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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sbook Jan 27. 2023

자극적인 비건이 되고 싶어

늦은 프롤로그

자극 (刺戟) 의 사전적 정의(출처: 네이버 사전)


1. 어떠한 작용을 주어 감각이나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게 함. 또는 그런 작용을 하는 사물.
2. 생체에 작용하여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일. 또는 그런 작용의 요인.
3. 유기체에 작용하여 반응을 일으킬 수 있거나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상(事象). 좁은 뜻으로는 유기체의 수용기(受容器)에 작용하는 물리적 에너지를 이른다.


블루투스 키보드와 휴대폰을 연결하여 글을 쓰는 지금 검지손가락 끝으로 ‘ㄷ’ 이 적힌 자판을 갖다대자 ’툭‘ 소리를 내면서 메모장 위로 ‘ㄷ’ 이 입력되었다. 양 손 끝으로 활자들을 열심히 투둑투둑 하니 단어가 만들어지고 단어들은 문장으로 이어지더니 이윽고 글 한 꼭지가 탄생한다. 토독거리며 글을 쓰다보니 문장을 벌써 5줄이나 썼다.


키보드의 투둑거리는 소리가 마치 슬레이트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소리 같았다. 아무리 작은 빗방울도 모이면 한 순간에 쏟아지는 폭우가 된다. 시야를 가리고 바닥을 덮는 것처럼 아무리 크고작은 자극들일지라도  켜켜이 모이다보면 삶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내가 비건이 된 ‘결정적’ 계기 따윈 없었다. 결정적이라면 엄청 커다란 자극이 내 뒷통수를 ‘빡!’ 세게 때리고 기절할 만큼의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는 것일진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런 계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보니 결정적 계기를 받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크고 작은 자극들이 쌓이다 터지는 순간이 있기도 한 것이다. 5살 용인 사슴농장에서 본 뿔이 잘린 사슴도, 케이지 안에서 강제로 착유되는 소 이야기,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호주 산불,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새, 코끼리 등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까지..


내가 비건이 되기까지 크고 작은 경험들이 내 삶에 축적되어가던 중, 축적된 삶에 불씨를 지피게 한 힘은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잎사귀 혼자서는 결코 불이 붙지 않는다. 건조한 잎 두개가 마찰을 일으켜 산불을 일으키듯 말이다. 지구연대기의 글모임,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도 모르게 삶이 비건을 향해 바뀌어 나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혼자서는 해낼 수 없던 것들을 사람들과의 연대로 가능했다.


이 이야기들을 차차 풀어내고 싶어서 먼지 묵은 브런치를 다시 펼쳤다. 홍은전 선생님은 <짐을 끄는 짐승들>의 추천글에서 이런 문장을 남기셨다.


‘어떤 앎은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지만 어떤 앎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방에 무너뜨리며 온다. ’


비건으로 지내겠다고 결심한 지 3개월 째. 비건은 뿌리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에서 받은 자극으로 스스로 자라기도 하면서 시들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몇번이고 거치다보면 연단이 되는 뿌리는 땅에 단단하게 박히고 그 뿌리 위로 건강한 생명체가 자라는 기반이 된다.


살면서 받은 어떤 자극은 고통스럽기도 하며 어떤 자극은 편견으로 응축된 사고를 와르르 무너뜨리곤 했다. 비건을 지향하면서 겪는 불편한 순간들과 기쁜 순간들을 종종 마주하곤 한다. 빈도는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비건으로 지내면서 겪는 자극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고 이어져오는지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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