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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ori Sep 22. 2017

신흥 핵보유국 북한의 다음 행보

국제안보 이론으로 가늠해보기


1. 
북한의 핵개발이 적대적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늦은 깨달음이다. 이미 완료된 북한 핵개발의 동기와 과정을 설명하는 가치와 북한의 핵포기는 당분간 물 건너갔다는 함의 정도만 남았을 뿐이다. 2000년대 초중반 이른바 핵잠재기(nuclear latency)에 북한 핵개발에 담긴 여러 ‘합리성’이 인정되었더라면 경제 제재 속도, 수위, 요구 조건, 양보 수위 등에 걸쳐 정책적 함의까지 있었을 터이다. 국제안보 이론이 핵개발은 대부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추구된다고 오래전에 정리를 한만큼 더 아쉬움이 남는다. 북한의 특수성을 강조하다 핵개발 동기와 핵무기 성격의 보편성을 놓친 꼴이다.



2. 
이제 우리가 묻고 답할 질문은 신흥 핵보유국 북한의 다음 행보다. 북한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설정된 전략환경에서 핵능력의 최적 용도를 찾을 것이다. Bell (2016)에 따르면 핵무기는 신흥 핵보유국에 여섯 유형의 기회를 제공한다. 즉, 신흥 핵보유국은 기존 분쟁에서 더 공격성을 띌 수 있거나, 새로운 안보 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 동맹력 강화 (핵보유를 통해 더 매력적인 동맹국이 될 수 있으므로), 자주적 외교 노선 추구, 기존 분쟁에 비타협적 자세 고지, 혹은 타협안 수용성 확대 등 내에서 여러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외교 행보의 폭이 넓어진다.


물론 북한은 핵을 통해 정권 유지와 내부 결속을 원하기 때문에 핵보유 이후에도 외교의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더 나아가 핵을 통해 정권 안보에 안정감을 느끼면 외부와 타협할 여지도 높아질 것이라던가 (Carlin & Jervis 2015), 핵이 억지 (deterrence) 효과는 탁월하지만, 상대에게 상황 변화를 요구하는 강압 (compellence)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에 (Sechser & Furhmann 2013) 한미동맹이 북한 요구를 들어줄 확률이 낮다는 등의 주장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희망사항일 뿐 (그러면 좋고) 외교전략의 시작점이 될 수 없다. 북한이 Bell이 얘기한 유형들의 다양한 조합으로 곧 미국을 상대할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는 문제가 있지만 이 유형들을 비롯한 관련 이론들은 언론에서 언급되는 많은 시나리오들보다 차분하고 정교하며 논리적이다. 또 역사적 예시들로 검증되고 있다. 이론은 맹신도 안되지만 무시도 금물이다. 북한의 다음 행보를 가늠하는 토론에 북한 전문가, 군사전문가뿐 아니라 (최근 급속도로 발전 중인 최신 핵안보 이론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안보 이론가들도 참여했으면 좋겠다.



3. 
또 다른 주요 질문은 북한의 핵전력 사용 여부다. 대부분은 김정은이 북한 정권이 완전히 소멸되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핵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낮게 본다. 간혹 핵전력으로 미국 서부를 볼모로 잡고 남침할 것이란 얘기도 들리는데 이 가능성은 희박하다. 성공 가능성도 희박할뿐더러 한국 점령에 성공하더라도 그 사후 관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합리적으로 핵사용을 고려할 상황은 북한이 공세를 전개할 때가 아니라 수세에 몰렸을 경우다. (Narang 2017; Carlin & Jervis 2015). 관련 이론은 미국의 선제공격 징후만 감지되면 북한에게는 군사적으로 핵공격을 감행할 합리적 이유가 생긴다고 본다.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의 것에 비해 수와 질 모두 절대적으로 열세라 누가 먼저 타격을 시작하느냐는 북한에게 100% 패배와 1% 승리 확률의 차이를 가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공격으로 시작하는 전쟁은 북한의 제한된 핵 및 재래전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시작하기 때문에 북한에게 매우 불리하고 그 패배가 확실하다. 반면 북한 선제공격 시 승리의 가능성은 여전히 낮지만, 미국 서부를 볼모로 잡고 미군 지원을 봉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있어 북한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준다. 후자는 여전히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이런 시나리오를 수행할 이유가 없지만, 북한이 (미국의 실제 의도와는 별개로) 미국의 선제공격이 임박했다고 파악하면 이 1%에 명운을 걸 이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김정은에게는 항복의 비용이 핵전쟁의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Sagan(1988)은 이를 "필사적 전쟁(desperate war)"이라 했다.



