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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물C Sep 22. 2021

4. 비야디(BYD) 현재 주력군, 자동차 산업 진출기

도요타 카피하던 뉴비 시절과 전기차 전환, 그리고 워렌 버핏

|BYD 자동차|


2003년 1월, 비야디가 그동안 배터리 사업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과 기업 공개를 통해서 마련한 자금 등으로 경쟁력 부족으로 도산 위기에 놓인 시안친촨자동차회사(西安秦川汽车有限责任公司)의 지분을 2.7억 위안애 77% 인수하고 비야디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다. 여러 경영진, 주주 및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은 모두 처음부터 반대했지만 왕촨푸의 강력한 의지로 자동차 사업이 이렇게 시작됐다.


볼보를 인수하고 다임러의 대주주로 유명한 중국 최고의 자동차 기업 중 하나인 지리자동차(吉利汽车)의 창업주인 리슈푸(李书福)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때도 '자동차 그까이거 그냥 바퀴 네 개랑 소파 하나 붙어 있는 거 아닌가(汽车不过就是四个轮子和一个沙发)?' 해서 업계 인사들을 놀라게 했는데


왕촨푸도 2008년에 이렇게 일갈한 적이 있다. 2015년에 중국 1위, 2025년 글로벌 1위가 되겠다(2015年做成全国第一,2025年做成全球第一). 2015년에 중국 1위는 못했고, 2025년 글로벌 1위도 난망하지만 어쨌든 꿈 하나는 시원시원하다. 최고경영자가 저 정도 포부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배터리 王에 이어서 자동차 王이 될 테다!
데헷-
다짐하는 왕촨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사실 왕촨푸는 배터리 분야에서는 전문가였지만 자동차 분야에서는 문외한에 가까웠다. 그들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그들의 배터리 기술과 자동차 산업의 결합에 따른 상승 작용을 노린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우려한 바와 같이 자동차 사업은 초기에 계속 적자만 내고 있었고, 불행히도 그 적자폭은 계속 커지고 있었으므로 기존 비야디의 배터리, 핸드폰 부품 사업에서 벌어온 수익을 몽땅 빨아드리는 블랙홀로 변신 중이었다. 당연히 홍콩에 상장한 비야디 주식도 고점 대비 30%까지 폭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배터리와 자동차를 결합한 전기차가 처음부터 최종적인 목표였으나 처음부터 주춧돌도 다지지 않고 3층짜리 멋진 기와집을 짓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장 급한 것은 인수한 자동차 회사를 최소한 정상 궤도로 올려놓고 꺼져가는 호흡부터 살려내야 하는 것이었다. 망해가는 시안친촨이라는 자동차 회사의 주인이 비야디로 바뀌었다고 안 팔리던 차가 갑자기 잘 팔릴 리는 만무했다.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차를 개발하여 시중에 잘 판매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상기의정(上汽仪征)의 총괄 엔지니어인 롄위보(廉玉波) 등 여러 유명 엔지니어 등을 스카웃 해오고 2억 위안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써가면서 신차를 개발했는데 막상 최종적으로 개발된 샘플이 너무 못 생겨서 어느 대리점도 팔아주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왕촨푸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친히 자기 손으로 그 샘플차를 모조리 부숴버렸다고 전해진다.


차를 이렇게 못 생기게 만들다니, 용서 못해 @이말년


이렇게 자체 연구개발을 통한 신차가 디자인부터 엉망인 상태로 개선 방안을 도저히 찾지 못하자 생사의 기로에 선 비야디는 결국 중국 기업 특유의 철면피 작전이 동원된다. 알리바바도, 텐센트, 샤오미 모두 즐겨하던 남의 모델 베껴오기 즉 카피캣 전략이다.


이번 베끼기의 희생양은 도요타의 베스트셀링 준중형 세단 코롤라였다.


먼저 코롤라의 디자인부터 가져와서 그 디자인에 맞게 차 설계를 진행한 역방향 개발을 추진했다. 그 베낌의 결과가 2005년 9월 탄생한 비야디의 첫 출시 모델인 F3이다. 코롤라와 F3은 한눈에 보기에 거의 뭐가 뭔지, 누가 코롤라인지 누가 F3인지 구분이 안 되는 혼란함을 유발한다. 이렇듯 얼굴에 철판 깔고 디자인을 베껴왔지만 비야디도 나름의 전략이 있었다. 그것은 역시나 두말하면 입 아픈 가성비. 비야디는 과거 배터리 생산할 때 반 자동 생산 라인을 깔아본 경험을 가지고 자동차 생산 라인을 유사하게 설계했다. 이를 통해 생산 원가를 최대한 절감하고 코롤라의 대부분의 기능을 똑같이 구현하였지만 코롤라의 판매 가격의 50%에 F3을 출시한 것이다.


좌측 비야디 F3, 우측 도요타 코롤라 @CARGUY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역시 기업과 국민은 부창부수의 관계인 것인가. 기업이 다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일본 도요타의 코롤라를 그대로 베껴왔지만, 국민들도 같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역시 자동차는 갓성비’를 외쳐대며 F3 출시를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비야디 F3이 출시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중국 자동차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내에 10만 대가 팔린 역대급 중국산 베스트 셀링카로 등극한 것이다.


베껴서라도 이런 히트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만한 일이다. 당연히 기업 양심에 거리낄 수 있겠지만  

- 이 정도까지는 베껴도 법적으로는 문제없을 것이라는 확신,

- 디자인은 베꼈지만 기능, 성능, 가격으로 만족시켜 준다면 분명히 소비자들이 구입할 것이라는 자신감,

- 이에 대한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오픈 마인드(혹은 얼굴 철판)

이런 것들이 초창기 중국 기업들의 전반적인 마인드다.


