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합평을 앞두고
백종원의 ‘골목식당’ 최근 방영분이 화제가 되었다. 뚝섬 골목에 있는 음식점들을 컨설팅 해주기 위해 백종원은 네 곳의 식당을 들렀다. 그는 위생상태, 음식의 기본기부터 조리 방법까지 모든 것에 화를 내며 돌아섰다.
이 프로그램을 보지 않은 내가 이 소식을 접한 것은 한 포털의 메인 페이지였다. 사건의 전말이 자세하게 나와 있고 댓글로 보는 사람들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음식의 청결상태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실시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이어졌다.
근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울린 지점은 일반 사람들과 전혀 달랐다. ‘기초’와 ‘피드백’에 대해, 나는 나 스스로를 비춰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히나, 작가가 되고 싶은 나에 대해서 말이다.
음식의 가장 기초는 ‘맛’ ‘청결’ ‘재료’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장들의 눈 앞에서 당장 중요해 보이는 것은 ‘수익성’, ‘회전률(혹은 시간절약), ’화제성(홍보)‘ 였다. 백종원은 이와 같은 사실을 벼락같이 꾸짖으며 화를 냈던 것이다.
그럼 이번엔 나의 경우를 비추어 생각해 보자. 내가 지향하는 작가라는 지점에 대한 기초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가? 수없이 많은 글쓰기 책을 읽었고,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초등학교 때 어린 소녀부터 시작해서 거의 20년에 달하는 나다.
하지만 그 시간과는 전혀 상관없이 나 스스로도 ‘시점’과 ‘시제’에 대해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스토리보다 더 기초가 되는 ‘맞춤법’과 같은 종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고치려고 노력하거나 그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는다. 왜냐고? 위에 나온 사장님들의 경우와 같다. 막 떠오르는 아이디어, 그에 따른 스토리 짜기, 글 막 써 내려가기는 ‘눈에 보이고’, ‘당장 중요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것이 부족한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전문가의 일침이나 호령도 ‘아니땐 굴뚝에서 나는 연기’와 같다. 이 뚝섬 골목이 하도 이슈가 되어서 다음 편을 시청했더니, ‘솔루션을 받으려면 문제점을 1주일안에 개선하라’ 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조리 방법와 재료가 문제가 되었던 장어집은 아예 장어를 메뉴에서 빼고, 고등어를 새로운 소스와 함께 직화 구이로 굽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초적인 문제점을 정확히 캐치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간 것이다. 반면 샐러드집은 소스를 새로 수제로 만들고(기존에는 시판 제품 사용), 재료 보관 방법을 바꾸었으며, 메뉴를 새로 바꾸었으나 혹평을 들었다. 백종원이 새로 만든 메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게 맛있어요? 맛없지유? 샐러드 집에 오는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맛없는 샐러드를 먹는 웰빙족만 올거라고 생각해유? 아니에유, 샐러드 집에 오는 사람들도 맛있는 샐러드 먹고 싶어유. 본인 입에 우선 맛있어야 손님 입에도 맛있는 거에유.”
즉 ‘맛’이라는 기본기에서 걸렸으며, ‘평가’에서도 걸린 것이다.
여기서 보이는 식당 사장들과 작가의 공통점은 또 있다. 바로 ‘불특정 다수’에 의하여 평가 받는 직업이라는 것, 그리고 그 ‘불특정 다수’의 정곡을 찌르는 ‘보편성’이라는 포인트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100명의 사람들이 읽는 책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베스트셀러’ 이며,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로 번역되는’ 수준의 문학, 혹은 에세이이다. 작가는 읽어줄 독자가 있기에 존재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추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칭찬만 해주세요.”
내가 내 글을 내밀면서 사람들에게 미리 하고 싶은 말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저 말일 것이다. 글을 하나 쓰면, 특히나 분량이 길거나 정성을 들여 쓴 글은 더더욱 자식을 세상에 내놓은 것 같은 기분을 품게 된다. 내 자식이니까 단점도, 장점도 알지만 또 내 자식이기에 품는 ‘무슨 헛점이 있든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과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 또한 함께 들어 있는 글이다.
이런 글에 대해 솔직한 개선점이나 피드백을 주면 그것에 고맙다기 보다는 이렇게 꽁한 마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내 글에 대해 뭘 안다고’
‘그건 본인의 주관과 세계로 날 평가 한 거니까, 평가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봐줘.’
꽤 오랜 시간 글을 써 왔음에도 나의 글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저 생각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작가는 남과 다른 뚜렷한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 수정을 가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그런 학부모들을 만난다. 아이의 장점을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단점을 말하는 것은 교사로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단점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애정과 관심, 그리고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아이가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정말 훌륭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야만 학부모 앞에서 아이의 단점을 말할 수 있다.
