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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란 Sep 05. 2019

덴마크 대학원의 신입생환영회

노병은 죽지 않았다.

8월 22일, 23일 이틀 동안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병아리가 되었다. 집, 아이들 유치원/어린이집 위주로 맨날 보던 얼굴들만 보던 내가 백 명 가량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어지간히 힘든 일이 아니겠나. 그래도 가기 전엔 막연하게 걱정도 되었으나 다녀오고 나선 오히려 앞으로 2년 학교생활에 자신감도 생겼다.


준거집단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삶에 굉장한 동기부여가 된다는 걸 새삼 느낀다. 또한 피나는 노력 (?) 끝에 따라올 결과가 달콤하기에 이또한 안정감을 준다. 자존감도 두 말 할 것 없이.


총장이라고 하면 되려나, 석사생 500명을 앞에 두고 입학 축하 연설을 하는데 요지는 이랬다.


덴마크에서 IT인력이 너무나 부족하고, 요새 산업계에서 가장 선호하는 대학교가 ITU이다. 인력부족 현상은 2030년도에는 더 심해질 것이다.
IT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든, 처음 이 쪽에 발을 들이든 잘 한 결정이고,
쉽지 않은 공부겠지만 끝날 때는 분명 미래가 있다.


IT와 테크놀로지에 관한 타고난 관심이 있어서 택한 진로가 아니라, 부끄럽게도 이도저도 해보다 잘 안 되고 마지막 동아줄을 잡고 택한 길이기에 내게는 얼마나 큰 위안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이후 학과별로 나눠져서, 내가 속한 과의 학과장의 환영인사가 있었는데 요지도 비슷했다.


중도포기자가 생기는 건 안타깝지만, 당연히 중도포기하는 자들이 생길 것이다.
덴마크에서, ITU에서 가장 야망있는 과라고 보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2년동안 석사 레벨로 컴퓨터사이언스를 가르쳐야 하니까)


덴마크의 다른 석사 프로그램들을 보면, 3학기에 인턴을 가든 교환학생을 가든 제2전공(마이너)을 하든 여러 옵션이 있는데 내가 속한 과는 그런 융통성을 부릴 여유가 없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이 와중에도 군데군데 교환학생을 갈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가 느끼기에 아직 상황판단이 덜 된 애구나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냥 2년간 딴 눈 팔지 말고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닥치고 해라는 말인 것 같더구만...


오리엔테이션 동안 참 다양한 사람들도 많구나 느꼈고, 뿌듯한 점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고 한 번씩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는 점이다.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아싸"로 살아온 나에게 새로운 사람들과 선을 넘어 친해진다는 건 언제나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오리엔테이션 동안 받은 느낌은, 이 길을 택한 사람들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높은 비율로 나처럼 내향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어울리기는 하되, 미친 듯이 어울려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들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안도했다. 수수한 차림의 사람들도 많았고 말이다. (경영대학원을 다닐 때는 참 도시적이고 이기적인 애들도 많았다.ㅠㅠ 고려대는 말도 말고...) 사람 이름 외우기는 힘들었다. 내게는 마티아스, 모튼, 라스무스 전부 비슷비슷한 이름이니까 말이다.


나는 내가 만 나이로 서른이니 혹여 나이가 제일 많을까봐 조금 걱정했었는데,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물론 평균보다는 많은 축에 속했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 뒤늦게 학교로 돌아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선생님을 하다가 온 사람이 세 명, 방송국 일, 군인 둘(유엔평화군으로 남수단에서 이 학교 지원서를 썼다는 얘기를 들었다 ㅋㅋ), 해양엔지니어 등등. 물론 학사 졸업 후 바로 석사를 시작하는 만 22살들도 있었다. 배경도 다양, 국적도 다양(생각만큼 다양하진 않았다만), 개강 2주차인 지금까지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지금까지 뭐하다가 여기 와있는지 자기 소개를 하는 게 빠질 수 없다. 다행히(?) 서양인들에게 동양인의 외모는 무지 동안이기 때문에, 아무도 날 내 나이로 보지 않았고, 많아봤자 스물다섯 같아보인다는 뿌듯한 말들을 들으며 집에 있는 아이들(+남편)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서양 사회에서 나이는 한국 사회에서만큼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기서도 과연 나이만큼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잣대가 없는 것인지 다들 쉽게 물어보더라.


