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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물C Sep 09. 2021

2. 비야디(BYD)의 배터리 인간, 왕촨푸(王传福)

|BYD 창업자 왕촨푸|


비야디의 창업자이자 현재 최고경영자 왕촨푸(王传福)는 1966년생 안휘성 출신이며 1987년 중난대학 야금물리화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유색금속연구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선전에 설립한 비거(比格)라는 중국 배터리 회사 사장으로 1993년부터 2년간 근무하면서 기업 운영과 배터리 생산의 실질적인 경험을 쌓았다.


BYD 창업자 왕촨푸(王传福 ), 전복의 왕, 왕전복 형님..


여기서 근무하던 중 1994년 일본 기업들이 각종 환경오염 등의 문제로 니켈카드뮴 배터리 감산, 심지어 생산 중단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그리고 조만간 일본이 실제로 니켈카드뮴 배터리의 생산을 중단하면 분명히 배터리 공급 대란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중국에서 휴대폰(다거다 大哥大 예전 9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 등에 자주 등장하던 거대한 벽돌폰, 당시 휴대폰은 그야말로 부의 상징)과 각종 전자기기의 발전으로 배터리 분야가 향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을 확신했다.


부의 상징 벽돌폰 다거다(大哥大), 여기서 비즈니스 기회를 엿봄


이런 천재일우의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한 그는 자기가 근무 중이던 비거 배터리 회사에서도 니켈카드뮴 배터리 분야에 과감히 투자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비거는 베이징유색금속연구원과 연계된 국유기업이었다. 나도 공공기관 다니지만, 공공기관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할 거 없이(?) 도대체 신속하게 결정되는 것들이 없다.


관련 신청이 계속 지연되고 비준을 받지 못하자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뛰쳐나와 버린다. 그러나 30세도 안된 젊은이한테 창업자금을 빌려주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왕촨푸의 사촌형인 뤼샹양(吕向阳)이 거금 250만 위안을 빌려주어 그는 20여 명의 임직원과 함께 선전 경제특구에 비야디실업(比亚迪实业)를 설립하고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


이렇듯 왕촨푸는

- 배터리 관련 대학교를 졸업하고

- 배터리 관련 대학원을 다녔으며

- 대학원에서 배터리 관련 부교수(동 대학원 최연소 부주임 역임)로서 학생들과 같이 배터리 연구를 하였고,

- 대학원 자회사 격의 배터리 관련 회사를 운영하다가

- 자신이 직접 배터리 회사를 설립한,


그야말로 인생을 배터리로 가득 채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비야디 창업자인 왕전복님을 배터리 인간으로 부르고 싶은 충동을 남지 못하겠다.



|BYD의 출발, 배터리|


20세기 말만 하더라도 파나소닉, 산요, 소니 등의 일본 기업이 배터리 시장을 꽉 잡고 있던 시대였으며 선전에 자리 잡은 많은 중국 기업들도 서서히 산짜이(山寨, 모조품) 제조에 필요한 기술력을 쌓아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중국 기업들은 기술력 위주의 생산이 아니라 단순 조립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비야디 역시 초창기에는 배터리 생산 라인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나 당시 많은 중국 기업들처럼 많은 비용을 들여서 해외 기술 도입 및 대량 자동 생산라인을 도입하기보다는(물론 초창기에는 그럴 돈도 없었을 것이다) 반자동 개인 제조설비를 개발해서 비싼 배터리 제조 원가를 중국의 값싼 인건비를 활용하여 노동집약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초창기 비야디 배터리 사업의 특징이다.


자동화된 기계 생산 라인 대신 여러 명의 인력 작업을 통해서 프로세스를 구축했으며 당시 고작 100만여 위안을 들여서 배터리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이는 비야디의 생산 제조 원가를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다만 인력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프로세스상 불가피한 불량률이 문제였으나 이는 인적 교육 및 훈련과 별도로 개발한 작업 도구 등으로 힘겹게 극복해 나간다.


