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빨래> 세 번째 관람에 부쳐
빨래를 처음 본 것은 10년 전. 스무살이었던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연극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연극 과제로 뮤지컬 <빨래> 관람을 내어 준 것이 첫 만남이었다.
만 19년을 지방에서 살았던 나에게 서울의 의미는 도전과 설렘이었다. 부모님과 동생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장녀 출신으로서 무언가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푼 꿈을 안고 벅차게 시작한 서울 살이가 올해로 꼬박 10년 째가 되었다.
명료한 응원
서울 살이 0년차였던 스무 살의 나와, 서울 살이 10년차가 된 나 모두에게 <빨래>는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위로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니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힘든 일 모두 빨아버리고 다시 내일을 잘 살아보자는 메타포는 심플하고 명료하다. 가끔 단순함은 깊이가 없다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심어 둔 심오한 장치들 사이로 메시지를 해석하고 발견했을 때 그 의미가 극대화 되는 작품들도 있겠으나 뮤지컬 <빨래>는 그런 성질이 아니다. 아니, 그런 성질이어서는 안된다.
지치지 말고 힘을 내어 보자는, 어려움은 바람을 타고 흘러가버릴 것이란 응원은 복잡해서는 안된다. 이미 도시 청년들의 삶이 복잡해 빠졌으니까 말이다.
<빨래>의 메시지는 무대 위에서 생생하고 격동적으로 펼쳐지며 공연이 끝날 때 쯤 관객들에게 완벽히 전달된다. 덤덤한 말로써 듣는 것과 몸소 경험하는 것이 다르듯, 160분의 공연 관람 후에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나눠져 든든해진다.
서울 드림은 실재한다.
나영의 서사는 서울 사는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치열한 대학 입시를 견디고, 원했는지 떠밀렸을지 모르게 지방에서 서울로. 일을 하러, 돈을 벌러, 꿈을 펼치러 기회가 더 많다는 서울로. 가족을 떠나 홀로 서울로.
방에서 방으로 출퇴근하는 이 도시의 많은 원룸 생활 젊은이들에게 나영의 서사는 실재한다. 그래서 직접적이고 그래서 위로 받을 수 있다.
서울 살이 몇 해냐고 묻는 노래의 가사는 각자의 서울 살이로 채워질 수 있는 빈칸과도 같다. 번잡하게 살아가느라 남의 하소연 듣기를 버겁게 여기게 된 도시 생활인데, 나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듯하다. 내 서울 살이는 어땠냐면, 하고.
서른이 된 서울의 생활은 스물 보다는 안정을 찾았다. 4인실 기숙사 원룸에서 투 룸의 빌라로, 아르바이트로 월 70을 겨우 벌어내던 학생에서 여유로운 한 달 상활비를 마련라는 직장인으로. 불안과 역경을 거쳐 오늘은 더 단단해졌고 적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여전히 혼자사는 서울 생활은 고되다. 가끔 퇴근하고 열어 젖힌 문 안에 누군가 날 기다리고 있었으면, 하기도.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에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이 시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계산해보기도 한다.
마땅히 기댈 곳 없어 영화와 와인 한 잔으로 구멍을 기워내다가 오늘은 혼자 <빨래>를 찾아왔다. 쓸데 없는 생각들 빨아내고 다시 내일 출근이다.
서울살이 여러 해, 당신의 꿈 아직 그대론가요?
나의 꿈 닳아서 지워진지 오래
잃어버린 꿈 어디 어느 방에 두고 왔나요?
빨래처럼 흔들리다 떨어질 우리의 일상이지만
당신의 젖은 마음
빨랫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