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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 Oct 27. 2018

생애 첫 상가계약을 했다

성북구 동선동의 작은 책방이야기<1>

오늘, 태어나 처음 상가 계약이란 걸 했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부동산들을 돌아다녔던가!

얼마나 많은 부동산에서 "그런 가격은 이 동네에 없어요."라는 핀잔을 들었던가!


계약을 마치고 나니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아직 공간을 열기도 전에 이렇게 말하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자리를 찾고 부동산 계약을 하기까지의 과정도 쉽지가 않았다. 가게를 열고 싶다고 해서 뚝닥뚝닥 되는 게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물론 돈이 많으면 더 쉽고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겠다.)





대학 졸업 후 내 인생은 '취직-퇴직-여행'의 코스를 두 번 반복했다. 정신차려보니 서른 하나가 됐다. 다시 취직을 할 수도 있었지만, (불안함에 거의 할 뻔 하기도 했지만) 역시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회사 체질이 아닌 것 같아서다. 대신 그와 함께 늘 이야기해왔던 책방을 열기로 했다.


그와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책방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떠나면 꼭 그 지역의 책방을 찾곤 했다. 분기점이 된 건 경주였다.


두 번째 취직을 한 후 추석연휴를 이용해 경주에 갔는데, 거기서 중고책방을 운영하는 20대 젊은 부부를 만났다. 얼굴에 '난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써있는, 서로 닮은 부부였다. 막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책방을 못 하고 있던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였구나!'


그들의 책방은 보증금이 100만원, 월세가 30만원이었다. 경주의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 같은 곳이야 훨씬 비싸지만, 부부의 책방도 제법 괜찮은 위치였다. 서울이든 경주든 그런 가격이 있을 수 있다곤 생각도 못 했기에 적잖이 놀랐다. 동시에, 지금 책방을 하지 못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하지 않고 있을 뿐이란 걸 알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용기와 결단이었다.


그날, 경주의 어느 카페에서 다시 한 번 퇴사를 결정했다. 더이상 미루지 말고 책방을 열기로 작당을 했다. 책방을 열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할테니 먼저 여행을 다녀오자는 비논리적인 계획도 세웠다. 그래서 동유럽에 다녀왔고, 줄어든 잔고에 떨며 월세가 싼 상가를 찾아다녔다.



저렴하지만 유동인구가 너무 없던 상가



꿈의 한옥!



입구도 이렇게나 예뻤지만, 영업허가가 나지 않는 곳이라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여긴 너무 좁고



여긴 내부에 화장실이 있다는 장점 대신 주변이 휑하다 못해 스산했다.



강릉에서 본 한옥상가. 서울만큼 비싼 월세가 부담이었다. 이후로도 부동산 투어는 지루하리만치 계속됐다.



집에서 대학을 다니고, 회사도 집에서 30분 거리였던 나로썬 부동산에 갈 일이 없었다. 창업을 해본 적도 없으니 부동산은 한마디로 미지의 세계였다. 어색하게 부동산을 방문해 상가를 찾는다고 하면 꼭 "어떤 거 하시려고요?"라고 먼저 물었다. "책방이요." 방글방글 웃으며 말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그게 되겠냐는 거다. 연배가 있으신 분일수록 "그런 건 해도 안 된다"고 확고히 말했다. 거기에 원하는 가격대까지 얘기하면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는 "사업할 스타일이 아니신 것 같은데..."라고 했고 누군가는 "장사해서 살아남으려면 악마가 돼야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꼭 악마가 돼야 하는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삶을 던져 실험을 해보면 알게 되겠지.


어쨌거나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서울에서 성북동, 서촌, 북촌, 합정은 물론이고 서울대 입구, 목동, 신당, 제기동, 왕십리, 용산까지 샅샅이 훑다가, 강릉까지 두어번 답사를 다녀온 뒤 계약한 상가가 성신여대와 고려대 사이, 동선동에 있다. "그 가격은 불가능하다"는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발로 뛰니 역시 있었다.


남은 준비를 잘 해서 우리들의 책방을 열어야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슴 설레는 매일을 보내야지.


그런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상가 계약 후 치맥과 함께 외쳤다.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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