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시즌의 미니멀라이프
좀 느리긴 했지만, 우리회사도 3차 팬데믹을 겪으면서 점차적으로 재택근무 비중을 늘려나갔고 지난 12월부터는 대부분의 팀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일과 생활의 분리가 굉장히 중요한 나에게, 집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역이었다. 집에 앉아있다보니 집중도 안되고 자꾸 집안일이 눈에 들어와서 자꾸 자리에 앉아있질 않고 엉덩이를 떼는 나를 발견. 안 되겠다 싶어서, 12월 중순 부터는 코로나 홀영업 금지로 임시 휴업을 하고 있는 우리 카페 구석탱이에 혼자 출근을 해서 업무를 했다. 집에서 나가는 행위만으로 일단 주거공간과 분리가 되고, 안쓰는 모니터도 갖다 두니 회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1월 한파가 몰아치면서 내 생각이 바뀌었다. 혼자 있는 카페에 온풍기를 full로 틀어두는 것도 자원낭비이고, 아무리 틀어도 사람의 온기가 없으니 (손님이 꽉 차면 확실히 훨씬 따뜻하다) 발이 시려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결국 노트북을 싸들고 다시 집으로 컴백했다.
동료들과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재택이 길어지면서 하나둘씩 '템'들이 늘어났다.
가장 많이 사는건 책상과 의자. 사실 사회생활 하면 집에서 책상 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책상을 처분한 분들이 많았나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커피머신. 캡슐커피머신이 회사 내에 유행처럼 번저 1인 1머신이 될 지경이다. 마지막으로는 홈웨어. 팬데믹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홈웨어, 츄리닝 시장이 급성장한듯? 외출복을 사도 소용이 없으니 이쪽으로 발길을 돌린 패셔니스타가 참 많고, 인스타에서도 너무 많은 신상품들이 눈에 보인다.
나도 처음 재택을 시작했을 땐, 내 방에 작은 책상을 하나 살까 고민했었다. 우리집엔 테이블이라고 불릴 수 있는 녀석이 1개, 좌식테이블이 1개 있는데 나의 '작업실'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이 있으면 더 일이 잘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집에서 덩치 큰 물건을 더이상 들이면 집과 우리가 답답증을 느낄 것이고, 어차피 재택은 한시적일텐데 그 시기 안에 책상을 사려면 마음에 쏙 드는 녀석을 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빈티지 테이블을 사고싶었거든...) 결국 이뻐해주지 않는 애물단지가 될 것 같아 집에 있는 테이블과 좌식테이블로 잘 써보자고 결심.
오늘의 나의 업무공간은 거실. 남편이 외부로 출근하는 날에는 거실에서 일을 하고, 집에 있는 날에는 내 방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 (빛을 사랑하는데, 내 방은 침실이라 가장 어두워서... 2순위 업무공간이다) 좌식테이블이라 이동성이 뛰어나서 가능한 일. 일이 끝나면 거실 테이블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줘서, 잠자는 시간 빼고는 더 밀도있게 자기 일을 해내는 녀석이 되었다.
두번째, 커피.
얼마전 글에도 적었지만 3년전에 사둔 저렴한 그라인더와 드리퍼로 커피를 내려서 출근한지 3개월이 넘었고, 이 이상의 머신은 필요하지 않다는걸 깨닫고 있다. 원두 마저 없을 때에는 찬장에 고이 쌓인 차들로 아침의 몸을 깨워주고 있다.
링크 : 미니멀리스트의 새로운 모닝 루틴. 아침 차 우리기
세번째, 옷.
연말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따뜻한 소재의 조거팬츠를 하나 샀다. 작년부터 사고 싶었는데 회사에 입고 가기가 좀 그래서(?) 망설이다 말았는데, 팬데믹도 길어지고 이 덕분에 왠지 재택근무가 끝나고 조금은 더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으로.
웬걸, 사고나니 일주일 내내 단벌 신사처럼 조거팬츠만 입고 다니게 되더라. 역시 편안함과 따뜻함이 주는 힘이란... 그렇게 편안한 옷에 빠지게 되었고 연초에 평소에 찜해두었던 다른 브랜드의 조거팬츠도 주문을 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지 주문폭주가 되었고 배송까지 2주가 소요된다고 했다. 기다리지 뭐~ 하고 잊고 있었는데, 어제 문득 생각해보니 2주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 배송이 안되었더라.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하니 아직 배송준비중이라고 떠 있네. 이 참에 조거팬트 두 벌이 정말 필요한지 자문해보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녀석을 입을 때 내 패션이 아주 이쁘고 스타일리쉬해질 것을 기대하진 않았다. 고로 다른 디자인으로 두 벌을 소유할 필요는 없었고, 이미 구매한 조거팬츠는 세탁과 건조가 엄청 빨리되는 소재라 주구장창 입는데에도 큰 불편이 없을 것이다. 사실 회사를 가게 되면 이 옷'만' 주구장창 입을래야 입을 수도 없을꺼구.. (힝)
그렇게 환불에 성공했다.
나중에, 재택이 상시화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가 된다면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나의 작업공간은 분명 별도로 필요할 것 같다. 회사에서 제공해주던 많은 집기들도 슬슬 필요할 꺼고... (뭐가 있었는지 딱히 생각은 나지 않지만..) 하지만 이렇게 긴급한 상황에 시행되는 재택근무는 내가 지금 가진 것들로도 너무 충분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얼마전부터 전일 재택근무가 끝나고 순환근무를 하고 있다. 생각보다는 빠르게 돌아온 출근라이프가 아직 피곤하지만, 재택 환경 조성에 큰 예산과 노력을 들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