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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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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징카 Sep 30. 2023

진짜 자기소개서

세상에 제출한 n개의 자소서를 뒤로하고

안녕하세요? 이 인터넷에 처음으로 진짜 자기소개서를 써보려 합니다. 제 자기소개의 시작은 16살쯤부터였는데, 우리가 그동안 이름 모를 그들에게 수많은 자기소개를 해왔던 것치곤, 혹자는 아직 우리가 누군지 모릅니다. 90년대 생이 온다며 요즘 청년들에게 MZ라는 별칭을 쥐어주고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을 떠올려보면 말이죠.


그럼에도 한 번도 ‘진짜 자기소개’는 해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듣고 싶어 하는 이는 있었을까요?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 작동원칙인 시장 원리, 수요 없는 공급은 때로 가치 없다 여겨지니까요.


진짜 자기소개는 어떻게 하나요. 나이, 학교, 직장, 연봉 이런저런 외적인 것을 모두 걷어내고의 나. 그렇다면 이 글은 생각보다 짧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나는 누구였을까요. 수 없이 제출한 자기소개서의 자기도 나이고 그 글 밖의 나도 나인데.


진짜 나는 종종 무기력합니다만 그래도 가끔 눈이 반짝거리고 가슴이 뛰는 순간이 있습니다. 남자친구가 모는 차의 옆자리에 타 좋아하는 노랠 들으며 서울 근교 카페에 가는 길이라던지, 고요한 도서관에 사각거리는 책 소리를 들으며 나도 그 소리의 일부가 되어 본다던지, 가족들과 함께 티비를 보며 배달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이라던지, 가끔 둔한 내 손으로 쳐보는 기타와 노래가 꽤나 신난다던지 하는 순간이요.


그리고 저는 종종 슬픕니다. 어쩌다 겨우 20대 끝자락인데도 상실이 많았기 때문이려나요. 기르던 개 두 마리,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힘든 시절에 점을 쳐보려고도 했는데 무당은 저에게 굿을 하라더군요. 살면서 두 번의 수술을 했고 오른쪽 무릎에는 고등학교 등굣길에 넘어져 새겨진 흉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히 아로새겨진 상처들은 어느 형태로든 오늘의 저를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지나치게 파고든 어떤 생채기도 조금씩 옅어지긴 하더랍니다.


좋아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음식은 치즈가 듬뿍 올려진 피자와 맥주와 함께 먹는 초밥, 멋진 케이크와

아이스커피가 대표적이겠네요. 최근엔 고양이가 좋아졌습니다. 귀여운 코랑 말랑한 솜뭉치의 발. 계절은 큰맘 먹고 산 비싼 트렌치코트를 걸칠 수 있는 가을이 제일 좋고요.


하고 싶은 것들요? 그건 더 많습니다. 산속을 누비기 적당한 빈티지 suv를 타고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 캠핑을 떠나는 것. 조조캠핑님의 영향이 큽니다. 그리고 발리 우붓으로 명상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얼마 전 매거진B를 보니 사람들은 발리에서 치유를 경험한다고요. 그리고 언젠가는 가족들과 함께 오로라를 보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아, 궁금하지 않다구요?

이게 진짜 자기소개서인데요.

다시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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