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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ori Dec 10. 2018

일본 전쟁범죄 심판을 되돌아보기

Tokyo Trial  (2016)

일제 강점기에 대한 우리 기억은 분노로 차있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이 항상 당시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하지는 않는다. 또 우리의 일제 과거사 기억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순간에서 멈춰있다. 그래서인지 1945년 종전 직후, 당시 국제사회가 우리를 배제시킨채 일본 전쟁범죄를 심판한 과정에 대한 기억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전쟁범죄의 피해자는 우리뿐 만이 아니었다. 피비린내나는 지독했던 태평양 전쟁을 통해 일제의 전쟁범죄를 직접 겪고, 직접 꺾어낸 승전국도 있었다. 이들이 주축이 된 국제사회는 극동국제군사재판(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1946.5-1948.11)라는 임시법정을 통해 태평양전쟁의 전범 일본을 심판하였다. '도쿄 전범재판'으로도 불리는데 영화화된 것은 넷플리스 4부작 드라마 Tokyo Trial(2016)이 거의 처음이다. 독일 나치의 전쟁범죄를 심판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Nuremberg Trials, 1945-1946)이 이미 여러 영화에서 다뤄진 것과 대비된다. 도쿄 전범재판의 역사적 상징성에 비춰보면 뒤늦은 영화화는 분명 아쉽다.


복수인가 정의인가

전쟁 범죄 처벌은 복수일까 정의구현일까. 우리의 시각은 당시 다른 피해 당사자 및 승전국들의 것과 다르지 않다. 즉 복수가 정의구현의 핵심이기에 그 경계가 무의미하다. 그러나 1945년, 승전국은 이전에는 시도되지 않은 '재판'이라는 절차를 고안한다. 재판을 통해 최소한의 적법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여 1945년 이전에 성행했던 승자의 무자비한 정의라는 전후처리 방식과 차별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 대학살, 남경대학살로 대변되는 독일과 일본의 잔혹성이 전쟁이라는 특수적 상황을 감안해도 인류의 도덕성에 남긴 상처가 너무 크기도 했다. 아마 상식적인 법과 도덕의 틀 안에서도 충분히 처벌 가능한 명백한 범죄라고 보았을 것이다.


(좌) 법정에 앉아있는 일본의 A급 전범기소자들 (우) 도쿄 전범 재판에 파견된 11명의 판사.


재판의 목적은 세 가지다. (1) 끔찍했던 전쟁범죄를 단죄하고 (2) 미래의 유사한 전쟁과 전범을 예방하며 (3) 투명한 법적 절차와 논리로 심판하여 승자의 무자비한 복수가 아닌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심판의 선례를 남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승전국들의 의도와는 다른 긴장국면이 형성되는데, 바로 11개국 (미국, 중국, 소련,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네덜란드, 캐나다, 인도, 필리핀)에서 파견된 11명의 판사들 간의 이견 충돌이 발생하면서다. 겉으로 상호보완적으로 보이는 위의 세 원칙이, 그러나 실제로는 상호충돌했기 때문이다.


도쿄 전범재판은 A급 범죄를 다루는 재판이었다. A급 범죄란 '평화에 대한 범죄' 즉 침략전쟁의 죄를 가리킨다 (그 외 B급과 C급 범죄는 포로 학대 및 학살과 같은 '인도에 대한 범죄'로 해당 범죄가 벌어진 국가에서 처벌하기로 합의됨.) 11명의 재판관은 일본의 침략전쟁이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한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법관들의 한가한 법률논쟁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 논쟁은 침략전쟁은 역사상 늘 있어왔지만 법으로 처벌한 전례가 없어 논쟁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모두 침략전쟁의 과거가 있다. 이들도 악랄한 착취적 제국주의의 역사로 점철되어있다. 그렇다면 나치와 일제의 침략전쟁을 처벌할 근거는 무엇인가? (전쟁 중 벌어진 인도에 대한 범죄는 B급/C급 범죄로 다른 법정 소관이다, 침략 결정 자체만 기소대상임) 더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내린 결정의 책임을 개개인에게 물을 수 있는가? 공정한 심판의 원칙이 명백한 전범의 처리를 복잡하게 만든 형상이다.


영국 판사 Lord Patrick (패트릭 경)을 중심으로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출신 판사들은 처벌 근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전쟁을 금지한 1928년 파리 협정 (일본도 서명했다, 켈로그-브리앙 조약, Kellogg-Briand Pact), 일본이 항복조건으로 받아들였던 전범 처벌 조항을 포함한 1945년 포츠담 선언, 전범 처벌을 명시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바탕이 된 뉘른베르크 헌장 (Nuremberg Charter), 그리고 같은 내용의 맥아더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1946년 1월에 공표한 동경 헌장 (Tokyo Charter) 등이 있다. 즉, 일본의 침략행위는 1928년 이후 조인된 국제 협약과 법적 문서로 금지된 행위였기 때문에 '법적 처벌이 가능한 범죄'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들에게 이전까지의 전쟁과는 스케일이 다른 광기로 얼룩진 2차 대전의 전범 처벌의 정당성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그 논리의 반대에는 인도 판사 '라다 비노드 팔' (Radha Binod Pal)이 있다. 위 처벌 찬성파의 근거의 빈틈을 파고 든다. 팔 판사는 1928년 파리 협정은 침략전쟁 금지를 '선언'했을 뿐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위에 언급된 그 외의 문서들은 불소급 원칙에 따라 1937년 중국 침략, 1941년 대동아전쟁 결정에 적용 가능하지 않다고 논거 한다. 팔의 표면적 논거는 법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원칙을 바탕으로 하지만, 영화는 팔 판사 개인의 반서양제국주의 및 친대동아공영권의 성향도 짚어낸다. 팔의 법률적 논지는 네덜란드의 롤링 판사를 비롯한 일부의 호감을 얻기도 한다. 놀랍지 않게도 팔 판사의 A급 범죄 불성립 주장은 일본 우익들로부터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아베 총리의 2007년 인도 방문 때 팔 판사의 아들을 만나 많은 일본인들이 팔 판사를 좋아하다고 언급하며 문제가 된 적도 있는가 하면, A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팔 판사 헌정비까지 세워져 있다.  


