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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ori Feb 08. 2017

영화와 역사의 대화

랜드 오브 마인 (2015)


영화도 역사와 대화한다. 상흔이 짙게 남는 전쟁을 표현할 때 특히 그렇다. 전쟁에 대한 영화의 일차적 정리는 승자의 영웅담과 패자의 철저한 악마화 위주로 이뤄진다. 승자가 원하고 패자는 반박할 수 없는, 전후 시대가 강제하는 해석이다. 시간이 흘러 그 전쟁의 승패가 사회 내부와 국가 간 관계의 지배적 기준점이 아니게 되면, 비로소 사람도, 사회도, 국가도 그동안 숨겨놓았던 전쟁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영화가 그중 승전국의 가해자적인, 그리고 패전국의 피해자적인 측면까지 마침내 묘사해 낼 때, 사회와 영화의 전쟁 기억도 점차 완전해진다.



[랜드 오브 마인] (2015)은 아직도 진행 중인 이 대화의 연장선에 있다. 영화는 2차 대전 종전 직후 덴마크의 한 해변에 깔려있는 4만 5천 개에 달하는 지뢰의 해체 작업에 차출된 독일 소년병의 행군 모습으로 시작한다. 어린 포로를 동원한 지뢰 처리 방식은 상당한 불쾌함을 야기하지만 당시 시대상 앞에 무기력하게 수용케 된다. 혹 현재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들은 독일인잖아"라는 대사로 소년병들의 굶주림, 폭행, 죽음까지도 마땅하던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상기시켜주며... 마침내 해체 작업이 시작되고 소년병 포로들은 지뢰의 불예측적 살상력 앞에 서서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이어가게 된다.

 

[랜드 오브 마인]은 독일인도 전쟁의 피해자였다는 기존의 시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연합군의 비도덕성, 폭력성이라는 다소 낯선 주제를 다룬다. 독일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소련이 저지른 대규모 약탈과 강간은 비교적 알려져 있으나 이 역시 연합군의 상대적 도덕성 우위를 과시하는 예시 정도였을 뿐, 연합군의 범죄 행위는 학계에서조차 최근까지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을 정도로 생소한 영역이다. [랜드 오브 마인]은 소년 포로라는 약자에게 자행된 삐뚤어진 앙갚음을 서슴없이 폭로하며, '승자와 패자'가 아닌 '강자의 횡포와 약자의 무력함'이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1945년 5월 직후의 유럽을 평가한다. 그래서 당시 유럽이 '해방과 자유의 공간'이었다는 현재의 집단적 기억은 지극히 일차원적이고 부분적이며 그리 도덕적이지도 못하다라고 외치고 있다.  





영화는 그동안 묻혀있던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어 인정하고 반성하며 역사와 대화한다. 이 대화의 탄생은 2차 대전의 경험과 결과가 유럽에서 지니던 지배적 힘이 대부분 사라졌다는 방증이지만, 아직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있음도 암시하고 있다. 결국 영화와 역사의 대화는 현재의 바로미터이고,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 목록이다. 이 소년 포로병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영화와 역사의 대화'가 1945년의 잊혀진 과거 기억만이 아닌 현재 우리 이야기이라 일러주고 있다.




Land of Min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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