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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tman Jan 02. 2023

순례자의 시작과 끝 Day 39

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Day 39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마지막 날이다. 산티아고를 향하는 마지막 날. 푸른 하늘이 드높다. 40일 전, 이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의 더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가을만이 남았다. 언제 그렇게 더웠는지, 더워서 쓰러질 것만 같았던 날들이 오래된 꿈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오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당도할 것이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걸었던 독일 아주머니 세분의 표정도 밝다. 환하게 인사하며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며 뿌듯한 듯 손을 들어 흔든다. 


오늘따라 시간이 빨리 흐른다. 이제 한두시간만 더 걸으면 산티아고다. 

곧 저 멀리 큰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파란 하늘 아래, 하얀 건물, 붉은 지붕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도시. 대단한 감격같은 건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언제 끝날지, 과연 끝까지 올 수 있을지 모른채 시작한 길이다. 그리고 이제 그 끝을 향해 마지막 걸음을 옮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는 성야고보의 유해가 있다고 전해진다. 9세기경 성 야고보의 묘 위에 교회를 짓고 그 이후에 여러번의 증개축을 해서 현재의 대성당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뛰어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이후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세계 3대 순례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다. 종교적인 이유로 순례를 떠난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처럼 종교와 무관하게 이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각자 다 다른 이유로 이곳을 찾고 또 걷고 그리고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길.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섰다. 많은 순례자들이 성당 앞 광장에 앉아 성당을 바라본다. 생각만큼 홀가분한 마음 같은 건 들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의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이 먼 길을 걸어온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시간에 따른 명확한 결과는 굵어진 두 다리와 까매진 피부가 전부다. 

천천히 산티아고 성당에 들어선다.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매일12시 정오에 열린다. 오늘 미사는 이미 끝난 시간이지만, 많은 순례자들이 성당 안을 둘러보고 있다. 성당 안 오른편엔 고해성사를 위한 작은 기도대가 놓여있다. 한 여성이 무릎 꿇고 앉아서 신부님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있다. 순례자이거나 여행객으로 보이는 그녀. 이 먼 곳까지 와서, 시끄럽고 붐비는 이 곳에서 그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간절한 무언가,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싶었던 걸까. 신부님은 고개를 낮추어 진지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신부님 앞에 무릎을 끓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그렇게 꺼내본 적이 있던가. 나 스스로도 들여다보지 않으려 애쓴 그런 마음을 신부님에게 꺼내 보일 수가 있을까. 그 누군가에게라도 난 그럴 수 있을까. 고해성사를 하는 그녀를 한참 동안, 내 뒷모습인양 바라본다. 


산티아고는 갈리시아 지방의 수도로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어진 큰 도시다.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종교적, 문화적 유산이 가득한 지역이다. 

예약해둔 호텔은 구시가지, 대성당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도 물론 순례자 숙소는 많다. 공립 알베르게도 시설도 좋고 규모도 매우 크다. 다양한 사설 순례자 숙소도 도시 입구부터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산티아고에서는 아무런 방해없이 며칠 푹 쉬고 싶어서 호텔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오래된 수도원을 개조한 호텔이다. San Martin Pinario Hotel, 호텔 예약 사이트를 이용해서 조금 저렴하게 예약했지만, 중세에 지어진 듯한 건물에 최신식 고급 호텔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호텔이다. 아침 식사도 포함되어 있으니 며칠 푹 쉴 수 있겠다. 

호텔 방에 들어서니, 수도사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돌벽으로 둘러싸인 방. 그리고 하얀 침대 하나. 


창문을 여니 수도사가 내려다 봤을 그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해가 기울 때까지 한참을 서서 창밖을 내다본다. 깊은 허전함과 맑은 슬픔이 밀려온다.



Distance: Amenal - Santiago De Compostela (18 킬로)
Time for walking: 9:00 am – 3:00 pm
Stay: 호텔
A thing to throw away: 배낭 커버 (비올때 덥는 배낭 커버. 비오는 날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더이상 쓸 일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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