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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신 Aug 04. 2016

#4 <부산행> - 한국'형' 좀비 영화의 탄생인가?

그냥 한국 좀비 영화

본 글에는 <부산행>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봉 전부터 <부산행>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이었다. 한국에서 거의 첫 번째로 시도되는 좀비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돼지의 왕>, <사이비>에서 날카로운 사회비판적 시각을 보여준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기대는 컸다.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기사들도 기대를 높이는데 한몫했다. 그래서인지 <부산행>은 개봉하자마자 마치 영화 속 좀비 바이러스처럼 영화 극장가를 감염시키며 무지막지한 속도로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관객들의 호불호는 갈리는 편이지만 대체적으로 관객들, 그리고 전문가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필자도 얼마 전에 영화를 봤다. 솔직히 말해서 영화가 100% 재미없다고 할 수는 없다. 좀비 장르물의 특색에 맞게 2시간가량 영화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좀비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고, 또 좀비를 물리치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은 관객들에게 쾌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감독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 문제였을까? 영화 자체가 만족스럽다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그리고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1. 어디서 본 듯한, 뻔한 스토리.


<부산행>은 창의성이나 독창성이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전형적이고 진부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클리셰가 아닌 부분이 없다. 클리셰 자체가 장르물의 특징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용의 빈도가 너무 높다. 오프닝부터 재난영화의 클리셰의 동물의 변화(좀비로 변하는 고나리)로 시작한다. 좀비가 나타난 뒤에는 늘 그렇듯 생존을 위한 하나의 팀이 우연히 생성이 된다. 이 팀에는 항상 재난에 맞서 싸우는 남성 인물(공유, 마동석, 최우식), 꼭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아이, 노인, 임산부), 팀에 도움 안 되는 민폐 캐릭터(소희), 그리고 초반에는 불필요한 존재지만 나중에 중요 역할을 하는 인물(노숙자)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 팀의 가장 큰 적은 늘 그랬든 외부로는 좀비 그리고 내부로는 이기적인 인물(김의성)이다. 이렇게 초반부터 흩뿌려 놓는 클리셰 때문에 우리는 너무 쉽게 각 인물들의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

<얼드워 Z>  메인 포스터 - 포스터도 왠지 닮아 있다.

그리고 많은 측면에서 <부산행>은 <월드워 Z>를 모방했다고 생각될 만큼 닮아있다. 좀비의 메커니즘은 거의 똑같다. 좀비로 변할 때 관절이 꺾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과정, 눈이 어두워 청각적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점, 그리고 반응이 없을 땐 휴면기에 들어간다는 점과 같은 설정이 매우 흡사하다. 또한 헬리콥터에서 좀비들이 떨어지는 장면과 좀비들이 단체로 달려가며 떼거지로 겹쳐져 쏟아지는 장면의 연출도 매우 비슷하다. 심지어 가족에 소홀했지만 누구보다 딸을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석우)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전반적인 스토리 설정도 같다고 할 수 있다.



2. 매력 없이 평면적인 인물들.



기차 탑승자 이외 외부 생존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외부 다른 생존자들은 오직 전화기 너머에만 존재한다. 그만큼 영화는 오직 기차 안 사람들에게만 집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이 스포트라이트에도 전혀 살지 못한다. 관객들은 개연성 없는 어중간한 캐릭터들에 공감하기 힘들다. 모든 캐릭터들은 극을 위해 존재하는 요소에 불과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주인공 공유 캐릭터, 석우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없다. 또한 공유는 이기주의에서 다른 사람들을 아끼고 생각하게 되는 이타주의로 변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지만 변하는 계기가 (공유의 어색한 연기력이 문제일 수 있지만)이해는되지만 감정선 불친절하게 노출되어서 공유에게 공감되진 않는다. 가장 임팩트 강했던 마동석 캐릭터도 사실은 캐릭터가 아닌 마동석 자체에 열광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여성 캐릭터의 구성도 모두 의존성이 강한 인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한계가 있다. <부산행>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보호를 받는다. 연약한 아이고, 임산부고, 노인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항상 울고, “어떡해” 혹은 “구해줘”라는 말을 반복한다. 민폐스럽다. 그나마 정유미가 극 초반에 좀비들이 볼 수 없게 유리에 젖은 신문지를 붙이는 행동에서 주체성을 내보이긴 했다. 하지만 정유미도 결국 마동석의 보호 아래 존재한다. 모든 좀비는 남자들을 통해 해치워진다. 결국 영화는 내내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성 인물들을 내세우면서 모성애 신화를 재생산한다.



3. 아직은 부족한 연상호 감독의 실사 연출.


무엇보다 가장 실망스러웠고 아쉬웠던 부분은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서 너무 고전적이고 진부한 신파적 장치가 삽입됐다는 점이다. 사실 신파 자체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흔하게 사용되어 진부하긴 하지만 한국 문화 정서상 신파 자체가 잘 먹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부산행>에서는 신파가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이질적으로 사용되었다. 공유가 죽기 전 플래시백으로 딸의 탄생을 회상해내는 장면은 연출 방법과 함께 최루라는 목적의식이 분명히 들어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었기 때문에 거부감이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이 신파를 다루어 본 적이 없어 잘 다루지 못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된다.)


<부산행> 스틸컷 - 인간의 이기주의를 보여준 캐릭터


또한 연상호 감독의 장점인 사회비판적 문제의식은 <부산행>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상업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전작들에서와 같은 메시지의 강력한 전달은 없었다. 감독은 영화 속 다양한 장면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가 있다는 점은 명확히 하고 있다. ‘좀비’가 아닌 폭도로 규정하고, 재난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전하고 정부와 언론,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개인의 정보나 인터넷을 신뢰하는 시민들, 극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주의, 노숙자와 좀비의 대비를 통해 보이는 사회의 배척과 편견까지. 하지만 이 모든 메시지는 단면적으로 잠시 등장할 뿐 힘 있게 관객들에게 전달되진 못했다. (어쩌면 감독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을 수도)


<부산행> 현장 포토 - 몸을 던져 연기하는 좀비 엑스트라들!


물론 단점만큼 장점도 존재한다. 연출적 측면에서는 한정된 공간, 기차를 잘 활용했고 빠른 속도감으로 계속해서 긴장감을 유지하게 했다. 액션의 스케일도 박진감 넘치게 연출했다. 특히 처음으로 ‘좀비’를 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좀비의 디테일(행동, 분장, 연기)이 전혀 어색함 없었기 때문이다. (공유보다 좀비 엑스트라가 연기를 더 잘했다) 그렇다고 <부산행>이 한국‘형’ 좀비 영화의 타이틀을 거머쥐기엔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든 영화라고 해서 한국‘형’이 될 수 없다. <부산행> 그냥 한국 좀비 영화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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