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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 Nov 04. 2018

모두가 하지 말라는 책방

성북구 동선동의 작은 책방이야기<2>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출판계에서 일한다. 동네책방에 관한 기획을 진행한 적도 있어서, 책방 사정에 밝은 편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책방을 하겠다고 하니 그 친구는 말했다.

"책방으론 절대 돈 못 벌어! 나도 예전엔 관심 있었는데, 잘 나가는 책방도 겨우 월세 내는 거 보고 마음 접었어."

늘 긍정적이고 뭐든 응원해주는 친구가 어쩐 일인지 책방 창업이라는 계획에는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 친구 뿐만이 아니었다. 책방을 하겠다는 계획이 가까운 관계부터 시작해 멀리까지 퍼져나갈수록, 나를 둘러싼 걱정의 크기도 비례해 커지는 듯했다. '그게 돈이 되냐', '요즘 누가 책을 사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안 읽어'. 심지어 책방을 하는 사람까지도 책방 창업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럴만도 했다.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에 가면 눈치보지 않고 수많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면 10% 할인도 받고 적립금에 굿즈까지 챙겨준다. 그러니 동네책방을 하겠다는 건, 기름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실제로 많은 책방들이 더이상 버티기를 포기하고 문을 닫았다.


자신감이 출중하고 대찬 사람들을 보면 남들이 뭐라하건 자기 계획을 밀어부친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류와는 거리가 있었다. 귀도 얇고 소심해서 잔 걱정도 많은, 그런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두 말 할 필요없이 혼란했다. 지금 책방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회의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더욱 아찔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방으로는 월세 내기도 빠듯하니 때려치우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신 '어디서 수익을 내야할까?'라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런 와중에도 꾸준히 가게 자리를 보러 다녔다.


상가에는 권리금이라는 게 있었다. 권리금은 시설 양도나, 목 좋은 가게의 바닥에 붙어있는 돈인데, 위치에 따라 금액이 천차만별이다. 초기자본이 많지 않은 우리는 당연히 권리금이 없는 상가를 골라야했다. 그런데 전국에 있는 상가 중 70%는 권리금이 붙어 있다. 자연스럽게 선택권이 30%로 좁혀졌다. 거기에 10평 내외일 것, 월세가 60만원을 넘지 않을 것, 1층일 것 등의 조건을 추가하고, 유동인구가 너무 없는 곳 등을 제외하면 적당한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매물은 극히 일부였기에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의 온갖 동네를 다니고, 강릉까지 알아보기에 이르렀다.


해질 무렵 강릉의 바닷가

한 번은 네이버 부동산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인 상가가 매물로 나왔다. 평수는 10평이 안 됐지만 위치가 북촌이었다. 반신반의하며 전화를 해보니 심지어 한옥이란다. 신축 한옥이라서 권리금이 없다고 했다. '이런 귀한 매물이 나에게?'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당장 북촌으로 향했다. 현장에서 본 상가는 제법 괜찮았다. 생각보다 내부가 좁고 창이 없는 게 단점이긴 했지만, 위치가 너무나 좋았다. 페인트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가 앞에서 들뜬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부동산 소장님이 다가왔다. 하나 더 보여줄 매물이 있는데, 역시 한옥이고 심지어 작은 마당도 있다는 게 아닌가! 밤이 됐으니 내일 한 번 더 올 수 있냐고 묻기에 무조건 오케이를 외쳤다.


다음날 본 자리는 정말로 작은 마당이 있는 한옥이었다. 들어가는 문까지 작고 아담해 옛 정취가 묻어났다. 그곳은 전날 본 공간보다 훨씬 넓었다. 한쪽에선 책을 보고, 한쪽에선 커피를 마시고, 한쪽에선 모임을 해도 될 법했다. 주인분은 조각가였는데 70만원으로 알고 있던 월세가 50만원이라고 정정해주었다. 생각지 못한 가격에, 생각지 못한 자리를 보게 되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바뀔 공간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  


입구도 예뻤던 한옥

그러나 그 행복은 금방 좌절됐다. 구청에 확인해보니 부동산에서 보여준 매물은 용도가 주택이었다. 음료는 커녕 책도 팔 수 없는 자리였던거다. 그나마 전통공방이나 어린이집 등은 할 수 있었는데, 책방은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보니 전날 본 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물마다 창업할 수 있는 업종이 정해져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특히 북촌은 지구단위계획이 여타 지역보다 더 까다롭다고 했다. 마당이 있는 한옥을 본 순간 벌써 머릿 속으로 책방을 다 차렸는데, 용도 문제로 좌절되니 허탈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대고 부동산에서는 "일단 사무실이나 통신판매업으로 신고를 해놓고 책방이든 뭐든 영업을 하면 된다"고 했다. 다들 그렇게 한다나. 겁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은근한 힐난에 더이상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책방 창업은 약간의 돈과 해보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자리 찾기부터 삐걱거리니 답답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뾰족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하지 말라는 책방을 하겠다고 해서 그런걸까. 제대로 진행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택도 없는 월세로 택도 없는 동네에 가서 기웃거리니 뭐가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점점 지쳐갈 때쯤, 성북천 근처의 부동산들을 돌아다녔다. 역시나 조건에 맞는 매물은 많지 않았다. 밤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반쯤 포기 상태로 어느 산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름하여 타운 부동산! 그곳에서 드디어 기다리던 상가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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