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와 혼자 산지 10년이 되었다.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나는 종종 ’내 집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해왔던 것 같다. 거처는 6개월 마다 바뀌고 매 해 마다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다. 그건 호기심 많고 권태를 싫어했던 내 성향에 잘 들어 맞기도 했지만 동시에 안정이라는 가치와는 상충했다.
낯선 도시에 낯선 사람들. 나의 거주는 4인 1실 벙커침대 2층이었다가, 2인 1실 작은 원룸의 침대 한 쪽이었다가, 시간이 지나 겨우 1인으로 한 원룸을 차지했다. 집은 침대와 책상으로 꽉 찼고 간간히 옆 방 대화의 단어 몇 개가 선명히 들리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1인으로서 한 공간의 점유를 이뤄낸 것은 큰 발전이었다. 이후 두 해 정도 그 집에 살다 운 좋게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아직 줄곧 그곳에 살고 있다. 이것이 나의 10년 서울 생활의 역사다.
나는 종종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었다. 비와 바람을 막아줄 벽과 지붕을 빌릴 수 있게 되었어도 나는 집을 찾았다. 집은 어쩌면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때로는 강한 체 했던 볼품없는 나약함이라던지, 무모하게 기대했던 연약한 사랑이라던지, 의미 없는 어떤 이의 무례함 따위에서 나를 구제할 수 있는 곳. 다시 현관문을 열어 맞는 시끌벅적한 세상에서도 불행보다 행운에 기뻐할 단단함을 기를 수 있는, 회복의 공간을 나는 집이라 불렀나보다.
하지만 평 단위로 가격이 매겨지는 세상에서 마음껏 회복할 ’집‘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익숙한 곳에서 다시 낯선 곳으로 몸을 일으켜 동네를 걸었다. 때론 멀리, 때론 가까이. 마음을 뉘일 새로운 한 평을 찾기 위해 나는 카페에 갔다.
커피 한 잔과 가끔 사치스럽다면 케이크. 카페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나는 자주 혼자였지만 사람들의 대화소리 사이에서는 혼자인데 함께 같았다. 쟁반 하나의 크기 만큼의 자리에서 난 회고했고 회복했고 성찰했다.
커피 한 잔으로 맺어진 낯선 이들과의 미약한 연대로 위안하고 5천원으로 테이블 하나를 점유하는 것. 참으로 도시의 삶을 닮아 있는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가끔 내가 카페에 간다고 하면 지방에 살고 있는 엄마와 아빠는 ’집에도 커피가 있는데?‘라고 의아해하곤 했다.
오늘도 한 참을 걷다 집에서 꽤나 떨어진 동네의 카페에 왔다. 언제나 그랫듯 나는 지난 10년간 터득한 방식으로 이방인이 받아들여지는 이 시끌벅적한 공간에서 다시 씩씩하게 살아 낼 힘을 내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