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건 다 있는 듯 하면서도 없는 것도 많은.
우리가 사는 우붓은 뭔가 부적대면서도 평화로운 시골이다.
가끔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우리가 소위 아랫동네라고 부르는 Kuta에 내려가곤 한다.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대부분 발리의 번화가인 Sunset Road를 기점으로 주변 쇼핑몰 및 대형 슈퍼에서 볼일을 보는데,
우붓 시골에서는 못 보던 것들을 볼 때마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달라며 성화다.
'다음에 하자' 가 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갖고 싶은거와 하고 싶은걸 발견 하면 일단은 조르고 본다.
"안돼" 라고 이야기해도 포기하지 않고 조른다.
그런 모습이 귀엽고, 또 언제 오나 싶어서 져주고 만다.
그래도 도시에서 살던 아이들인데,
1년 반 만에 도시스러운 모든 것들이 신기한 아이들로 바뀌었다.
하긴 종은과 나도 우붓에 온 지 두 달만에 Sanur의 KFC에서 크리스피 치킨을 먹으며 감동했었지.
이번 아랫동네 나들이의 목적은 식재료 장보기, Zara에서 필요한 옷과 수영복 구매, 그리고 스케이트보드 용품 점에 들려 제이와 주오의 보호장비 구매 였다.
우붓에서는 냄새 안 나는 돼지고기를 구하기 힘들어, 돼지고기는 아랫동네에 있는 마트에 갈 때마다 잔뜩 사와 냉동실에 얼려놓고 먹는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떡볶이 떡도 팔고 있었다. 쇼핑카트에 쓸어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비싼 가격에 머뭇 거리며 겨우 3팩 밖에 못 집고 말았다. 그 외에도 우붓에서 구하기 힘든 삼치와 부추도 넉넉히 사왔다.
비록 내 돈을 쓰며 장을 봤지만,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받은 기분이었다.
장을 본 후 종은 옷이 다 헤져, Zara에서 옷을 살겸 굳이 Beach Walk 까지 왔다.
사실 Beach Walk 주변은 극정체 및 혼잡 구간이라 왠만하면 피한다.
근데 이건 또 뭐야, Zara의 상품 진열을 보고 좌절했다.
여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했는데, F/W 시즌에 따라 스웨터와 맨투맨 등 도저히 지금 발리에서는 입을 수 없는 옷들만 팔고 있었다.
F/W 시즌에 이 Zara 매장의 매출이 매우 궁금해졌다.
굳이 Zara에서 옷을 못 구할 거면 막히고 막히고 또 막히는 이 Beach Walk 까지 올 필요가 없었는데
괜한 헛걸음을 했다 싶었다.
하지만, 발리 생활이 뭐... 헛걸음의 연속이니깐...
그래도 여기까지 온 덕분에 아이들은
할로윈 장식들과 사진도 찍고, 동물자동차도 (조르고 또 졸라) 타고, 칙칙폭폭이라고 부르는 회전초밥 집에서 점심도 먹어 나들이 온 기분을 잔뜩 낼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3번째 목표였던 아이들의 보호장비를 사러 스케이트보드 샵에 들렸다.
제이가 스케이트보드를, 주오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손목, 팔꿈치, 무릎 보호장비를 구할려고 했지만 영 성과가 없었다. Sunset Road 에 있는 스케이트보드샵은 규모가 꽤 있어 혹시라도 제품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들린 거였는데, 이 곳에도 재고가 없었다.
있을 건 다 있는 듯 해도 없는 것도 많은 발리.
이 곳에 이렇게 살면서, 한국에서 필요한 물건을 손쉽게 주변 마트나 온라인쇼핑몰에서 구할 수 있었던게 얼마나 편리한 것 이었는지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지도.
그래도 집에 돌아와 아랫동네에서 공수해온 두툼한 삼겹살을 저녁으로 구어먹으며, 이날의 수확 결과물을 자축했다.
먹다보니 '아... 삼겹살을 몇 백 그람 더 사올걸...' 하는 후회가 몰려오는 건 매번 반복되는 루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