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가 있을 때 빨리 해보고 미련을 버리자. 빨리 해보고 빨리 망하자.
아름다운 공간을 열심히 서치하고 감탄하며 눈 호강하는 것으로 행복감을 열심히 충전해주었지만,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도 이에 질세라 눈덩이를 열심히 굴려주고 있었다.
토요일 낮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서도 월요일 출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나날들이 계속되었고, 이는 나의 소소한 행복감을 매몰시켜버리기 일쑤였다. 일단 살고 보려면 이 거대한 눈덩이부터 피해보자. 도피 반 성장 반을 위해 처음으로 경력직으로 이직을 했다.
기대보다 연봉 협상도 잘 되고, 직급도 레벨 업 해서 새로운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처음 몇 달은 룰루랄라 새로운 회사의 복지와 워라밸을 누리며 즐겁게 다녔으나, 멘탈이 약해진 채로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지다 보니 결국 몸과 마음이 바사삭 부서졌다. 역시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급히 변화를 시도하는 건 꽤 위험한 일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체감해버렸다. 그래도 존버해야지, 너 아직 퇴직금도 못받아! 라고 꾸역꾸역 버티던 어느 날.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모니터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머리가 팽팽 돌았고 그날 나는 바로 조퇴를 하고 2달간의 병가를 시작하게 되었다.
동네 내과에서도, 대학 병원에서도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맘 편하게 지내는 게 최고예요~라는 처방을 남겨주신 교수님 잊지 못해... 현대 직장인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삶을 살아가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결국 어릴 때부터 가던 한의원에 오랜만에 가서 위가 거의 멈춰버려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한의원을 들락날락거렸다. 일반적인 한약의 흡수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의 위장이라 꽤나 고생을 했다. 입원이나 수술 한 번 하지 않고 30년이 넘는 인생을 살아온 내가 두 달 병가라니. 아직 30대 초반인데. 갑자기 굉장히 불안해졌다. 이러다가 지금처럼 영영 빌빌거리면서 남은 100세 시대를 보내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는데. 남편과 머리를 싸매고 주말마다 이쁜 카페에 앉아 치열하게 고민해가던 사업 아이디어 노트 중 단 하나도 실현해보지 못했는데.
이번엔 열심히 치료해서 낫는다고 하더라도, 언제 또 고꾸라질지 알 수 없는 인생. 내가 10년 후에 무언가를 해서 망하는 것보다는, 지금 해보고 망해야 회사에서 다시 돈도 벌고 회복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일단 내가 하고 싶은걸 당장에라도 해봐야겠다. 모든 걸 걸지 않는 선에서. 망해도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만. 앵무새처럼 말하던 '내 공간 만들기'를 '모든 걸 걸지 않는' 선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없을까.
침대에 누워 쓰린 위를 부여잡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공간과 관련된 모든 콘텐츠를 흡수하던 그때의 DB를 하나씩 꺼내어 떠올려보았다.
음. 모든 걸 걸지 않고, 몇 달치의 월급 정도를 모으면 만들 수 있는 내 공간이 있었네? 심지어 소소한 용돈도 벌 수가 있다고 했었어. 부업으로도 많이 한다고 하지 않았나?
유레카를 찾은 듯하다. 갑자기 위 통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