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는 다르다.
1. 2014년 1월 방문
내가 미국을 처음 갔던 건 2014년 1월. 우리 가족은 누나가 미국으로 건너간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나라의 어떤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는지에 대해 마치 '안물!', '안궁!'의 자세를 취한 것처럼 한 번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가끔 누나가 회사 출장차 한국에 잠시 들렀던 정도였을 뿐이다. 나는 2013년까진 휴가를 주말 포함 최대 5일까지만 쓸 수 있었기에 미국행을 생각지 않았었고, 부모님 또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즉, 안 갔다기보단 못 갔다는 게 맞고, 못 갔다기보단 갈 생각조차 못 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2013년 중반쯤, 회사로부터 휴가 계획 지침이 내려왔는데, 거기엔 아주 크나큰 변화가 있었다. 연차를 최대한 소진시키자는 목적으로 휴가를 주말 포함 일주일까지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난 엄마와 함께 2014년 1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고, 그것이 나의 첫 번째 미국 여행이었다.
그 당시 나의 뇌리 속에 깊게 뿌리 박힌 미국의 모습은,
i) 톰 브래들리 공항(LAX)은 인천 국제공항에 비해 훨씬 작다.
ii) 나무 전봇대들이 존재한다.
iii) 차를 타고 지나가다 포크레인 같이 생긴 기계가 황무지 여기저기에서 움직이는 걸 보았는데, 그건 바로 석유를 추출하는 모습이었다.
iv) 한인 타운에 들어서자 80년대에나 볼 수 있던 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v) 진동벨 사용이 일반화된 한국의 푸드 코트와는 달리, LA의 푸드코트는 번호가 적힌 박스의 조각으로 보이는 누렇고 두툼한 종이 쪼가리를 줬다.
vi) 주차 공간이 크다. 주차 라인 자체가 겹선으로, 굉장히 여유 있게 생겼다.
위 여섯 가지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강렬했던 것은 바로 나무 전봇대였다. 흔히 전봇대라고 하면 콘크리트로 이뤄진 원형 기둥 모양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LA에서 본 전봇대는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다시 보고, 눈 씻고 봐도 나무였다. 몇 개만 그런 것이 아니었고 공항에서 누나 집으로 가는 내내 나무 전봇대만 보였다(다운타운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후 나는 미국의 어떤 도시를 가든 전봇대를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필라델피아의 중심가는 전봇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모든 전선이 땅 속에 매립되어 있는 것 같았고, 샌프란시스코에선 반갑게도 나무 전봇대를 볼 수 있었다. 사대주의의 성향을 손톱만큼이라도 갖고 바라봤다면, '미국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전봇대를 나무로 계속 유지하는구나~' 같은, 무조건적 찬양을 했을 수도 있지만, 미국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미국 뭐 이래?'였다.
공중 화장실도 한국보다 뒤처진 느낌을 받았다. (여성들은 잘 모르는) 남자화장실의 소변기 같은 경우, 요즘 한국은 센서 감지를 통해 자동으로 물이 나오는 방식이 흔한데, 미국에는 레버나 버튼을 이용해 수동으로 물을 나오게 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좌변기에 비데가 없음은 물론이었고, 벽면과 바닥을 이루는 타일 조각 또한 굉장히 오래된 인상을 주었다. 화장실만으로 봤을 땐, 한국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인들이 즐비한 한인타운은 어떨까? 한국인들이 많다고는 해도 모든 건물, 간판, 인테리어 등은 미국식을 따르는 듯했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식이란, '조금은 오래된'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이민 1세대가 이룩해 놓은 모습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느낌이었고, 강렬한 태양으로 인해 까맣게 그을려진 피부색과 매우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에 반해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은 온갖 메이크업과 성형이 잘 어울리는 도심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미국 뭐 이래?'라는 생각을 하며 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 내 눈에 들어온 iii)번 광경은 부러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바로, 자원이었다. 여행사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석유 추출기는 펌프질 한번(위, 아래로 한번 움직이는 과정)에 60갤런(227리터) 정도의 석유를 땅속으로부터 끌어올린다고 하며, 농사를 짓는 농부가 우연히 자기 땅에서 석유가 나오는 것을 발견하면 국가에 신고하여 석유 추출기를 설치한다고 한다. 즉,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인들은 기름 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아무 곳에나 빨대라도 꽂으면 석유가 나올 것 같았다. 그 석유들은 곧장 사용되지 않고 다른 지역의 땅 속에 주로 저장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미래의 자원 고갈 혹은 전쟁을 대비한 에너지 축적이 첫 번째 목적이라고 한다. 지금 당장 입에 풀칠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 것이다.