4. 
북한의 필사적 전쟁 유혹은 어떻게 막아야 하나? Sagan은 이 개념으로 일본의 진주만 기습과 같이 코너에 몰린 국가가 무모하고 파괴적인 결정을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결국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상대방을 의도치 않게 도발하지 않는 전력운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내 안보뿐 아니라 내 행동으로 인한 상대편의 안보 인식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력운용 통제는 상대가 핵보유국일 때 더욱 중요해진다. 게다가 미소 관계와 다르게 북미 간 상호 억지력은 비대칭적이다. 미국의 작은 도발 징후에도 북한이 과민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핵보유로 한반도의 억지력은 얇아졌다. 언론은 대북한 억지력이 부족해진 상황만 걱정하지만, 한반도 전력 균형을 비춰보면 미국의 과도한 억지력 확보와 공격적인 운용으로 북한을 코너로 몰지 않는 세밀한 전략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경우 그 시점이나 규모 조정을 통해 북한이 이를 선제 타격의 징후로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Sagan의 필사적 전쟁론은 말한다. 불편하지만, 그것이 북한이 핵보유를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전략환경이다.



5. 
워싱턴이 북한의 핵능력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면서 이제 북미 양국 모두가 핵을 들고 대립하는 새로운 구도가 시작되었다. 한반도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핵국가 간 안보 역학에 대해서는 냉전 시기에 많은 글들이 있었고 최근 들어 미중 관계를 주제로 관련 이론들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Talmadge 2017).


한반도에 대한 애정과 감정이 배제된 이론적 분석은 종종 어색하고 거북하다. 그러나 이론은 주요 변수를 차가운 언어와 정교한 개념으로 풀어내도록 강제한다. 이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진단과 해법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 신념과 정치색으로 결정된 결론에 논리를 끼워 맞추는 방법보다, 불편하고 번거롭더라도 논리적이고 계속 검증의 대상이 되는 안보 이론으로 해법을 찾아보는 것은 가치가 있고 유용한 작업이다. 신흥 핵보유국 북한의 행보, 북한의 핵전력 사용 조건, 핵전쟁 발발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방편 등등 북한의 핵보유가 새로 던진 질문들을 얘기할 때 조금 따분하더라도 (특히 최근에) 학계가 쌓아온 축적물들까지도 참고하면 좋겠다.


지난 한 달간 속절없이 한반도 위기를 쫗았다. 흔적이라도 남겨둬야 할 것 같아 긁적였다.





Bell, Mark S. “Beyond Emboldenment: How Acquiring Nuclear Weapons Can Change Foreign Policy.” International Security 40, no. 1 (July 2015): 87–119. 


Carlin, Robert, and Robert Jervis. “Nuclear North Korea: How Will It Behave?” North Korea's Nuclear Futures Series. US-Korea Institute at SAIS, October 2015. 


Narang, Vipin. “Why Kim Jong Un Wouldn’t Be Irrational to Use a Nuclear Bomb First.” Monkey Cage. September 8, 2017.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why-kim-jong-un-wouldnt-be-irrational-to-use-a-nuclear-bomb-first/2017/09/08/a9d36ca4-934f-11e7-aace-04b862b2b3f3_story.html?utm_term=.35cbb76e9f3b.


Sagan, Scott D. “The Origins of the Pacific War.”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18, no. 4 (1988): 893. 


Sechser, Todd S., and Matthew Fuhrmann. “Crisis Bargaining and Nuclear Blackmail.” International Organization 67, no. 1 (January 2013): 173–95. 


Talmadge, Caitlin. “Would China Go Nuclear? Assessing the Risk of Chinese Nuclear Escalation in a Conventional War with the United States.” International Security 41, no. 4 (April 2017): 5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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