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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Aug 30. 2024

우리는 가끔 전지전능한 기획자가 된다. 그리고 망한다.

서비스 기획 이야기

기획자는 세상에 무엇을 만들지 정한다. 직접 만들지 않아도 어떤 모양으로 태어날지 정한다. 어찌 보면 전지전능한 신처럼 보인다. 없던 것을 창조해 내기에. 하지만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위험하다. 사실 신도 아니고 신이어도 안되기 때문이다. 


프로덕트의 최종 결정은 기획자가 한다. 디자이너들이, 개발자들이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해도 ‘못해요’ 라거나 ‘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라고 하기 어렵다. 기획자 타이틀이 결정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맞다고 우겨버리면 수가 없다. 회사에서 분업이란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아니면 각 부서와 직책은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실력이 있든 없든, 지금 눈이 멀었든 안 멀었든, 그 부서 이름이 전문성을 말한다.  




기획자의 전문성이 필요했던 내 첫 프로젝트는 서비스라고 부르기도 부끄럽다. 투입된 리소스 규모는 회사돈이어서 가능했던 부끄러워서는 안 되는 규모였다. 물론 당시는 모바일 인터넷 세상 대개척시대였다. 마치 빈 땅에 깃발을 꽂으면 모두 내 것이 될 것 같은. 그래서 하나의 기능, 하나의 서비스도 덩치를 키워 한 걸음에 더 큰 땅을 차지하려 했다. 


사실 이 판을 땅처럼 보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긴 하다. 이 땅까지 찾아와서 서비스를 써줄 사람은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원하는 기능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단순한 기능이었다.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큰 화면으로 쉽게 보고 싶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 기능을 인질 삼아 다른 기능들을 덕지덕지 붙였다. 보기만 해도 되었던 파일은 이동이 가능해졌고, 심지어는 집에 있는 컴퓨터의 파일을 다른 곳에 있는 태블릿으로도 이동할 수 있었다. 그 파일들을 심지어 SNS에 바로 업로드도 할 수 있었다. 파일을 옮길 수 있게 되니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그래서 새로운 컨셉은 이렇게 변했다.


“어디에 있든 어느 기기에 있든 컨텐츠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요.”


좋아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원래 사용자가 하고 싶었던 것은 이게 아니었다는 거다. 물론 마법 같은 위 기능들을 ‘너무 좋은데?’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수는 소수였고, 그 소수마저 자주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만 쓸 수 있으면 되었고, 
사람들은 ‘어느 기기에 있든’이 아닌 ‘스마트폰과 내 앞 TV’ 면 되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멀리 오게 되었을까?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 제공할 수 있는 기능도 다양하다는 것을 기획팀은 알았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기능을 주도록 덩치를 키우려 했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으로 파일을 ‘이동’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전지전능한 어디에서도 가능한 파일 ‘이동’은 많은 변수들과 케이스를 만들어냈다. 나는 그 많은 케이스들을 수십 장에 걸쳐 정리했고 또 뿌듯했다. 핵심기능을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요?’라는 질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중요하긴 했다. 적어도 우리 스스로에게는. 사용자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을 뿐. 결국 수십 명의 개발자들과 서버 비용이 들어갔고, 디자인 또한 이를 메인으로 설계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 또는 기능인데, 만들다 보면 신기하게도 애착이 간다. 몇 주를 고민해서 정리했고, 수십 명이 함께 만들어준 기능이다. 얼마나 소중한가. 우리는 그런 애착을 가지고 세상에 내놓았다. 결과는 지금 보면 너무도 당연하지만 그때는 이해가 어려웠다. 애착을 가진 건 우리뿐이었고, 사람들은 원하는 기능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 후 몇 달은 이 대답을 얼마나 빨리 해주는지가 내 역할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기획을 했던 부서장들은 떠나고 내가 실무 책임자가 되었다. 주니어였던 나는 그때까지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파일을 마법같이 옮기는 게 핵심이라고, 전해져내려 오는 그것이 맞다 굳게 믿었다. 가끔 파일을 잘 옮겼다는 후기를 보면 ‘그래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니까.’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내가 다른 프로젝트로 옮기고 얼마 후, 회사의 자원은 조금씩 더 낭비되다가 그 프로젝트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기획자들은 전지전능한 순간을 꿈꾼다.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면 더 잘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평소에는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하지만 이 상황보다 더 최악은 기획자가 전지전능함에 취해 뭘 만들고 있는지 제대로 못 보는 것이다. 내가 뭐든지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뭐든지 사람들이 사주는 것은 아니다. 또 내가 열심히 만들었다고 사람들이 사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뭘 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내가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필요한 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내 맘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획자가 아니다. 


필요한 건 사람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슈퍼맨이자, 앞에 막고 있는 벽을 뚫어주는 아이언맨이자, 날아오는 핵폭탄을 들고 바다로 날아갈 배트맨인 기획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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