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
시칠리아에 온 지 열흘 정도 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카타니아에서 완전히 뻗어버렸다. 반나절은 오르티지아섬에 다녀오고 나머지 시간은 숙소에서 잠을 자거나 누워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 됐다. 시라쿠사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만한 곳은 노토 정도였는데, 여행 에너지가 모두 고갈된지라 갈까 말까 고민이 됐다. 몸도 지쳐있었고, 볼거리가 카테드랄 하나 정도인 곳이라 별로 끌리지도 않았다. 그러다 할 일 없이 누워있는 시간이 아까워서 몸을 일으켰다. 슬슬 산책하는 겸 다녀오자는 마음으로.
미리 버스 회사 사이트에서 노토행 버스를 검색해보니 Interbus와 AST 두 곳에서 버스를 운행하는 듯했다. 그런데 터미널 티켓 부스에서 산 표는 Interbus 회사의 티켓이었다. 시간상으로 AST가 훨씬 선택지가 많아 그 버스를 타고 싶었다. 버스 회사 관계자로 보이는 분에게 물어보니, 열심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알아봐 주셨는데(시칠리아 사람들은 매번 친절했다^-^) 결론은 Interbus를 타라는 것이었다.
*시라쿠사-노토 이동하는 법(버스)*
- 소요 시간: 55분
- 요금: 편도 3.6유로 왕복 5.9유로
- 버스 운행 시간
1)AST
시라쿠사-노토(7:00. 8:00. 11:30, 13:40, 14:30, 17:30)
노토-시라쿠사(5:35, 6:45,13:15,15:45,19:25, 21:15)
2)인터버스
시라쿠사-노토(9:30,11:30,13:15,14:15,17:30)
노토-시라쿠사(6:50, 7:35, 12:50, 14:50)
* Interbus, AST 홈페이지에서 버스 시간 조회 가능
인터버스 홈페이지 http://www.interbus.it/Home.aspx
AST 홈페이지 http://www.aziendasicilianatrasporti.it:8080/
**Interbus, AST 두 회사에서 노토까지 가는 버스를 운행하긴 하나, 정확한 정보는 버스 터미널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시간이 조금 있어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기로 했다. 마땅한 식당은 없었고, 기차역 옆에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매점이 있었다. 빵 종류가 여러 개 있어서 고민하고 있으니 주인아저씨가 당연히 이걸 먹어야지 하는 표정으로 아란치니를 권했다. 아란치니는 어디서 먹어도 기본은 하겠다 싶어서 에스프레소와 함께 주문했다. 하지만 카타니아의 아란치니 맛집인 사비아에서 먹은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토마토소스와 고기, 치즈가 버무려진 익숙한 맛이었는데 오래된 것인지 겉은 눅눅했고, 안 재료는 뭉쳐서 퍽퍽했다. 결국 남기고 나서 에스프레소로 입가심했다.
시라쿠사에서 노토까지는 1시간가량 걸린다.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이 걷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을 입구인 Porta Reale가 나온다.
비몽사몽한 정신을 깨우려고 젤라또를 먼저 찾았다. 마침 초입에 젤라또 가게가 딱 보인다. 제일 좋아하는 조합인 레몬, 피스타치오를 주문. 가격도 2유로에다가 시칠리아에서 먹었던 젤라또 가게 중 양이 제일 많았다. 맛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제일 한가했던 가게다. 노토에서 나오면서 봤을 때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노토는 틀에 맞춰 잘 짜인 고급스러운 도시 같았다. 시칠리아에서 바로크 건축 양식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도시가 노토라고 했다. 1700년대 시칠리아의 대지진은 노토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대부분 건축물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나중에 재건축된 것이 지금의 모습니다. 어디에선가 외려 이런 참사가 건축가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바로크 양식에 자신들의 개성을 섞어 아름다운 건축 도시를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토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바다만 없을 뿐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와 분위기가 비슷한 것도 같다.
노토의 모든 건축물이 훌륭하지만, 제일 유명한 건물은 노토 카테드랄(Cathedral of Noto)이다. 비토리오 엠마뉴엘 거리부터 시작되는 수많은 계단 위에 올라서 있는 카테드랄의 위용은 굉장했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듯하다. 마음에 드는 것일수록 아껴보고 싶어 진다. 일단 마을 전체를 한번 돌아본 후 카테드랄을 보기로 했다.
길을 가다가 외관이 예쁜 산 도메니코 성당을 발견했다. 돔이 화려하고, 건물 가운데가 동그랗게 튀어나와 아름답다.
5개의 돔으로 이루어진 천장과 흰색 벽이 단정한 느낌을 주는 성당 내부.
건너편에는 극장이 있다. 몇 개의 성당과 극장을 묶어서 티켓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고민하다가 그냥 나왔다.
그리고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이날은 알차게 관광지를 보는 게 아니라 기분 전환이 목적이었으므로.
궁금한 건물이 있으면 눈으로 보고, 앉아서 쉬고 잠깐 들리고. 그것만 했던 것 같다.
노토에서 열리는 축제 중 유명한 것은 꽃 축제(Flower Festival in Noto)다.
5월 중순쯤 열리는데, 꽃으로 장식한 여러 예술 장식을 볼 수 있고 전통 행진 등 볼거리도 많다고 한다.
평소의 노토와 달리 사진 속 축제가 열리는 노토는 인파가 엄청나다.
밋밋했던 노토 여행에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해 질 녘 노토의 풍경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다. 노토의 전반적인 건물이 짙은 상아색을 띠다 보니, 해가 질 무렵이면 노토의 모든 건물이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변한다고 한다. 엽서로나마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노토의 기념품. 특별한 건 없다. 파스타가 여기에도 있었지만, 왠지 타오르미나만 못한 것 같다.
다시 카테드랄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문을 닫았다. 그제야 론리플래닛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내가 딱 노토에 있는 시간 동안 문을 닫는다. 그러니까 시라쿠사로 돌아가는 막차가 오후 3시인데, 카테드랄은 오후 3시에 다시 문을 여는 것이다. 노토에 와서 카테드랄을 못 보고 가다니.
*노토 카테드랄 오픈 시간: 9시~13시, 15~20시
아쉽지만, 금방 마음을 접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되는대로 하는 여행이니까. 아쉬운 대로 계단 위로 올라가 성당 사진이라도 잔뜩 찍어가기로 했다.
1996년에 카테드랄 돔이 무너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완전히 수리가 될 때까지(2006년) 성당은 문을 닫았다.
계단 위에서 보는 노토의 풍경.
성당 건너편에는 Palazzo Ducezio이 있다. 원래는 단층 건물이었지만 1950년대에 2층을 추가로 올렸다고 한다. 카테드랄 다음으로 멋진 건물이었다.
노토는 상부와 하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부에 대부분의 볼거리가 몰려 있다. 위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 올라가 보기로 했다. 상부로 가기 위해서는 골목의 가파른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한적한 골목을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걸 좋아하니, 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거의 없었고, 햇볕은 사정없이 내리쬔다. 한 여름에는 절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높은 곳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노토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노토 마을에서 나와 외각으로 조금 걸어 나오니 전혀 다른 분위기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시원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돌아갈 시간이 다 돼 버스 정류장 근처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시라쿠사에서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두 쌍의 노부부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분들도 아마 카테드랄을 못 봤을 텐데.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카타니아로 돌아와 하루를 푹 쉬고 나니,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노트가 좀 심심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여행의 전환점이 되어준 것도 같다. 아름다운 바로크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노토에 꼭 들러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