2. 2016년 4월 방문
2014년엔 여행 목적, 2015년엔 누나 결혼식 참석 목적, 그리고 2016년엔 퇴사 후 휴식의 목적으로 미국을 찾게 되었다. 톰 브래들리 공항에 내리자마자 누나와 매형이 날 마중 나와 반겨주었고, 차를 타고 공항 주차장을 나서자마자 날 반겨주었던 것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전봇대들이었다. 여전하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땅 덩어리가 너무 넓어서 전봇대를 전부 교체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 뭐 이래?' 했던 마음이 어느 순간 국토 면적에 대한 부러움으로 바뀌게 됐다.
누나와 매형의 신혼집에 도착한 나는 거실에 짐을 풀었다. 거실에 짐을 풀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방이 한 개뿐인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즉, 나는 집의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거실에 요와 이불을 펴 놓고 민폐를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아파트는 한국 아파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한국의 아파트는 분양을 하게 되면 집집마다 '집주인'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마련인데, 미국의 아파트는 부동산 회사가 주인이다. 그리고 세입자들은 그 회사에 월세를 내고 살아가는 것이다. 아파트에서 매매의 개념은 없다. 한국의 아파트와 가장 비슷한 건 콘도미니엄이라는 개념의 건물이었다. 류현진이 LA에서 살고 있다고 알려진 집이 바로 콘도미니엄 개념이다.
그리고 전세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다달이 집세를 내야 하는 게 이곳의 문화였다. 누나와 매형의 신혼집은 방, 거실, 부엌, 화장실 모두 각 1개뿐인 아파트였지만, 한 달에 1250달러(140만 원 수준)를 월세로 내야 했다. 자동차 또한 리스로 사는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한 달에 적어도 150~200만 원 이상은 기본적으로 빠져나가는 게 내가 접한 미국의 생활이었다. 물론 도시마다 물가 차이가 크고, 도시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많은 비용의 차이가 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생활비가 적은 지역일수록 위험도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3개월을 미국에 있으면서 아파트 앞 길가에 유리창이 깨진 채로 주차된 차를 딱 두 번 보았는데, 이는 모두 차 안의 무언가를 가져가기 위한 파손으로 보였다. 한국에서 30년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요즘의 한국 차들과는 달리, LA의 차들은 아무런 장치도 없는 게 일반적이었다. 기본 매립형 내비게이션은 많이 봤지만, 거치형 모델은 아예 볼 수 없었고 휴대폰의 구글맵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었다. 블랙박스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직 블랙박스 문화가 정착이 안 된 탓도 있겠지만, 차 안에 고가의 전자 장비가 장착되는 것 자체를 좀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내 차 유리창이 파손되는 꼴 보기 싫은 건 당연한 것일 테니.
내가 후에 한국에 돌아와 한 친척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했더니 '미국이? 그 잘 사는 나라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직접 경험해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반응이었다. 나는 누나라는 가족의 한 구성원 덕에 이러한 차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LA에는 나무 전봇대가 존재한다고, 고가의 제품을 차에 넣어놓은 채로 길가에 주차를 하면 유리창이 깨질 수도 있다고, 월급의 반은 월세로 다 나간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과연 내가 미국에서 생활을 잘할 수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조금씩 갖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