정말 이틀간의 짧은 시간동안 몰아서 새로운 사람에 대해 피상적으로 안다는 게 소모적인 일 같지만, 이를 통해 신기한 사람들도 만났다. 네덜란드인 아저씨는 자기 브라더가 한국여자랑 결혼해서 대구에 살고 있어서 결혼식할때 대구 갔었다고 나한테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사족으로 내 고향이 대구고, 나도 결혼식을 대구에서 했었다. 그리고 내 결혼식 때 이상하게 모든 손님들이 내가 "네덜란드" 신랑을 만나서 곧 "암스테르담"으로 살러 간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직도 덴마크와 네덜란드를 희한하게도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진짜 대구에서 네덜란드 사람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알고보니 내 덴마크어 학원 선생님 딸인 친구도 만났고 말이다. 참 좁다.


무언가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하고 싶다는 야망이 있는 자도 있었고,

막연히 인류학이나 수학 같은 다른 취업이 어려운 공부를 하다가 때려치우고 선회한 자도 있었고,

확실한 전문 분야가 있는데 일하다보니 자연스레 소프트웨어 개발의 필요성을 느껴 공부를 하기로 한 자도 있었다.


나는 글쎄, 내 배경을 설명하면서도 사실 이 공부를 통해서 내 인생을 "리셋"하고 싶다는 속마음은 쉬이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학교 지원할 때에는 배경에 더해 코딩실력이 있음 이런 비전이 있다고 다소 부풀렸다.) 사실 더이상 내 과거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지금 주어진 기회를 살려, 여기에서 내가 속할 공간에서 또 내 일을 하는 작고 착실한 안정적인 삶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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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애들 여섯명과 내가 한 그룹이었던 적이 있다. 로봇에 간단한 프로그램을 짜는 반나절 활동이었는데, 나 때문에 애들이 영어를 쓰는데, 그게 괜히 내가 불편해서 그냥 덴마크어로 지금부터 말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나를 고려해서일까 알아먹겠는 속도로 말하더니, 말에 속도가 붙으니 글쎄 신이 나서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덴마크어에 집중해야했다. 이렇게 오티를 하고 금요일 밤에 집에 왔더니 혼자 중얼거릴 때 덴마크어가 나도 모르게 나오더라는;; 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2년간 내 덴마크어의 향방이 좌지우지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일하면서 말을 따로 배운다는 게 힘들테니까. 덴마크어를 하면 확실히 내게 선택지가 넓어질 텐데 그렇다고 이미 공부할 내용도 많은데 덴마크어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사치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좀 친해진 덴마크 애들한테는 부탁하고 있다. 1:1일 때는 제발 덴마크어로 말해달라고. 알아듣는 노력을 해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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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랑은 관련이 없지만 이후 ITU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니까 성비를 맞추려고 많이 노력했는 게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여자가 너무 적다는 점을 적폐(?)라고 여기는 게 신선했다. IT를 막연하게 "너드" 남자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애초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에게 이 쪽 진로를 보여주고자 많이 노력한다고 한다. 백그라운드가 없는 사람들을 모아두고 공부시키는 우리 과도 그 덕인지 올해 역대 최고로 50% 여자로 채웠다고 한다. 이런 바람 덕택에 나도 뽑힌 것 같아서 또한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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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교육 프로그램들을 모두 한꺼번에 비교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https://www.ug.dk/vaerktoej/uddannelseszoom/#!/

여기서 관심있는 학과 이름을 넣으면, 실업률 / 소득을 비롯한 굉장히 실용적인 정보들이 나온다. 진작에 왜 몰랐을까 싶은 사이트이다...


진짜 생각했던 것보다 소득도 정말 높다. (초년생이 평균 4만 크로네라는 건 진짜 높은 것이다. 경영대학원 다니고 졸업했을 때는 대기업을 들어가면 3만 정도라고 했었다. 외국인 후려치기 하는 곳에 입사한 사람들은 3만도 못 받았던 걸로 안다.) 실업률은 3%로라고 하니... 진짜 웬만해서는 실업자 하기가 어렵다는 것 아닌가.


다시 한 번 졸업을 할 수만 있다면 먹고 살 걱정은 없을텐데 하는 각오를 다지고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덴마크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내 손에 가진 카드가 하나도 없다가 갑자기 내 손에 조커 카드가 여러장 들어온 것 같아서 꿈같다. 그냥 이 조건과 환경에 감사할 뿐이다. 힘들어도 놓지 말고 이 년만 더 고생하자. 서럽고, 머리는 터질 것 같고, 억울하고, 땅을 치면서 울 일들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이땅에서 나도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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