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집도 1년 전부터 알아보는 공간집착러의 야무진 꿈
틈만 나면 앵무새처럼 말하고 다녔다.
내 취향이 엄청 듬뿍 담긴 공간을 10년 안에 만들어낼 테니 기대하라고. 집이든 가게든 뭐든 만들어서 너희를 초대할 거고 그 공간의 팬을 만들 거라고.
인테리어 안목이 있으신 엄마의 영향 덕분에, 어릴 적부터 백화점보다는 작은 소품샵을 구경 다니는 일이 많았다. 비싼 브랜드 가구나 오브제는 사지 못했지만 작은 유리컵 하나도 치열한 토너먼트와 절대적 기준을 통과해야 우리 집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런 엄마의 영향인지 나도 자연스럽게 공간에 대한 취향이 꽤 빨리 완성되었다. 결혼할 때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공간에 관심을 갖고 18평자리 아파트를 셀프로 꾸며내면서부터 내 입맛에 맞는 공간에 산다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네이버 리빙, 오늘의 집, 핀터레스트,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SNS 등 혼자 있는 시간에는 열심히 엄지로 스크롤해가며 온라인 눈호강하기에 바빴고, 주말만 되면 남편을 끌고 이쁜 카페나 샵을 투어 하는 것이 나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현실은 내 명의의 집 하나 없는 전세살이 개미 직장인이었지만, 공간에 대한 내 애착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대단히 센스가 있거나 혁신적이거나 하진 않았지만 원하는 취향이 매우 뚜렷해서 2년마다 돌아오는 전세 만기로부터 무려 1년 전부터 다음 집을 알아보는 열정을 보였다. 내 집이 아닌 곳에 사니 인테리어를 할 수 없기에, 최대한 눈에 거슬리지 않는 집을 찾으려면 1년 전부터 손품을 팔아야 했던 것이다. 그 정도로 병적이었다.
사실 한 3년 전인가.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살까 고민했었다. 부동산의 투자가치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저 내 입맛에 맞는 집을 디자인하고 싶어서. 미래를 담보 잡혀 현재를 불행하게 살기를 거부하는 남편 덕분에(?) 그 꿈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때 본 아파트가 몇억이 올랐더라...?)
어쨌든,
내가 원하는 대로 뜯어고쳐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데. 10년 안에 만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정말 10년 채워서 마흔 언저리에 만들 수 있게 되려나. 나쁘진 않은데. 10년 동안 약간 모자란듯한 공간에 만족하면서 남의 공간 투어 하는 걸로 만족을 해야 하나.
내가 가진 작고 소중한 자본으로 좀 더 빨리 해볼 순 없을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