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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츠이너프 Mar 14. 2021

안쓰는 향수로 디퓨저를 만들어 보았다.

미니멀리스트라고 무조건 버리지 않기. 방치된 물건들에새 생명불어넣기.

나의 맥시멀리스트 남편은 회사원 시절 향수 마니아였다. 해외여행을 갈 때 면세점에서 꼭 향수 하나씩은 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지금은 나의 엄청난 잔소리 때문인지, 물욕이 사라진 건지 더 이상 향수를 사지는 않고 있는 걸 열심히 뿌려주며 소진하고 있다. (사실 있는 것만 잘 뿌려도 앞으로도 3년은 안 사도 될 것 같은데...)


사실 나도 향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지만, 몸에 뿌리는 향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주로 향초나 인센스 등 태우는 향을 좋아하며, 공간에 향을 더해 주는 것을 즐기는 편. 그래서 향수는 선물 받은 것 외에는 내 돈을 주고 산 적은 거의 없었는데, 아무래도 남편의 영향을 받다 보니 미니멀 라이프가 시들하던 시기에는 꼭 멀티 퍼퓸을 하나씩 샀더라. 양심이 있어서인지(?) 내가 향수로 이 한 통을 다 쓰지 못할 걸 알고 있어서 주로 룸 스프레이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멀티 퍼퓸을 샀다는 게 좀 웃기네. 


아무튼 그렇게 사둔 룸 스프레이가 3개 정도 되는데, 역시나 끝까지 사용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다. 주말을 맞이해 뭐 비울 게 없나 하고 넓지도 않은 집안을 한 바퀴 돌다가 발각된 녀석. 어차피 사용하지도 않는데 내용물을 버리고 비울까- 하다가, 얼마 전 화장실에서 묘하게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 때문에 디퓨저를 알아봤던 기억이 났다. (신축빌라인데... 왜때무네..)


화장실에는 늘 선물 받은 디퓨저를 비치해 두었는데, 얼마 전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디퓨저 용액이 생명을 다해 처분한 이후로는 무향(+하수구향..)의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다. 디퓨저를 돈 주고 살 정도까진 아니라는 생각에 며칠 지나면 괜찮아 지려니- 하고 버티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단두대에 올라간 이 녀석에게 새 생명을 더해주자.


그랑핸드의 멀티 퍼퓸. 그래도 향이 너무 좋아서 3분의 2 이상은 사용했다. 다른 코스메틱 브랜드의 향수는 뚜껑 열기가 매우 힘든데, 이 녀석은 일반적인 스프레이 공병이라 돌리면 바로 열림!


그리고 디퓨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불현듯 생각난 고급(?) 젓가락. 배달 음식을 아-주 가끔 시켜 먹는데, 그때마다 늘 일회용 젓가락을 빼 달라고 요청해도 꼭 넣어주는 가게가 있다. 그냥 버리면 정말 그대로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거라 어딘가 나눔 할 곳이 있을 때 드리려고 모아두는데, 그중 뽀개지 않아도 되는(?) 동그란 고급 나무젓가락이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사실 예전에도 '안 쓰는 향수로 디퓨저 만들기' 등을 검색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드스틱, 디퓨저 공병, 디퓨저 베이스(?), 알코올 등을 사야 한다는 글을 보고 배보다 배꼽이 큰 것 아닌가 싶어 포기했었는데, 미니멀리스트의 필요에 걸맞게 준비물과 레시피를 수정하면 추가로 무언가를 채울 필요 없이, 지금 서랍 속에 잠자는 물건들에도 얼마든 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준비물이 완성되었다. 좋은 향을 갖고 있지만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멀티 퍼퓸, 그리고 우드스틱을 100% 대체 가능한 고오급 나무젓가락. 만들고 나서 미니멀라이프 카페를 보니, 집에 있는 산적 꼬치를 깔끔하게 잘라서 사용하시는 분도 계셨다. 역시 배우신 분들. 미니멀리스트라면, 절대 안 쓰는 향수를 디퓨저로 만들기 위해 우드스틱을 주문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마시오...!


향수 뚜껑을 열어주고, 입구에 젓가락(우드스틱)을 꽂아주면 허무하게도 완성이다. 용액이 스틱을 타고 올라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소요되는데, 나 같은 경우 1시간 정도가 지나고 보니 젓가락에 용액이 잘 스며들어 발향하고 있었다.


내가 사용한 향수는 아주 심플한 디자인의 향수병이지만 (나는 이런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안 쓰는 일반 코스메틱 향수들을 보면 그 자체가 정말 이쁜 디자인인 경우가 많다. 네이버에 검색해 보면 일반 향수들의 뚜껑을 여는 방법도 많은 블로거들이 잘 소개해주고 있으니, 잘 개봉해서 그 자체를 디퓨저 보틀로 사용하고 우드스틱을 꽂아주면 근사한 디퓨저가 될 거다.


내 개인적인 느낌 상, 기존 디퓨저용으로 나온 제품에 비해서 발향력이 조금은 약한 것 같다. 향수를 산지 오래돼서 일 수도 있고, 디퓨저의 농도가 원래 향수보다 진한 농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화장실이라는 협소하고 폐쇄된 공간에서 발향되길 원했기 때문에 오히려 진한 기존의 디퓨저 향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여러분도 화장대에 잠자고 있는 방치된 향수나 스프레이가 있다면, 배달 음식 사이에 끼워져 있던 젓가락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연을 맺은 물건들이 끝까지 멋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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