비야디 초기의 주요 분야는 니켈카드뮴, 리튬이온, 니켈수소 등을 활용한 2차 배터리(재충전용) 개발 및 제조였다. 아무래도 기존의 강자인 일본 기업들보다 기업 인지도와 기술력에 한참 밀리기 때문에 비야디는 최대한의 성능 개선과 함께 생산 원가 절감에 치중하여 평균적으로 일본 제품보다 약 40% 이상 저렴한 가격을 시장에 선보였다.


이렇듯 비야디는 엄청난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서 기존의 일본 기업들과 가격 전쟁에 나섰고 무서운 기세로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간다. 비야디 관련 중국 서적과 각종 언론 및 뉴스 사이트에서는 배터리 성능도 일본 기업의 배터리를 능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저렴했다고 명시하곤 하는데,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그 부분의 신빙성은 다소 떨어진다고 보인다.


설립 첫 해인 1995년 하반기에 비야디는 당시 대만의 최대 휴대폰 제조사인 타이완 다빠그룹(台湾大霸集团)에게 자체적으로 개발한 배터리의 샘플 테스트를 맡겼는데 상당히 괜찮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다빠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그 해 말 다빠는 기존의 일본의 산요에서 비야디로 배터리 공급선을 전환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격적 메리트와 기본적인 성능이 당연히 가장 크게 적용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비야디는 점차 자체 휴대폰 배터리 사업을 확장하여 나가기 시작했고 1997년에는 리튬이온 전지 등으로 배터리 생산 범위를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비야디는 천운도 따라줬다. 1997년에 한국을 비롯한 전 아시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 IMF 사태로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휴대폰의 수요도 급감하여 당연히 배터리 수요로 바닥을 치게 된다. 배터리 가격도 곤두박질치면서 비야디의 경쟁사인 여러 일본 배터리 기업은 주문량 감소에 따른 생산시설 유지 등에 막심한 영업 손실과 경영 애로를 겪는다. 그러나 애초부터 일본 기업보다 40% 이상 낮은 생산 원가를 유지하던 비야디는 이 상황을 버텨 낼 수 있었으며 외환위기가 마무리되고 다시 경제가 회복세를 타고 배터리 수요가 증가했을 때 당시 필립스, 파나소닉, 소니 등을 비롯한 유수의 글로벌 IT 전자 기업들이 당시 무명소졸에 불과하던 배터리 제조사인 비야디에 러브콜을 보낸다.


이렇듯 고작 창업 2년 만에 연매출 1억 위안 이상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단번에 올라섰고, 그 이후 3년간 매년 무려 100%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다. 또한 창립 3년 만인 1998년에 니켈카드뮴 배터리 분야에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40%을 달성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000년에는 모토로라, 2002년에는 노키아의 리튬이온 배터리 공급사로 선정되었으며 이런 대규모 실적을 바탕으로 전 세계 2위의 휴대폰 배터리 제조업체로 올라섰다. 그리고 2002년 7월에는 당시 기업 공개 최고가 기록을 새로 쓰면서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까지 되는 기염을 토했다.


2003년에는 드디어 일본 산요의 배터리 시장점유율을 넘어서서 왕전복, 왕촨푸는 중국 내에선 '배터리 왕'으로 불리게 된다.


난 전복왕이 될꺼야!! (feat. 왕전복) @원피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르고 비야디 배터리 사업분야는 스마트폰 분야뿐 아니라 자사의 전기차에 들어가는 차량용 배터리로 점차 발전하였으며 2018년에 최초로 자사가 아닌 동펑자동차(东风汽车)에 차량용 배터리를 납품하기도 한다.


점점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매출액이 커지자 2018년 비야디는 배터리 사업의 독립 운영을 발표한다. 분리 상장 시기는 이르면 2021년 하반기, 2022년쯤 이루어 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9~2020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 @SNE 리서치


2020년 기준으로 비야디의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많이 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진격의 비야디’

출간 서적 검색 바랍니다.


https://m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46866994618?cat_id=50010480&frm=MBOKMOD&query=진격의+비야디&NaPm=ct%3Dlv3ifos0%7Cci%3D962b640701968f10c963fb175529636fdc1799a5%7Ctr%3Dboknx%7Csn%3D95694%7Chk%3D1b29eb47cb1abda1358053534a6762710fd00c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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