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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 Jan 18. 2019

이름이 대체 뭐라고

성북구 동선동의 작은 책방이야기<5>

대학 시절 친구의 이상형은 '이름이 예쁜 사람'이었다.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했을 때 친구가 가장 먼저 묻는 건 나이도, 성격도, 사는 곳도 아닌 바로 '이름'이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만나기도 전에 벌써 퇴짜를 놨다. 신기한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이 뭐가 중요해. 일단 만나봐." 스무살 무렵의 나는 그렇게 말했다.


지금은 그 친구를 얼마간 이해한다. 이름을 들었을 때 어쩐지 더 궁금해지는 책방이 있어서다. 반면 이름부터 호기심이 안 생기는 책방이 있다. 책방 이름을 지을 때, 끝없이 고민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부비프의 원래 이름은 '북덕방'이었다. 나름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1.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이던 복덕방처럼, 책을 매개로 모여서 소통하고 나누는 공간.      

2. 책을 사랑하는 북덕(book과 덕후의 합성어)들이 북덕북덕 모여드는 방.


우리는 북덕방이라는 이름에 말 그대로 '꽂혔다'. 친구 부부는 대박날 수밖에 없는 이름이라고 했고, 나중에 북스테이까지 도모해볼 수 있는 이름이라며 힘을 보탰다.

"북스테이, 그거 정말 우리가 하고 싶은 거야!"

그렇게 북덕방이란 이름 아래 책방 준비를 시작했다. 이름만 정해놓고 벌써 대박이 난 것처럼 신이 났다.

주로 이런 대화들을 했다.


"우리 책방엔 앉아서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

"좋지. 어떤 의자를 놓으면 좋을까?"

"어떤 의자에서 책 볼 때 집중이 제일 잘 돼?"

"음 난 지하철 의자. 주변이 시끄러운데도 은근히 몰입이 잘 돼. 그렇다고 지하철 의자를 놓을 순 없는데."

"변기를 놓는 거 어때? 난 화장실에서 책 보면 그렇게 집중이 잘 되고 좋던데."

"뭐? 변기? 대박이다. 북덕방에 변기 의자라니! 난리나겠는데!"

"다들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는 거 아냐? 우리 이색책방으로 유명세 탈 듯! 하하하"


부끄럽지만 이런 식이었다. 북덕방이란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상상했다. 그때 선다방을 재밌게 보고있던 그는 "북덕방에서 선책방을 하는 건 어때? 같은 책을 구입한 사람들끼리 책방에서 만남을 주선해주는거야!"라고도 했는데, 나는 감동한 눈빛으로 물개박수를 쳤다.(안타깝게도 책소개팅은 우리가 오픈하기 전에 '퇴근길 책한잔'이라는 책방에서 시작을 해버렸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상심했던가!)


내일을 그려보는 건 즐겁고도 신나는 일이었다.  어릴 적에야 스케치북 위에 되는대로 그림을 그려가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차 그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다, 이제야 비로소 걷고 싶던 오솔길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책방 이름은 부비프(Buvif)다. 그렇게나 꽂혔던 북덕방을 버렸다. 이름에서 풍기는 B급 정서가 우리의 것인가 자문하니 그건 또 아니었다. 게다가 북덕방이라고 하면 왠지 변기의자를 능가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기획해야할 것 같았다.(이게 참 부담이었다.) 책방을 열기위해 그동안 주워모은 가구나 소품도 북덕방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뒤 여러 이름이 각축을 벌였다.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이름은 두 가다.


- 무가당(茂佳堂) : 아름다움이 무성한 공간

- 진공서점 : 진심의 공간


이때만 해도 부비프는 후보에 없었고, 우리는 무가당으로 사업자등록까지 했다. 음료 판매를 위해 사업자를 다시 내기 전까지 부비프는 무가당이었다. 그런데 이 이름을 들은 지인들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인상을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뭐랄까,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책방 이름은 뭐야?"

"무가당이!"


그러면 꼭 3초 간의 정적이 뒤따랐다. 무가당이라는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두 부류의 반응을 보였는데,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옛날에 무가당이라는 댄스그룹이 있었는데."라고 했다. 젊은이들은 또 두 부류로 나뉜다. 가까운 지인은 "빵집 이름 아냐?"라고 했고, 조심스러운 사이엔 "베이킹 전문 서점인가요?"라고 물어왔다. 이쯤 되자 우린 회의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안건은 '무가당이 정말 맞느냐'였다. 이름만 들어도 가보고 싶은 책방을 만들고 싶었다.


장렬한 회의 끝에 선택된 이름이 부비프다. 부비프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그가 가장 처음 꺼낸 이름이었다.  

"부비프 어때?"

"부비프가 뭔데?"

"부다페스트, 비엔나, 프라하의 약자야!"

"...장난치지 말고 다시 생각해봐."


그때는 그렇게 그를 타박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글자가 예쁘고 발음이 마음에 들었다. 책방의 분위기와도 어울렸다. 수많은 이름들을 생각해낸 끝에 결국 처음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렇게 부비프가 됐다.


책방을 열고 이름을 잘 지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공간과 어울리고 흔하지 않아서 좋다는 칭찬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한다.


부비프가 무슨 뜻인지 물어오는 분들도 많아졌다. 처음엔 "부다페스트, 비엔나, 프라하의 약자예요."라고 했는데 "아. 별 의미는 없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요즘엔 조금 길게 설명한다.


"책방을 열기로 마음 먹고 동유럽으로 두 달 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가난해지기 전에 다녀오자! 그런 거였죠. 그 때 여행하면서 책방에 대한 계획, 고민들에 대해 서로 대화를 많이 했어요. 부비프는 책방을 열기 전 저희들의 고민을 뿌려놓고 온 도시들의 앞글자를 딴 이름이에요."

 

부비프는 경주에서 시작돼 부다페스트, 비엔나, 프라하에서 틀을 만들었고 지금은 성북구 동선동에서 매일 조금씩 커나가는 중이다. 단골 손님도 생겼고, 책방을 열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들었다. 특히 공간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감개가 무량하다. 배우들이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면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는데, 우리도 이럴 때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아아, 바닥공사. 전기. 조명. 수도!


셀프 인테리어만 생각하면 할 말이 많아진다. 비전문가가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려면 여간 골치아픈 게 아니다. 특히 조명은 별 신경도 안 쓸 만큼 우습게 봤는데 제대로 큰 코 다쳤다. 지금 부비프에 오시는 분들은 아늑하고 편안하다고 말씀해주시지만, 최초의 부비프는 정말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의 고문실과 똑...다. 앉아있으면 없던 죄도 만들어서 자백해야할 것 같은 아우라를 풍겼다. 그때의 난감함이란. 우리는 인테리어 공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지했지만, 조명에 대해선 몰라도 너무 몰랐다.

무려 전기공사가 끝난 뒤의 부비프. 책방인가 취조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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