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다이어리를 사고 삼일절이 오기도 전에 처박아두기를 반복하는 나를 보며 다이어리를 사지 않은지 꽤 되었다.
근데 올해 2024년에는 다시 일기를 쓰고 싶은 마음에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또 새하얀 아까운 종이만 쌓아두게 되는건 아닐지 걱정도되고, 쓰던 다이어리나 재활용해서 쓸것이지 하는 마음도 들지만 다이어리 재활용하다가 옛날습관도 재발할것 같아서 새마음으로 새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다이어리가 없어도 좀 특별했던 날들은 sns에 올리고,일상은 금방사라지는 스토리로, 약속들은 카카오톡 스케줄, 핸드폰 기본앱을 통해 체크하고, 일 스케줄은 사무실 달력에 기록하면서 매일매일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돌이켜보면 내 삶은 동그라미나 별표가 그려진 몇몇 날들, 단편적인 사진 몇장들로 채워져 있고 그외는 텅 비어버린 날들뿐인것 같았다. 이건 단지 하나의 나열된 스케줄일뿐,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어떤것은 전혀 아니었다.
사진들 속 그 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 날 그 약속에서 나는 누구를 만나 무엇을 배웠는지, 내 취향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전혀 적히지 않았다.
먹음직스러운 사진들속 음식들은 그냥 분위기가 좋아서 찾아갔던 비슷한 곳들처럼 비슷한 맛을 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걷던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산뜻한 가을날의 밤공기를 좋아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어깨에 기대 눈을 감고 창문틈 사이로 들어오던 바람과 햇살을 맞는 것이 좋았다. 생각보다 더 많이 걷게 되었던 날 먹었던 떡볶이 한입을 아직도 잊을 수 가 없다. 그런날은 사진 몇장으로 그날의 약속을 동그라미친것으로 남길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기록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런날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지겠지. 누군가 묻는다면 난 희미해진 기억 대신 SNS에 올린 몇몇의 사진들중 하나를 가리키며 난 이걸 좋아해 라고 대답하겠지.
기억하기 위해선 기록이 필요하다. 이 브런치가 그 기록을 대신해줄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혼자 간직하고 싶은 나의 감정 느낌들이 있다. 그건 나만의 작은 종이뭉치에 기록하고싶다.
어른이 되면 저절로 어른스러운 글씨체를 갖게 될줄 알았지만 여전히 삐뚤빼뚤 못생긴 글씨체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다이어리마저 쓰지 않는다면 더더욱 이 글씨체를 마주할 기회가 없어진다. 글씨체 하나조차도 저절로되지 않는데, 단지 시간이 흘렀다고 저절로 쓸만한 어른이 되었다고 자만하게 되는 나를 돌아볼 기회가 될 것 같다.
역시 저절로 되는건 하나도 없구나 인생이라는건 이라고 읊조리며 더또박또박 바르게 쓰기를 노력하며 뚜벅뚜벅 어제보단 바른 길로 나아가는 나의 삶이 되기를, 그런 바람을 갖고 다이어를 펼친다. 적는다. 오늘의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