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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 Dec 06. 2018

창업 초보의 비효율: 모든 일은 두 번씩

성북구 동선동의 작은 책방이야기<4>


나는 스스로를 '손이 빠르다'거나, '매사 효율적'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업무에서만큼은 비효율적인 걸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다.

책방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것은, 나는 지독히도 비효율적이고 느리다는 점이다. 세상에! 모든 일을 두번씩 한다. 일의 순서는 뒤죽박죽이고 이 일과 저 일이 엉켜 효율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입사 첫 날의 덜렁거리는 신입사원이 된 것 같다.


"이전에 음식점으로 영업하신 분이 아직 폐업신고를 안 하셨어요. 그 분이 폐업신고를 하셔야 선생님들이 새롭게 영업 신고를 하실 수 있습니다."

책방에서 커피를 팔기 위해 음식점 영업 신고를 하러 간 날, 보건소 담당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폐업신고를 안 했다니? 거기는 음식점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계약한 상가는 3개월 밖에 안 된 사무실이었고,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분식집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같은 자리에 두 가지 음식점의 영업허가가 날 수 없기 때문에, 이전 영업장에서 먼저 폐업 신고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


이런 문제가 생길까봐 계약을 하기 전에 확인을 한다고 했건만, 창업 초보자는 역시 완벽하지 못했다. 계약 전에 미리 확인한 내용은 그 상가에서 책 판매와 음료 판매가 가능한지, 즉 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였다. 책 판매(소매업)는 가능해도 음료 판매(음식점)는 불가능한 건물일 수도 있고, 지구단위계획에서 규제가 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구청에서는 두 사업 모두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안심하고 계약을 진행했다. 이전 영업장이 폐업신고를 했는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결국 처음 보건소를 찾아간 날 영업 신고를 하지 못했다. 떼쓴다고 될 일도 아니니 소득없이 되돌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곧장 이름 모를 음식점 사장님을 찾아나섰다. 다행히 부동산과 집주인 분께 물어 연락처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부동산 소장님이 먼저 통화를 해보니, 세무서에는 폐업신고를 했는데 보건소에도 해야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고 했다. 2~3일 내로 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 마음이 불편해진 건 일주일지났을 무렵이었다. 그 사이 바닥도 뜯고 페인트도 칠했지만 여전히 폐업신고는 돼 있지 않았다. 설상가상 전화 연결도 되지 않았다. 문자를 남겼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짝사랑 하는 소년소녀의 애타는 마음이 이런 것인가.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집주인이 직접 보건소에 방문해 '직권 폐업 신고'라는 걸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집주인이 직권폐업을 신청할 경우 최소20일 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 월세를 내는 소상공인에게 20일은 긴 시간이었다. 하루하루가 아쉬운 법인데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서점(소매업)으로 사업자를 내고 오픈을 한 뒤, 이후에 음식점 업종을 추가하기로 했다.


집주인 어머님과 함께 보건소를 다시 찾았다. 두번째 방문이었고, 또다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직권폐업이 접수되면 보건소에서 직접 해당 상가로 실사를 나오는데, 가게가 말 그대로 텅 비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천장이나 벽에 석고보드가 설치돼 있어도 안 되고 에어컨이 달려 있어도 안 된단다. 우리 가게는 이전에 사무실로 쓰시던 분이 석고보드를 덧대고 벽걸이 에어컨도 달아놓았는데, 그런 것들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다. 멀쩡한 에어컨을 떼고 실사를 받은 뒤 다시 설치하란 말인가. 혼란한 정신을 부여잡고 있을 때, 직원분이 말했다.

"원래는 그렇게 해야하는데요. 세무서에는 폐업신고가 돼 있다고 하니까 실사는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처리되면 연락드릴게요."

그 날 보건소에서 심장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이제 꼼짝없이 20일을 기다려야했다. 계획했던 대로 서점 사업자를 먼저 내기 위해 세무서를 찾았다. 세무서 역시 두번째 방문이었다. 처음 세무서를 찾았을 때, 담당 직원은 "서점과 음식점 두 가지로 사업자를 내신다는 거죠? 보건소에 영업신고는 하고 오신거죠?"라고 말했다. 당연히 아니었다. 그러니까 창업 초보인 우리는

1. 세무서에 서점과 음식점으로 사업자를 내러 갔다가

2. 보건소에 영업신고를 먼저 해야 한다고 해서 보건소로 갔는데

3. 이전 가게의 폐업신고가 안 돼 있다고 해서 돌아온 후

4. 직권폐업을 신청하기 위해 2차 보건소 방문을 단행했고

5. "커피는 나중에, 책부터 팔자!"며 서점 사업자를 내러 2차 세무서 방문을 실행한 것이다.


이렇게 세무서와 보건소를 두 번씩 방문했을 때, 마침내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연락조차 되지 않던 의문의 그 사장님이 갑작스레 폐업신고를 했다는, 기쁜(동시에 이럴거면서 왜? 라는 생각이 드는) 소식이었다. 마침내 3차 보건소 방문이 이뤄졌다. 드디어 영업신고를 했다. 지금에 와 소회를 밝히자면 그렇다. 아아, 음식점 영업신고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3차 보건소 방문 뒤 할 일은 3차 세무서 방문이었다. 영업신고를 했으니 사업자 등록을 해야 했다. 3차 방문은 순조롭게 해결됐다. 동선동 2가 222번지에서 합법적으로 책과 음료를 팔기위한 대장정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직장생활만 해 본 사람이 초보 창업자가 되니 비효율의 끝을 달리는 나날들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답답하다며 혀를 찰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답답했으니까.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었나, 새삼 나를 되돌아 봤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면 나를 더 잘 알게 된다고 하는데, 창업을 하면 완전히 새롭고 낯선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 모습이 싫을 때도 많다. 그래도 결국 웃는 건,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고 있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안 해봤으면 끝까지 몰랐을 일들이 그와 내 안에서 구불구불한 나이테를 그려가고 있다. 어린 묘목이 비바람을 견디고 큰 나무가 되듯, 우리 역시 부딪히고 깨지며 배우는 중이다. 아마 당분간은 한 가지 일을 두 번씩 하는 날들이 계속될 것 같다. 그때마다 셀프 나무람과 셀프 반성이 반복되겠지.


뭐든 두 번씩 일하는 우리가 한 번에 끝낸 건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buvif.bookshop/) 계정 만들기였다. 부비프라는 우리 책방의 이름을 땄다. 그런데 책방 이름이 처음부터 부비프는 아니었다. "이건 대박이 날 수밖에 없어!"라며 한껏 호들갑을 떨었던 이름은 사실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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