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란 Oct 21. 2019

취업박람회를 다녀와서

덴마크 IT 회사들을 만났어요.

벌써 3주가 지난 일이다.

학교에서 커리어 주간이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내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은 회사들이 부스를 열고 학생들을 만나는 취업박람회였다.


낯선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것도 내가 상대에게 정보를 얻고 연락처를 얻는 입장이 되는 것은 여간 뻘쭘하고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타고나길 그렇다. 


'나는 소프트웨어개발 "석사" 과정이지만 이제 발을 들인 초보 1학기 학생인데, 이사람들이 그점을 알까? 과연 나랑 이야기를 하려고 할까?' 그것도 두려웠고 말이다. 


하지만 취업박람회 전날 학교에서 열린 취업박람회 준비방법에 관한 세미나를 다녀오며 정말 내 태도가 많이 바뀌었고, 취업박람회 날에도 내가 목표했던 것 이상을 이뤘다. 회사들은 기꺼이 우리 같은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몇 백만원을 내고 오는 것이었고, 우리에게 지식을 기대하는 건 별로 없다고 했다. 이학교 졸업생을 선취하는 게 힘들기에 사람 괜찮은 재학생을 파트타임(스튜던트 워커)으로 미리 채용하고, 논문 프로젝트를 회사와 함께 하고 그러려고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날 세미나에서 정말 중요하게 배웠던 포인트는, 내가 무엇을 배우는지, 배웠는지 시시때때로 기록해두는 것이었다. 개강하고 한 달동안만 봐도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데, 한 학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지금 (10월 1일 기준)을 되돌아볼 때는 "그때 기껏 기초적인 것만 했었지." 하곤 만다는 것이었다. 졸업할 때 되서는 말도 못하고 말이다. 졸업하고 취업 원서를 쓸 때 첫학기 때 뭘 배웠지 생각하려면 몇 개 생각나는 것도 없게 되며, 또한 그쯤 되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들 같은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고 그 중에서는 내가 특출난 능력 하나 없이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미리미리 이땐 이런 걸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노라 기록을 해두는 게 좋다고 한다. 

이게 학교 커리어 카운슬러 분이 보여줬던 슬라이드인데,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Unconscious incompetence)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는 아나 할 줄 모르는 상태(Conscious Incompetence)로, 거기에서 무엇을 할 줄 아는지 확실히 알고(Conscious Competence)에서 결국엔 무엇을 할 줄 아는 지 모르는 상태(Unconscious Competence)에 다다른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한 엘리베이터 피치(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잠깐 동안 자기 소개를 할 수 있듯) 정도로 그다음날 회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내용을 5분간 적어본 후 5:5 마주서서 1분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옆으로 자리를 바꿔 또 같은 이야기를 하고 하는 것을 다섯번 반복했는데, 정말 말은 할수록 늘었고, 내 앞에 선 사람의 말하는 자세나 그 사람의 듣는 태도 등을 통해서도 처세를 배워 그다음날 준비에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날 학교에 오는 회사의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미리 학교에서 배포한 자료에 내 과, 덴마크어 불필요, 스튜던트 잡, 논문, 풀타임 잡 등 회사에서 요구하는 조건의 체크리스트가 있었기에 미리 회사 조사를 하는 게 가능했다. 나는 이날 학교 수업보다도 오롯하게 세시간 동안 내 리스트에 있던 회사들과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목표로 뒀다. 옛날 같으면 학교 공부를 최우선에 두었겠지만, 이젠 학교 밖에서의 경험이 학교만큼 또는 더욱 중요하리라 믿고 행동한다. 


회사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최소 세 명인데, 한 명은 HR, 한 명은 졸업생, 한 명은 (시니어)현직자 이런 구성이었다. 나는 일류 컨설팅(액센츄어, 딜로이트, EY) 이런 쪽은 가보지 않았고,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 전공이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회사를 찾아갔는데, 정말 이 스티커 하나만으로 내가 환대받는다는 걸 몸소 느꼈다. 그리고 모두 나같은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러 온 사람들이다보니 정말 많은 걸 가르쳐주고 싶어서 안달난 듯한 태도도 느꼈다. 정말 나도 원없이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볼 수 있었다. 물론 이날 나도 나름 준비해간 게 많았으니 대화가 이어졌으리라 생각하는 점도 있다. 


이날의 배움.


1) 일류 컨설팅 회사에 갈 것이 아니라면 학점이 중요하지 않다.

2) 준비된 후에 스튜던트 잡을 구하려는 생각을 말라. 파트타임을 통해 배우는 게 훨씬 크다.

3) 지식을 기대하는 건 별로 없으니 무조건 부딪혀가면서 배워라.

4) 가장 잡을 얻기 용이할 것 같은 분야는 데이터 사이언스다. 그렇지만 어떤 쪽으로 더 세부전공을 하든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다. 지금 당장 어떤 분야에 뛰어들어야지 하기 보단 2+3 에 더해 일을 통해서 하나씩 해보면서 점점 커리어 플랜을 확장하는 게 좋다.

5) ITU 수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머신 러닝이었다.(졸업생이라고 소개한 사람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코스가 있는지 다 물었던 것 같다.)


이날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과는 모두 링크드인 연결을 했고, 그다음날 메시지를 보냈다. 예전 같으면 남이 내게 다가오길, 남이 나의 가치를 알아봐주길 기다렸을 테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대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쪽에 아무런 연고도 없고 지식도 없는 내가 맨땅에 헤딩을 하는건데 몸사려서 되겠는가 싶다.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이 좀 정리가 된 부분은,


1) 난 대기업 쪽이 잘 맞을 것 같다. - 중견, 소규모의 IT 회사보다는 전통적인 산업(비IT분야의 IT 부서)이 잘 맞는 핏이라 느껴졌다.

2) 덴마크 회사들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참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를 나눴는데, AWS만큼이나 Azure를 쓰고 있는 회사가 많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날 취업박람회에서 남편의 학교 동기도 만났고, 우리 윗집 아저씨도 만났다는 점이다. 모두들 깜짝 놀라며 "너 여기서 뭐해?"라며 물었다. 참 작은 나라이기도 하고, 나도 학생쪽이 아니라 부스 안에 서있어야 더 적합한 나이인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모두들 공부 새로 시작한 것, 너무 잘한 선택이라며 물어볼 게 생기면 언제나 연락하라며 응원을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이 날 이후로 나는 다음학기에 정할 세부전공을 내가 따로 만드는 모험을 시작했다. 분야는 데이터 엔지니어링이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데이터 아키텍쳐에 집중해서 이쪽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점점 더 안개가 걷히고 목표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스튜던트 잡을 열심히 구해볼 차례다. :)




작가의 이전글 지난 3주간 학교생활 회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