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동선동의 작은 책방이야기<3>
직장인이었을 때의 나에게는 이른바 루틴이라는 게 있었다. 일주일을 기준으로 매일 엇비슷하게 해야할 일들이 정해져 있었다. 반면 회사 밖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매일 벌어진다. 대규모 농장에서 작물 경작의 일부를 담당하다가, 비로소 나의 작은 토지를 경작하는 느낌이랄까. 그 작은 토지에서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작지만 사소한 기쁨을 만난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들어간 부동산에서는 창이 넓은 상가를 소개해줬다. 쇼핑몰을 하는 분이 사무실로 쓰다가,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내놓은 자리였다.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일사천리로 가계약, 계약을 마쳤다. 소심하고 신중한 우리의 성격을 놓고 봤을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빠른 결정에는 시원한 전면 창과 옆면 창이 한몫 했다. 볕이 잘 드는 가게라면 누구든 아늑할 거라는 상상이 신중함을 앞질렀다. 그곳은 그와 내가 다닌 대학이 있는 동네기도 했다. 딱 그 중간에서 시작하는 책방이라니. 운명인가 싶기도 했다.
북촌에서의 뼈아픈 경험 덕에, 사업 허가가 가능한지 여부까지 꼼꼼히 확인한 뒤 계약을 마쳤다. 오래 전부터 마음만 먹어왔던 일을 벌여보는 첫 한 발이었다. 어쩌면 다르게 살아보려는 몸부림의 시작.
잔금을 치르고 열쇠를 넘겨받기까지는 보름 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동안 차근차근 나머지 준비들을 해야지 마음을 먹었다. 그 일환으로 계약을 마친 뒤, 동선동에서 가까운 창동에 갔다. 언제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눈여겨보았던 책방이 그곳에 있었다.
책방은 '이런 데에 책방이 있나?' 싶은 곳에 있었다. 타이어 가게가 있는 건물의 2층에 파란 대문이 보였다. 문을 열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노란 불빛이 따뜻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릴 반겨준 분은 세 명의 책방지기 중 한 분이었다. 차 한 잔과 함께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살가웠다. 책방 주인들은 어쩜 이렇게 선한 얼굴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먼저 이런저런 말을 걸어와서일까. 용기를 냈다.
"저, 실은 저희도 책방을 준비하고 있어요."
책방주인들은 다짜고짜 이렇게 말 걸어오는 손님들을 반기지 않는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건, 그 책방의 창업기를 브런치에서 보았고, 글에는 책방을 준비하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봐도 된다고 밝혀두었고, 결정적으로 우리를 맞아준 책방지기님이 너무나 친절해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응원받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주 앉아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도도'라는 닉네임을 가진 책방지기님은 우리가 둘 다 직장을 그만 두었다는 얘기에 안 된다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책으로는 수익이 신통치 않으니 다들 투잡을 한다고 했다. 책방이 수익적인 측면에선 어려움이 많다는 걸 익히 들어왔기에 놀랍진 않았다. 다만 고마울 뿐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써주는 것이 당연하지만은 않은 시대이니까, 더욱 고마웠다.
그녀는 책방에서 잘 나가는 독립출판물과 작가들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몇 가지 조언에 덧붙여 입고요청을 하는 방법까지 일러주었다. 세상에 이런 천사가 있나 싶었다. 그 때 얻은 조언 중 하나는 '꼭 음료를 팔아라'였다. 책만으로는 월세 내기도 빠듯하기 때문인데, 안 그래도 그가 바리스타 자격을 갖고 있어서 커피와 차를 팔 계획이었다.
이 경우에는 휴게음식점 또는 일반음식점으로 영업신고를 해야한다.(술을 판매할 계획이라면 일반음식점으로, 아니면 휴게음식점으로 하면 된다.) 책만 판매할 거라면 세무서에서 바로 사업자등록을 하면 되지만, 음료를 팔려면 조금 더 복잡하다. 보건소에서 보건증도 받아야 하고, 온라인 위생교육도 들어야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보건증, 위생교육 수료증, 임대차계약서 등을 들고 보건소 위생과로 가서 영업 신고를 해야한다.
모든 준비가 끝난 날, 신나게 성북구 보건소로 달려갔다. 가게 이름을 적는 자리에 떨리는 손으로 글자를 적고, 주소도 써넣었다. 우리 책방은 동선동 2가 222번지라서 외우기도 쉽다.(도로명 주소는 이만큼 쉽지 않아 아직 외우지 못함...) 나머지 항목들을 적어넣은 뒤 서류를 건넸다. 보건소 직원이 가져왔냐고 묻는 서류를 하나씩 꺼낼 때마다 우린 모든 준비가 됐다는 뿌듯함까지 밀려왔는데, 역시 세상만사는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현실에도 영화처럼 반전이 있었다.
컴퓨터로 무언가를 찾아보고 온 보건소 직원은 말했다.
"여기 직전에 사무실이었다고 하셨죠? 그 전에 식당 하셨던 분이 아직까지 폐업신고를 안 하셨어요. 그 분이 폐업신고를 하셔야 영업신고를 하실 수 있어요."
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이제 우리는 3년 전 같은 자리에서 음식점을 하셨던 사장님을 찾아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