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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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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Oct 12. 2016

퇴사 일기 24. 미국행

미국 일상 체험

퇴사를 하기 전, 미국 LA에 살고 있는 누나와 매형은 '미국에 와서 쉬어보는 것은 어때?'라는 이야기를 내게 했었다. 나는 누나와 매형이 하고 있는 사업이 궁금하기도 했고, 미국의 일상을 체험해보고픈 마음도 있었기에 흔쾌히 미국으로 향하기로 했다.


미국에서의 일상을 체험해보고 싶은 이유는, 두 번의 미국 여행을 통해 느낀 여유로운 그들의 삶이 진짜인지를 확인하는 게 첫 번째였고, 그들의 삶이 내가 상상한 것과 동일한 것이라면 미국에서의 삶 -이민 혹은 해외 취업-  또한 구상해 보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퇴사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던 시점인 2015년의 8월은, 회사의 미래가 점점 불투명해지던 시점이었다. 산으로 가는 것만 같은 회사의 방향, 갈팡질팡하는 상부의 업무 지시, 그로 인한 잦은 잔업 등으로 매일 치이는 삶을 살아가면서 내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주일간의 미국 여행이었다.


2015년 7월 누나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여름휴가를 미국에서 보낸 나는, 신혼여행을 포기하고 가족 여행을 택한 누나와 매형 덕분에 미국의 삶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10년 이상 거주한 누나와 매형의 이야기, 그리고 현지 거주자들만이 갈 법한 '로컬들의 여행지' 방문을 통해 직접 그들의 삶을 느꼈다. 매형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미국에서의 삶 중 하나는,


'이곳에선 일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그만두고 잠시 쉬었다가 다른 일을 구한다. 그 새로운 일이 페이가 좀 적은 편이라면 그냥 월세 좀 덜 내는 곳으로 집을 옮기고, 수입 수준에 맞춰 새로운 삶을 꾸린다.'


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물론 모든 사람들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이민을 가서 고생한 사람들은 콧방귀 뀌며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회사를 나가면 마치 인생 끝나는 것처럼 여기는 한국 사람들(그리고 당시의 나)의 생각에 처음으로 의문 부호를 달게 되었다.(매거진 이름을 '퇴'사후 세계라고 정한 것도 이를 비꼬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후 5시면 퇴근 차량으로 꽉 막히는 프리웨이, 따스한 햇살 아래 느릿느릿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주말이면 직접 캠핑카를 몰고 와 캠핑을 즐기던 모습 등을 보며, 그곳엔 내가 느낄 수 없던 여유라는 게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퇴근을 준비해야 할 오후 4시에 도리어 업무 할당 및 회의를 시작해야 했던 2015년 8월의 내 회사 생활은, 미국에서 느낀 '그들만의 여유'를 자꾸 떠올리게 했다. 아예 몰랐다면 그냥 순응하며 살았을,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상현실의 삶을 살다 진짜 현실을 자각한 주인공 네오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미국에서의 삶을 조금이라도 맛 본 경험은 결론적으로 나에게 퇴사라는 이름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게 되었다(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자, 그럼 진짜 퇴사를 했으니, 나에겐 떠날 일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그들의 삶을 동경하지 말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내가 본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라는 말을 무작정 미국으로 넘어간 후에 후회 섞인 말투로 내뱉긴 싫었다. 물가, 치안, 문화 등등 모두 직접 체험하고 한국과 비교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의 일상을 체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눈치 없이 결혼한 지 1년밖에 안된 누나와 매형의 집에 얹혀서 말이다.


별다른 준비는 하지 않았다. 비자는 관광할 때 쓰는 ESTA를 인터넷으로 발급받았을 뿐이고, 짐 또한 옷가지 외엔 별 것 없었다. 오히려 미국에 가지도 않는 엄마가 더 많은 짐을 꾸렸다. 엄마는 자식들과 사위를 위한 음식으로만 캐리어 한 개를 채웠다. 당시 미국에서는 팔지 않던 '진짬뽕'을 필두로 온갖 젓갈류의 음식들과 직접 진공 포장한 갖가지 밑반찬 및 주전부리들은 자식에게 주는 내리사랑과 사위사랑을 충분히 느끼게끔 해 주었다. 별다른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 아무런 준비 없던 나의 모습, 그리고 자식의 일이라면 뭐가 됐든 알아보고 염려하는 엄마의 모습은 너무나도 대조됐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차피 3개월 안에 다시 돌아올 것이 분명한 미국행이었기에, 떠나기 전 많은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어떤 친구는 다시는 못 보는 거 아니냐며 떠나기 전날 새벽에 얼굴을 보자고도 했지만, 내 머릿속엔 이 여섯 글자가 분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로 '미국 일상 체험'. 여기에 조금의 여행이 첨가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나중에 꼭 이민이나 해외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분명 얻을 게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흔히 말하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무언가가 내게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꼭 어떠한 자격증 같은 것으로 남지 않아도 좋았다. 아니, 한국식 스펙의 일종인 자격증 같은 요소들엔 오히려 반기를 드는 심정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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