“**이는 멋지고 훌륭한 아이입니다. 하지만 완벽주의적 경향이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는 습관이 강해 종종 충돌이 일어납니다.”
라고 어렵게 말하면, 몇 가지 유형의 대응 방식을 만날 수 있다.
“아, 저도 알고 있어요. 고치도록 노력해야지요.”
빠른 인정과 순응이다. 이런 경우 정말 좋은 방향으로 아이가 발전하도록 도와주는 학부모이기도 하지만, ‘내가 다 알고 있는 걸 뭘 또 다시 언급하냐. 나는 불편하다.’ 라는 뉘앙스일 경우도 많다.
“정말요? 그런 애가 아닌데... 올 해 들어 갑자기 바뀌었네요.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런 것 같아요. (가끔은 선생님 원망을 하기도 한다)”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다. 아이에게 절대 개선이 일어나지 않고 친구나 선생님과의 관계만 악화 일로를 걷는다.
“어머, 저희 애는 절대 그런 애 아니에요. 선생님께서 잘못 보셨어요.”
무조건적인 거부반응이다. 이런 경우는 소통을 포기한다. 이미 학부모는 지적당했다는 사실만으로 분노와 화라는 감정이 올라오는 상태이고 이성의 끈을 놓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 글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을 때의 나의 반응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나마 가장 편하고 내 편인 것 같은 상대인 ‘남편’에게는 상당히 자유롭게 글을 보여주는 편이다. 물론, 남편은 가장 보편적인 ‘회사원’의 시각으로 글을 평가해 주고는 한다.
내 글을 읽은 그가,
“뭘 말하려는 건지 주제를 잘 모르겠어. 주제를 말해줘 봐.”
와 같은 평가를 말할 때, 나는 위의 학부모와 같은 양상을 보인다.
“아, 주제가 모호한건 나도 알고 있어. 고치도록 해봐야지.”
라고 시작하고,
“아 근데 이거 쓸 때 정신이 좀 없었어. 그래서 좀 왔다갔다 하는거야.”
라고 다른 탓을 실컷 한 뒤에
“아 근데 주제가 모호한게 좋은 미덕인 글도 있는거야!”
라고 기어코 싸우고, 결국 이겨내고 만다.
그렇게 내 글을 지켜냈을 때 ‘내 나름의 철학’을 설득시켰다는 뿌듯함이 얼마나 중독적이던가.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아이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내 글도 변하지 않고 소나무같이 봄, 여름, 가을, 겨울 푸르기만 한 것이다.
글에 대한 합평을 할 때, 사람들 간의 싸움이 잦다고 한다. 글을 내놓은 작가도, 그 글을 평해주는 독자도 어느 지점까지 말하고 자신의 의견을 타진해야 하는지 그 정확한 ‘선’을 모르기 때문이란다.
아이의 단점을 말하는 경험에서 늘 학부모들의 부정적 감정에 힘들었던 나는 한동안 아이들의 단점에 대해서는 학부모에게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싸움이 매우 잦은 경우에는 아이의 단점을 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런 경우 내가 터득한 방법이 있다면 ‘그저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아이가 완벽주의적 경향이 있어...’ 라는 등의 평가 잣대는 절대 대지 않는다.
“O월 O일 O교시에 OO이와 다툼이 있었습니다. OO이의 얼굴을 긁어 손톱자국을 냈습니다. 왜 화가 나서 싸움을 했냐고 물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 기준에서 OO이는 회장 자격이 없다. 자꾸 지각하고 숙제도 대충해 온다. 그래서 너는 회장 자격이 없다고 말했더니 먼저 때려서 나도 손톱자국을 냈다’ 라고 말했습니다.”
라는 식이다.
이런 사실 전달에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어요!’, 라던가, ‘OO이가 잘못해서 그런거에요!’ 라고 거부 반응을 보이는 학부모는 극히 드물다.
남의 글을 평가해 줄때도 이렇게 사실만을 전달하면 싸움이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이렇게 평가 받는다면 감정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 같고 말이다.
소설을 오래 써왔지만 남들에게 글을 보여주고, 수정해 보았던 경험은 거의 없다.
하지만 좋은 기회를 빌어 좋은 사람들과 ‘합평’ 이라는 기회가 왔다.
나는 여전히 ‘기초적인 것보다는 스토리로 평가 받아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칭찬만 해줘.’와 ‘정확한 피드백을 받겠어.’ 라는 감정 사이를 헤매고 있다.
게다가, 합평을 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해줘야지.’ 라는 위험한 ‘평가’와 ‘조언’의 감정까지 가득 품고 있었다.
앞으로 내 글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위의 마음들을 정비하고 합평에 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