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은 비싼 이데올로기죠.. 어째보면.”
지난주 일요일 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다. 한 멤버는
”내가 사는 곳은 비건 식당이 없을뿐더러 설령 비건 식당을 찾아갔어도 식당에서 파는 손바닥보다 작은 햄버거 가격이 너무 비싸서 놀랐다. “
그러자 모임에 참여한 한 분이 덧붙여 이런 말을 남겼다.
“장을 보더라도 열량을 보충하기까지 많은 소비가 필요하니… 비싼 이데올로기죠 어째보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비싼 이데올로기라는 말에 반발심이 생겨 무어라고 반박을 해야 할까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쳐 말하지 못해 아쉬웠다.
내가 생각하는 비건이란 기후 위기 시대에 적게 소비하고 더욱 존재하려는 삶의 자세라고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비건은 위계를 만들 수 없고 만들어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이다. 기후 위기에 경각심을 갖고 자연과 동물 나아가 소외된 존재들을 돌봄으로써 공존하기 위한 움직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건은 편견과 맞닥뜨리기 쉬운 영역이기도 하다.
서울시 비건 식당 메뉴 평균 가격이 청년 1인 가구의 평균 식비보다 약 3.8배 비싸서 (출처 쿠키뉴스 돈 없으면 못 하는 ‘비거니즘’… 선택지 없는 청년들 2021-11-15 [쿠키청년기자단]) 비건을 포기했다는 청년들의 기사를 접했다. 마치 비건이 금수저의 영역처럼 다뤄진 건 아닐까. 선입견이 강한 영역이라 생각했다.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111240201
사실 마트를 잘 가지 않아서 요즘 물가가 얼마 정도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으나 확실한 건 해마다 물가가 쑥쑥 오른다는 것. 일례로 진짬뽕 한 봉지(4~5개들이)가 이젠 7천 원 가까이 육박하는 시대에 임박했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편의점이나 할인마트에 가더라도 진짬뽕은 5천 원 비싸도 6천 원 안팎으로 구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라면뿐만 아니라 각종 과자, 두유, 과일, 채소도 포함이다. 왜 올랐느냐? 물어보신다면 ’ 기후 위기‘ 가 주원인이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차차 적어볼 예정이고 내용을 다루기엔 주제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어 생략한다..)
왜 비건은 비싸다고 생각할까? 수요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비건식당에서 한 끼를 먹을 때 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만약 1만 원으로 장을 본다면 파스타면, 적양배추, 느타리버섯, 파스타소스 만으로 한 끼를 든든히 먹을 수 있다.
같은 1만 원이 주어졌을 때 먹을 수 있는 요리
(좌) 직접 장을 보고 만든 파스타 약 1만 원 남짓 장을 보고 만들었다.
(우) 비건카페 널담에서 먹은 비건 흑임자 크림 크로와상 + 아메리카노 약 1.3만 원이 나왔다.
(그렇다고 삼시세끼 파스타를 만들어 먹을 순 없다. 조미료는 구비하되 마늘, 파, 버섯 등 종종 사용하는 재료만 필요할 때만 사면 초기비용은 많이 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적게 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렇게 장을 보더라도 외식하거나 비건 대체육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든든하다. 일례로 비욘드미트 소시지 약 230g 이 1.9만 원인데, 이는 미국산 부챗살 1킬로에 맞먹거나 혹은 비싸다. 품이 많이 들고 수요가 그만큼 없어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아서다.
하지만 비건도 개인의 식습관,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상대적인 비용차이가 날 뿐이지 논비건이 비건을 결심하고 장을 보았을 때 고기, 닭알, 소젖을 제외하고 장을 보면 비용은 훨씬 줄어든다.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공간기록 모임에서 만난 동향 멤버를 만났다. 그분 역시나 비건 지향인이었고 연구산악대(기후위기 이슈를 두고 논문을 읽고 스터디를 하거나 이야기 나누는 모임) 소속이셨다.
그는 모친의 고향 인천으로 이사를 왔고 지내고 있다고 들었다. 그 분과 제로웨이스트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시간이 되었다. 무엇을 먹을지 비건 식당을 찾다 보니 주변에 없었다. 있다한들 지하철을 두 번 정도 타고 또 걸어야지만 있는 곳이었다. 그분과 함께 태국요리를 먹기로 했다.
식당에서 키오스크를 보고 음식을 고르는데 그린 카레라는 메뉴가 보였다. 이미지(픽셀이 깨져 선명도가 흐릿했지만)만 보았을 때 녹색 카레 위 흰색 덩어리가 놓인 걸 보니 고기가 아닌 버섯이겠거니와 싶었는데-정확히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흰색 덩어리의 정체는 ‘닭고기’였다. 오랜만에 닭고기 질감을 씹다 보니 이상하게 고무지우개를 씹는 느낌이었다. 따끈한 카레 위 육수도 닭고기 베이스로 했겠구나 추측했다. 나는 버섯의 쫀득한 식감이 먹고 싶었는데..
서울만 하더라도 지역구마다 비건 음식점을 찾기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심지어 비건들의 특구가 정해질 정도로 망원, 이태원은 외국만큼은 아니지만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듯했다. 하지만 서울만 벗어나면 비건의 ’ 비‘ 자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300만 인구가 거주하는 인천광역시조차 비건식당을 손꼽을 만큼 적고 그나마 있다한들 카페 겸 베이커리에 국한된 경우가 많다.
외식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비건은 반강제(!) 요리 고수가 될 수밖에 없다. 감사하면서도 아쉬움이 혼재된 마음이다. 한 편으론 비건식당은 수도권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 걸까 싶었다.
비건 지향 대다수 사람들도 비건식당이 많이 늘어나길 바랄 터. 그러나 실상은 수요가 부족하면(돈이 안되면) 잠깐 있다가 사라지거나 혹은 공고히 자리 잡은 선입견과도 맞닥뜨려야 하니 마치 비건으로 사는 삶은 마치 난도가 매우 높은 퀘스트를 맞닥뜨리는 게임 캐릭터 같을 때가 있다.
함께 고민할 동료가 필요하다. 혼자서는 너무 부치고 먼지처럼 으스러진다. (고로 비건 파티원 구함. 같이 깨면 쾌감은 더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