나쁘게 말하면 성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는 성공 만능주의지만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잡초 같은 끈질김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비야디 전기차 개발|


결과적으로 비야디는 이 신차 하나로 갑자기 중국 내 메이저 자동차 브랜드로 위상이 올라갔으며 이 내연기관 차의 성공은 왕촨푸로 하여금 이제 자동차에 배터리를 장착할 시기가 됐음을 직감케 했다. 만일 전기차를 제대로 만들 수 있다면 미국, 유럽 등의 자동차 선도기업들이 내연 엔진을 달고 달리는 연료차의 핵심 부품에서 가지고 있는 기술 우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첫 모델인 F3의 성공과 각종 타 사업군에서 얻은 각종 영업이익을 대부분 전기차 개발에 쏟아붓는다. 사실 비야디는 2004년에는 비야디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설립하여 자동차 전장 분야를 진작에 준비한 면이 있으며, 2005년에는 이윽고 전기차 개발 전담 사업부를 설치하고 이 와 관련된 본격적인 개발 작업에 착수한다.


비야디의 목표 로드맵에 따라 2008년 12월 세계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모델인 F3DM을 출시하고, 2011년에는 순수 전기차인 E6를 발표하며 다양한 전기차 모델 라인업을 갖추어 간다. 다만 이런 일련의 전기차 개발 과정을 많은 주주와 이해 관계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히 내연기관에 사용되는 휘발유가 저렴한데 도대체 전기차가 무슨 효용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워렌 버핏은 왕촨푸가 그리는 전기차의 미래에 대해서 높게 평가하고 특히 비야디의 배터리 기술력에 깊은 감명을 받고 2008년 9월에 2.3억 달러를 투자하여 비야디 지분을 약 10%를 인수하면서 비야디의 이름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아직도 워렌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8%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런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가 비야디에 큰 투자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기차 개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쏙 들어가고 비야디의 주식은 급상승하여 왕촨푸의 350억 위안의 주식 가치를 보유한 중국 최대 부자로 올라선다.


2010년 M6 신차 발표회: 왕촨푸, 찰리 문거(버크셔 부회장), 워렌 버핏 그리고 그 옆엔 심지어 빌 게이츠, 전복이횽 입이 귀에 걸렸다.


이렇게 중국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왕촨푸는 계속 내연기관 차에서 얻은 이윤을 전기차에 쏟아붓자 내연기관 모델의 연구개발 자금부족 현상이 생겼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야디 내연기관 차량은 지속적으로 품질 문제가 발생했다.


게다가 품질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야디는 오히려 계속 자동차 생산 능력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2011년 상반기에 비야디의 고정자산은 212억 위안에 달했고 건설 중인 공장 프로젝트가 73억 위안에 달했다. 이렇듯 대량으로 생산 능력을 확충함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비야디는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무려 88%나 감소했고 더 안 좋은 것은 상품의 입소문이 좋지 않게 나서 판매 대리상 네트워크도 감소하는 등 여러 문제가 생겼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왕촨푸는 2012년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이 문제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2년 간의 차량 품질 개선, 판매 네트워크 개선 작업을 거치고 이에 더해 정부의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원 확대로 비야디는 다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야디의 브랜드 이미지는 도요타 코롤라 모방 사례와 2010~2012년 사이에 불거진 비야디 차량의 품질 문제에서도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한 동안 저가품, 낮은 등급, 저신뢰의 이미지에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최종 목표인 전기차 개발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일련의 품질 사태와 브랜드 이미지가 고착되었다고 보이는데 이런 노력은 점차 13년부터 빛을 보기 시작한다.


(다소 나아지긴 했으나 사실 2021년 현재도 비야디의 브랜드 이미지는 저렴한 가성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13년에 비야디 총매출에서 3%밖에 되지 않던 전기차 판매 비중이

14년 12.6%,

15년 24.2%,

16년 33.5%,

17년 36.9%까지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호실적에 힘입어 비야디는 2015~18년 4년 간 전 세계에서 전기차를 가장 많이 판매한 기업이지만 차종을 전기승용차로만 놓고 봤을 때는 테슬라가 1위고 비야디가 2위다.


전기차 하면 미국이나 중국 할거 없이 당연히 테슬라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최근 중국의 니오나 샤오펑도 신흥 전기차 강자로 유명하지만 사실 전통의 강호는 비야디인데 꽤나 흥미로운 것은 사실 비야디랑 테슬라는 전기승용차 분야 말고는 어디 하나 겹치는 사업 분야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게 자동차 산업에 매우 큰 부분이긴 하지만 그만큼 비야디의 사업 범위가 광범위하다고 볼 수 있다.


2013년부터 중국 왕조 이름 시리즈로 전기차(진/秦, 당/唐, 송/宋 등)를 출시하기 시작했고, 2016년도부터 비야디로 기존의 저가, 저신뢰 등의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서 아우디의 디자인 총괄 볼프강 에거(Wolfgang Egger) 등 여러 해외 기업에서 유명 디자이너를 스카웃하여 자동차의 외관과 성능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를 하였고 이에 따라 비야디의 신규 디자인 라인인 ‘Dragon Face’ 시리즈가 출시된다. 비록 이것도 약간 아우디의 냄새가 풍기긴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디자인 수준을 훨씬 올라갔다는 평가다.




BYD 당(唐)
BYD 송(宋) 뭐가 Dragon Face 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예전 디자인보단 좀 낫긴 함


다음 편엔 비야디 전기차의 격이 다른 업그레이드를 보여주는 BYD 한(汉) 모델을 중심으로 비야디 디자인과 기술력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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