야스쿠니 신사내 팔 판사 헌정비. 혹 방문한다며 신사내 박물관 관람을 추천한다. 일본 우익의 메시지를 적나라하게 관찰하기에 그만한 곳이 없기 때문.


국제체제와 전범재판

4부작 Tokyo Trial의 큰 줄기는 이 찬반 입장의 대결로 이뤄져 있다. 치열한 논쟁과 재판장 외곽의 정치로 팔 판사의 입장은 결국 최종 판결에 반영되지 않는다. 1948년 11월 12일 내려진 최종 판결에서 평화에 대한 범죄, 즉 A급 범죄로 기소된 28명 (군부 인사 18명, 정치인 9명) 중 재판 중 죽은 2명, 정신 이상 진단을 받은 1명을 제외한 25명 전원이 유죄를 선고받는다. 이중 7명은 교수형을 선고받고 1948년 12월 23일 형이 집행되었다.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팔 판사의 좁은 법 해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답답하게 들린다. 2차 대전 직후라는 특수한 맥락과 전쟁을 예방하자는 시대적 요구는 애써 외면한채 원리주의자가 성경다루듯 법문에 매몰되어 있다.


영화 속 도쿄 전범 재판의 판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화기애애할 때도 있지만 치열한 공방도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팔 판사가 재판 과정 내내 잃지 않았던 법리적 일관성이 던지는 무거운 주제도 있다. 국가 간의 영역을 어느 선까지 법으로 통제, 규정할지에 대한 질문이다. 무엇보다 국제체제는 국가 간 이해/전략 관계가 복잡하고, 국가 간 힘도 비대칭적을 분포되어있다. 또 국제체제는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국가 위의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다. 역사적으로 국가 간의 행위를 심판할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고 현재의 국제법도 국내법 수준으로 포괄적이지도 강제적이지도 균형잡히지도 못한 이유다.


결국 도쿄 전범재판과 같은 당시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재판의 향방은 국제체제의 논리와 힘을 더 반영할 수 밖에 없었다. 도쿄 전범재판소에서 수년간 치열한 법리적 공방이 이뤄지지만 11명 판사가 지니는 파워는 각 판사의 논리적 근거보다 결국 이들의 출신국의 파워와 더 일치하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피해자인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아시아 피해 국가의 입장은 아예 빠져있다. 팔 판사의 A급 전범 무죄 주장을 막아냈다고 도쿄 전범재판에 박수를 쳐주기에는 힘없던 신생 독립국의 씁쓸한 현실도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무거운 역사 기억하기

2016년 첫 출간된 도쿄전범재판 속기록의 번역본, 'A급 전범의 증언'


Tokyo Trial은 범접할 수 없이 커다란 주제 앞에 서서 무거운 역사의 책임을 짋어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러 무거운 주제를 피할 수 없지만 Tokyo Trial(2016)은 역사의 시각화와 드라마화만이 잡아낼 수 있는 각종 묘사 장면들로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곁다리 재미도 있다. 1940년대 후반 전후 직후 패전국 일본의 시대상과 인물들이 풍기는 미묘한 분위기, 재판관들 간의 작고 큰 알력 다툼은 물론이고, 통역만 사용하는 소련 측 판사라던가, 재판정 밖에서 판사들의 사교생활, 숙소와 식당의 모습과 같이 무거운 역사를 만드는 과정 주변의 소소한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바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깊이 배여있는 반일 감정을 무색케 하는 도쿄 전범재판에 대한 한국인의 무지와 무관심이다. 이 재판의 속기록은 2016년에서야 처음 한국어로 번역될 정도로 잊혀져 있었다 ("A급 전범의 증언"). 이 과정이 생소하다면 Tokyo Trial(2016)이 간간히 다루는 일본 전범과 변호인들의 논리도 흥미로울 수 있다. 따지고보면 우리는 일본 전범들이 어떻게, 어떤 절차와 근거로 1948년 유죄를 선고받았는지, 관심조차 없이 1945년 이후의 시대를 살아왔다.


이제 일제를 절대악으로 치부하고 기억을 정리하는 일차적 접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Tokyo Trial에는 국제체제의 성격, 전후 시기 새 질서 구상의 정치, 일제의 전쟁 범죄 피해와 처리의 국제적 맥락 등 일제 강점기 시기를 한일 양국관계로 국한짓는 우리가 놓치는 다양한 측면이 담겨있다. 우리는 20세기 중반 전후 국제사회의 다차원적 미묘한 역사를 분노의 감정으로만 채워온 것은 아닐까. 일본의 과거 기억이 아직도 동아시아 정치를 흔드는 오늘, 한국은 일제 강점기와 이후의 역사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이해가 누락된 분노는 모래성같이 허약할 뿐이다.


Tokyo Trial은 일본 NHN에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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