 그 두 개면 언어는 쉽게 습득된다. 다만 인내심과 의식의 끊임없는 방해가 문제다. 그 두 개만 극복하면 사실 쉽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의 바람처럼 영어를 그때만큼 치열하게 공부하고 탐구해야 하는 시간들은 없었다. 하지만 영어는 늘 꾸준히 잡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이 돼서야


학문으로, 공부로 그렇게 시달린 영어이지만 정작 생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 없을 때가 돼서야 그 가치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영어는 '세계의 확장'이다.

흔히 언어를 쓰면서도 그 언어가 포함하고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언어는 그 자체의 가치보다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써의 가치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도구적 가치로 전 세계의 모든 문서를 보고(네이버로 한국어 검색했을 때와, 구글로 영어로 검색했을 때 완전히 달라지는 정보의 질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았다면) 습득하고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다. 여행 가서 소통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역시 소중한 언어의 가치다.

하지만 'think'라는 단어를 배울 때 그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생각'이 아닌 말과 표현을 모두 포함하는 어근을 갖고 있는 정도로만 이해해도 세상은 확장된다. 그리고 세계인이 공유한 언어의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케팅이니 번역이니 가치관이 니를 세우고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영어에서 벗어난 지금, 나는 통으로 된 연설을 듣고 또 듣고 매일 출근할 때 듣는다. 공부가 아닌 자발로 시작된 것들을 언제나 즐겁다. 그리고 이렇게 영어를 위해 싸워온 나의 시간들이 투영되어 어느새 어느 정도 '귀가 뚫리고' '말을 할 수 있는' 나를 보며 나 자신에 대한 셀프 칭찬을 해준다.

당신은 이 영어와의 지루한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것인가? 패자가 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자식에게까지도 물려줄 것인가?
끝없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그리고 나처럼 그 안에서 해답을 찾기 바란다.


추천: 앱스토어에 '리스닝 드릴'이라는 앱은 길지 않은 담화와 구간별 반복을 무료로 제공한다. 테이프로 구간 맞추느라 힘들었던 시절은 이미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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