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앉는 자리에 다시 앉으며
지금 자리로 옮기기 싫었다.
오래 봐둔 창가자리 주인이 비어 자리를 옮긴 지 2달도 되지 않았다. 사무실은 교통이 안 좋은 대신 산이 멀지 않아, 능선과 그 위로 서있는 나무들이 만든 선의 색과 두께를 계절마다 볼 수 있다. 마음이든 머리든 잠시 내려두고 싶을 때, 그 선들을 가만히 보면 모니터와 그 뒤 사람들을 다시 마주할 힘이 생겼다. 누군가는 기미 걱정에 창가가 싫다고 했던 것 같은데, 햇살은 1년 내내 선선한 공간에 유일한 자연적 따스함이었다. 많은 컴퓨터들이 뿜어내는 온기는 따스하기보다는 따가웠으니.
지금 자리는 서로 등을 마주하는 통로 간격이 매우 좁았다. 줄마다 왜인지 그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데, 특히나 지금 자리는 의자를 뒤로 빼면 말 몇 마디 안 해본 까마득한 후배와 부딧칠 것만 같았다. 위치는 화장실 바로 앞이라 앉은 채 부서원 모두의 안부를 보려면 볼 수 있었고, 간식함도 근처에 있어 오가는 사람들 따라 달달한 간식을 먹지 않으려면 참을성이 필요했다. 4명이 앉아있는 우리 구역은 나를 빼고는 다들 물건들이 가득했는데, 집에 있는 내 책상 옆 서랍장 안 짐을 다 들고 온다고 해도 그만큼 자리를 채울 자신은 없었다.
내 자리는 단출했다. 컴퓨터와 딱 필요한 코드 두 개, 물컵과 펜을 감추고 있는 수첩 하나, 고용량 비타민이 전부였다. 언제든지 여기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이 해두고 싶었다.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지만, 아버지처럼 한 회사에 우직히 있는 나에게 경각심을 주고 싶었을까. 떠나려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는 못했다. 이 길을 그대로 갔을 때의 그 종착지는 도착하고 싶지 않은데, 코로나나 병가처럼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변명들이 많았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나아진 삶을 보여드리고 싶고, 아직 늦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자리라도 곧 떠날 것처럼 두었다.
옮긴 자리 옆에는 나보다 더 커피를 사랑하는 후배가 앉았는데, 커피에 대한 진심이 통했는지 집에 있는 도구들을 가져와 커피를 내려마시는 법을 하나하나 알려주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내가 만든 커피를 마신다는 것에 만족하던 나였는데, 하나하나 배워가며 하루에 한잔은 정성 들여 커피를 자리에서 내려 마시는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점심 먹고 출근하듯 들르던 카페 커피보다 내가 내린 커피가 더 맛있어지기 시작했다. 이때쯤부터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다. 좁고 답답하기만 했던 자리의 기분이.
사람들은 커피 향을 맡고 한 두 명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1인분을 내리나 2인분을 내리나 드는 수고는 다르지 않기에, 나한잔 마실 커피 대신 후배와 둘이서 2인분 3인분씩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좁은 통로에 두세 명씩 앉을자리가 필요했고, 그 좁은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 몇 개를 사람들이 가져다 두었다. 누군가는 커피와 같이 먹으면 좋을 간식들을 챙겨 오고, 그 간식들을 담기 위한 접시를 가져오고, 나눌 칼과 집게를 또 다른 누가 가져왔다. 점심시간에는 전기를 아끼고자 조명이 꺼지는데, 커피 테이블을 위한 조명색 스탠드도 생겼다. 누군가는 조그마한 화분을 받았다며, 스탠드 아래에 놓았다.
내 책상 위도 마찬가지였다. 아팠음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불량한 식단과 스트레스로 괜히 무서워질 때면 입안에 털어 넣는 고용량 비타민 옆으로 동료들이 휴가나 출장에서 가져온 조그마한 선물들이 늘어갔다. 립밤과 핸드크림, 귀여운 간식 집게, 인도에서 온 코막힘을 뚫어주는 허브도 생겼다. 10년째 쓰던 컵은 도예를 좋아하는 후배가 선물해 준 돈주고도 못 살 컵으로 바뀌었고, 기회마다 동료들과 찍었던 사진들은 붙을 곳이 없어 선물들 옆에 쌓였다. 몇 년 전 함께 일한 후배는 양말 선물을 그 옆에 두고 갔다. 1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일에 쓰이는 물건보다 그렇지 않은 물건이 늘어났다.
일을 할수록
그 의미가 그렇게 큰지 잘 모르겠다.
윗사람은 때때로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말한다. 하지만 세상을 우리가 바꾸는 것보다는 바뀌는 세상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하더라도 조연도 아닌 이름 없는 엑스트라 몇 정도일 것만 같다. 그것도 세 자리 숫자에 뒷순번 정도나 될까. 내가 열심히 일해서 만들어내는 영향보다 어디에서 사고를 치는 게 더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은 꽤 합리적이다.
엑스트라 372번이 꼭 나여야 할 필요도 없다. 정말 아무나 나를 대신한다면 당장은 차이가 있겠지만, 대세에 지장은 없달까. 괜히 정초부터 더 삐딱해져 본다면 이제 인간 1명이 새로 만들어내는 가치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다. 주연 몇 빼고는 다 엑스트라 같다. 이미 세상에 많은 것들은 존재하고 있어 더 만들어낼 가치도 적은데, 인간은 기계보다 저렴해서 쓰일 뿐 생산성이 좋지도 못한 것 같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AI를 공부하고 1인 회사 사업을 하는 것이 시대에 맞는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런 선택은 의지의 부족인지, 두려워서인지, 변명이 많아서인지, 내 답지에서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내 삶을 산다면 하고 싶었던 것이 정말 무엇이었을까 고민하던 시절도 매일매일 쌓이고 없어져가는 일들에 지워져 갔다.
나는 지금 여기 왜 앉아있을까?
여러 이유들을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옆에 와서 함께 수다 떨었던 시간들, 다방면으로 함께 욕을 하며 마음을 풀던 시간들, 정말 어려운 문제를 함께 테이블에 앉아 고민하던 시간들, 옆자리 후배와 야근하며 커피 내려마신 시간, 서로 힘든 개인사를 털어놓던 시간들, 떠난다고 글썽이던 후배의 모습까지. 회사가 바쁘고 힘들고 나쁘면 사람들이라도 같이 나쁘지. 왜 그 안에 있는 세 자릿수 조연들은 하나같이 성격들이 좋은 걸까. 그래서 다들 여기 남아있는 걸까.
지난주 친한 동료 몇몇은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새로 들어온 사람도 있어 자리들을 조정하는데, 내 자리는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 자리에 앉아 있을지 모르겠다. 회사가 늘 그렇듯 조연을 위한 고정자리는 없다는 것처럼 갑자기 옮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 까지는 지금처럼 계속 따스했으면 한다.
그리고 혹시 정말 혹시라도 이 가벼운 짐을 다 정리해서 떠나가더라도 따스한 사람들과 함께했으면 한다. 어차피 일이고 회사란 게 신나고 즐거울 수는 없을 테니.
줄 세우고 비교하는 시스템이 근간이라 서로 생채기를 내는 이 회사에서,
이 정도면 내 자리는 많이 따뜻했던 것 같다.
일을 했고, 덜하기도 했지만, 또 많이 하기도 했던 25년을 뒤늦게 정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