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자기의 시작 / 핸드빌딩 수업
도자기 정규클래스를 듣기 위해 공방을 다시 찾았다.
미리 원데이 클래스로 수강해 보길 잘했다.
사실 두 시간 남짓한 원데이 클래스는 나의 재능 발휘 보다 선생님의 도움이 돋보이고, 수업이라기보다 하루짜리 경험에 가까웠다.
그래도 이 경험이 내가 도전 할 수 있는 취미인지 가늠하는 데에 꽤 도움이 됐다.
딱히 미적 감각이 좋은 편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개성 있고 예쁜 도자기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흙을 만지던 손끝의 촉감과 잡다한 생각에서 벗어나 그저 코일링 하나하나가 잘 쌓이고 잘 붙어있기만을 바라며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잊히지 않았다.
그 잊혀지지 않는 감각 덕에 4주짜리 정규클래스를 덜컥 시작했다.
첫 원데이클래스를 마치고 나름 컨셉도 정했다.
남들이 들으면 고작 수업 한 번 들은 애가 무슨 컨셉까지 생각하나, 하며 코웃음치겠지만 '취미 = 도자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만의 취향이 담긴 도자기를 만든다면 조금 더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실력은 어린아이보다도 못하겠지만 나만의 방향을 가지고 더해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정해진 컨셉은 <전통주 테이블웨어>, 이름은 <호자기>
먼저 내가 만든 그릇이 어떻게 쓰이면 좋을지, 어떤 음식을 담으면 좋을지 고민했다. 도자기가 한식과 어울린다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특별함을 조금 더 더하고 싶은 욕심에 전통주를 떠올렸다.
전통주와 어울리는 그릇을 만들기로 했으니, 전통주에 관한 공부도 차차 시작해 볼까 한다.
일단은 도자기부터!
그리고 내가 만든 도자기에 <호자기> 라는 이름도 붙이기로 했다. 별명이 호랑이라, 호랑이 손으로 만든 도자기라는 의미를 담았다. 물론 밑바닥에 내 이름을 새겨 넣는 단계는 한참 멀었지만. 내가 만든 도자기에 이름 하나쯤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컨셉과 이름까지 지어놓으니 다시금 마음이 설렜다.
지난 몇 년간 정말 멋 없게 무기력한 생활을 보냈다. 한창 커리어를 다듬고 성장할 시기에, 내 경력은 보기 좋게 단절됐고, 그렇다 하여 다른 무기를 장착하려는 욕심도 내지 않았다.이직할 에너지는 더더욱 없어 지난날을 후회하고, 심지어 남 탓까지 하고, 한 마디로 건강하지 못한 삶이었다.
진흙탕에 빠져 있다고 이대로 가라 앉길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지금보다 더 괜찮은 삶을 살길 바라고, 잡고 일어설 것이 있으면 손을 뻗고 싶지 않을까.
나 역시 그렇다. 지지부진한 날은 좀 치워버리고 좀 더 건강하게 살고 싶다.
호자기가 가져다 준 이 설렘이 쉽게 증발해 버리지 않도록 오래도록 꽉 붙잡아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