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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로이 Jun 23. 2018

[몬트리올] 우연한 만남은 운명 #2

몬트리올에서 만난 두 예술가 이야기

나는 별로 합리적인 사람이 못된다. 어떤 상황에 대해 선택을 할 때 나에게 어떻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가져올 다른 결과를 염두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나 인연-혹은 그 반대로 운명이나 인연인 줄 알았는데 그저 평범한 우연이었던 것에 불과했을지라도-을 꽤 믿는 편이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을 낭만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몹쓸 허세가 있다.

1.
몬트리올은 축제의 도시다. 길고 우울한 겨울이 지나면, 도시는 짧은 봄, 여름, 가을을 미친 듯이 즐겨야겠다는 사명이라도 있는지 축제로 가득하다. 마침 내가 몬트리올에서 시간을 보내던 2017년의 3월은 '제35회 국제 예술영화제(International Festival of Films on Art)'가 열리고 있었다. 캐나다, 퀘벡 그리고 세계 각국의 예술 영화들을 초청하고 경쟁하는 이 영화제는 몬트리올 시내 전역의 영화관에서 즐길 수 있다.

대부분의 영화가 저녁에 상영되기 때문에, 저녁 영어수업이 있었던 나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이 시작되기 전날의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온라인을 통해 나에게 적절한 상영작들을 고르고 티켓을 미리 사두었다. 나에게 적절한 것이라 함은 1.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 음성 또는 영어자막이 되는 것.  2. 그렇게 심각한(?) 예술적 분위기가 아닌 것.  3. 시놉시스가 마음에 드는 것.



이렇게 기준을 두고 고른 시간대의 작품은 <FOUR FACES OF THE MOON>이라는 애니메이션, <WHO IS ODA JAUNE?>이라는 다큐 필름이었다. 뭐, 시작은 시간도 때울 겸 영화나 한편 보아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상영작이었던 <WHO IS ODA JAUNE?>이 나에게 전혀 상상치도 못한 감동을 주었다.



<WHO IS ODA JAUNE?>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쩌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그것이 싫다면 아래 내용은 권하지 않겠다.



2.
Oda Jaune이라는 예술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이 영화를 봤다. <WHO IS ODA JAUNE?> 제목이 그러했으니까. 내가 미리 Oda에 대해 알고 가면 영화를 다 봐버린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인터넷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지도 않았다. 시놉시스에 간단히 적혀 있는 것은, 파리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그녀를 따라 그녀의 무의식 속 세계를 살펴본다는 뭐 그런 정도.


https://youtu.be/lTQFsN3At-8

<WHO IS ODA JAUNE?>  TRAILER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Oda는 여느 예술가처럼 엄청 예민한 사람이구나', '소녀와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다', '독일어가 매력적이다', '아주 예쁘신 분이구만', '작품들을 거의 내면세계와 의식의 흐름으로 그리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야', '또 여기도 파리네'. 뭐 이 정도. 음 특별히 크게 와 닿은 것은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소녀와 같은 찬란하고 순수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3.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던 중 영화 속 분위기가 갑자기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변했다.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인터뷰였다. Oda의 표정이 조금 변한 듯했다. 하지만 사생활도 결국 Oda는 누구인가를 찾기 위한 필수적인 주제니까. 그런데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Immendorff. 응? 뭐라고? 내가 어제 미술관에서 본 그 Jörg Immendorff? 오 이런. Oda는 Immendorff의 아내였던 것이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예술 아카데미 Kunstakademie에서 사제지간으로 만난 Oda와 Immendorff는 30년이 넘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Immendorff는 루게릭병을 앓다 2007년 사망했으며, Oda는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었다. 슬하에는 딸이 한 명 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뭐 그런 이야기.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은 두 사람의 예술 세계이다.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Immendorff에 내가 빠지게 된 것은 그의 작품에 담겨 있는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 때문이다. 전후세대, 냉전시대, 민족분열, 자본의 성장 등을 통해 그가 경험한 사회와 그 속의 인간성을 표현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좋았다.

하지만 그에 반해 Oda의 세계는 의미를 찾기 힘들다. Oda 스스로도 자신이 어떤 것을 그리고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떠오르는 것을 그려낸다.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고-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때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사랑스러운 작품들.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러한 무한한 상상력과 궁금증을 사랑한다.


4.
Michaela Danowska는 예술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녀의 언니는 가족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를 이미 운영하고 있다. Michaela는 또 다른 Danowska가 되고 싶지 않았다. Michaela는 한 남자와 결혼 한 뒤, Michaela Immendorff가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모두가 이미 Immendorff만을 알고 있다. Michaela는 Immendorff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Michaela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녀만의 이름을. Michaela는 마침내 Oda Jaune이 되었다.



내 얕은 지식으로 두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렇게도 다른 예술 세계를 가진 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단 하나의 진실한 사랑을 경험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Oda는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 대상이 적어도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그 남자가 아니진 않겠지. 어쩌면 자신의 취향, 의식, 세계 등의 따위는 사랑 앞에서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우리 영혼의 흔적(The arts is traces of our soul)'이라고 답하는 그녀. 적어도 그것에 두 사람은 공감했을까. 연이은 이틀 사이에 우연하게 내가 만난 Jörg Immendorff와 Oda Jaune.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나는 이런 걸 운명이니, 낭만이니 하는 것으로 느낀다. 이들에 대해 더 궁금해진다. 갑자기 독일에 가고 싶다.


- 29th March, in Mont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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