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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ori Apr 14. 2017

역사를 가슴으로만 읽는 이들에게

나는 부정한다 (2016)


역사는 해석의 학문이지만 그 기본 뼈대에는 사실 관계 파악도 있다. 그러나 역사 논쟁에 참여하는 여론과 언론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역사를 수동적으로 인용할 뿐이다. 그럼 사회에서 유통되고 있는 역사는 모두 진짜일까? 역사적 팩트의 진위 여부는 누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좌: 어빙 역의 티모시 스폴, 어빙 본인 & 우: 립스타트 역의 레이첼 와이즈, 립스타트 본인)


영화 [나는 부정한다] (Denial)는 20세기 사의 대표적 역사적 팩트로 자리 잡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며 이름을 알리던 데이비드 어빙(David Irving)이 1996년 미국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Deborah Lipstadt)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어빙은 1960-1970년대에 독학으로 독일 제3제국 연구를 시작한 재야사학자로 1980년대부터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며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주장은 일부 극우/네오나치 세력들과 연계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서 학계와 언론의 따가운 비판 대상이 된다. 그 시대적 맥락 속에 탄생한 출판물 중 하나가 립스타트의 "홀로코스트 부인: 진실과 기억에 대한 공세 강화"이다. 어빙은 이를 자신의 연구 성과와 개인에 대한 명예 훼손이라며 립스타트와 그녀의 책을 출판하였던 펭귄을 고발하였는데, 바로 영화 [나는 부정한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곳 가스실에서 유태인이 학살되었느냐가 핵심 쟁점이다.


실제의 어빙은 영화 캐릭터보다 복잡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는 문헌 수집과 1차 사료 검토 부분에서 한때 적지 않은 사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바 있는 만만치 않는 연구자이다. 그를 이기기 위해 캠브리지 사학과 교수와 조교들, 영국의 호화 변호인 군단이 동원된 이유다. 역사 왜곡 증명의 책임이 변호인단에 있기도 했지만 '홀로코스트는 팩트다'라는 사회적 믿음이 역사 왜곡을 증명하는 근거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변호인단의 지적처럼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변론조차 역효과의 위험이 있었다. 역사적 사실 판단 여부는 어빙에 대한 분노의 감정과 개인의 경험담만으로 결정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좌: 재판에서 증언한 리차드 에반스 (Richard Evans) 캠브리지 역사학 교수 & 우: 립스타트와 호화 변호인단


대중에 자리잡은 역사를 조심해야하는 이유는 역사적 팩트의 생성 및 유지 과정이 종종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짜 김일성론"은 거짓임에도 북한 체제의 정통성을 깎아내려야 했던 시대적 요구 덕에 그 오랜 기간 엄격한 검증을 피하며 역사적 사실로 군림할 수 있었다. 언론과 대중이 습관적으로 인용하는 20만 위안부, 30만 남경대학살 또한 피해자 국가의 학자들이 잡은 높은 추정치일 뿐 학계는 여전히 그 수치를 가지고 다투고 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이 수치가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재생산, 재사용되는 것은 (그 수가 문제의 본질이 아님에도) 추정치를 낮출 때 반민족 친일파로 비난받을 정치 사회적 환경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질만하다.


우리는 홀로코스트 부정이 역사 왜곡이라 어떻게 아는 것일까. 우리는 영화의 시작지점부터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역사 팩트를 제조하려는 이는 어빙이라 이미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변호인단도 방청객도 관객도 홀로코스트가 사회적으로 통용되었기에 역사적 진실이라 '믿고' 있을 뿐, 사실 홀로코스트 부정이 역사 왜곡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역량은 없다. 대중은 자신들이 배우고 오랫동안 믿어왔던 역사가 진실이길 바란다. 그러나 믿음과 희망이 이미 벌어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아우슈비츠를 답사 중인 리처드 램튼 법정변호사


결국 어빙의 역사 왜곡을 파헤치는 것은 립스타트의 뜨거운 열정이 아닌 독어 책을 들고 제3제국을 공부하며 펜을 들은 법정변호사 리처드 램튼(Richard Rampton)의 차가운 머리다. 아우슈비츠 방문 중에 램튼은 애도하지 않는다. 고개숙여 추모하는 립스타트를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대신 아우슈비츠 수용소 구조 파악을 위해 주변을 걷고 가스실의 흔적을 살핀다. 재판 과정에서도 램튼의 변론에는 감성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어빙이 남겨둔 허술한 논리적 빈틈과 모순만을 집요하고 차갑게 파고들 뿐이다. 어빙을 이기기 위해 어빙을 읽고 독어를 공부하며 역사서를 읽었다. 왜곡된 역사는 열정이 아니라 연구와 논리로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된 역사도 열정이 아니라 연구로 세우는 것이다. 반면 역사 왜곡은 열정없이는 시작될 수도, 유지될 수도 없다.


결국 역사는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지, 감성과 신념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는 부정한다]가 어빙을 패소시키는 과정을 담으며 역사를 가슴으로만 바라보는 이들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나는 부정한다] 4월 26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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