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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eltist Jun 18. 2023

천카이거 '패왕별희'

覇王別姬, Farewell My Concubine, 1993

<패왕별희>의 주인공을 찾아서



5세대 감독 천카이거


<패왕별희(覇王別姬)>의 감독 천카이거(陈凯歌)는 장이머우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제5세대 영화감독이다. 5세대 감독들은 팔십 년대 중반에 등장했으며 비슷한 어린 시절, 특히 문화대혁명과 같은 역사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 또 북경영화학교에서 함께 수학하며 서양의 영화미학을 학습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전의 영화들이 이데올로기 선전용 영화였다면 5세대의 영화는 중국사회를 묘사함과 동시에 검열 속에서도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때문에 외국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중국 내에서는 정부의 탄압을 받았다. 


천카이거는 1952년 베이징에서 영화감독 아버지와 시나리오작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홍위병이 되었고, 윈난성에서 군생활도 했었다. 이 시기의 경험,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의 경험은 그의 영화관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홍위병이었던 천카이거는 군중 속에서 과거 국민당이었던 아버지를 고발한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경험은 <패왕별희>에 고스란히 녹아들게 된다. 


천카이거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평이 많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오리엔탈리즘과 지나친 형식주의에 빠졌다는 목소리도 있으며, <패왕별희> 이후에는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계속 추락했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에 세계 영화계가 중국영화를 재조명하게 만들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극, 소설, 그리고 영화


최초의 <패왕별희>는 작자 미상의 경극희곡이었다. 초한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초의 패왕 항우와 우희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이르러 우희는 마지막 주연을 베풀고는 자살하였고, 항우도 끝내 자결하였다는 결말의 이야기다. 초연 당시에는 항우를 중점으로 한 극이었으나 이후에는 우희를 중점으로 여장남자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극으로 바뀌었다. 


1985년에는 홍콩의 작가 리비화(李碧華)가 영화의 전신이 되는 소설 '패왕별희'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192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격변기의 중국을 배경으로 경극 <패왕별희>를 공연하는 경극배우들의 삶을 다룬 소설로, 경극 속의 인물들과 경극을 연기하는 배우들, 그리고 경극과 현실을 내외부로 구분지어 다루는 액자식 구성을 사용한 작품이다. 


1993년에는 천카이거의 영화 <패왕별희>가 제작되는데, 원작자 리비화도 영화 각본에 참여했다. 장이머우의 <인생>과 비교했을 때 더 다양한 미장센과 여러 상징을 감상할 수 있어 같은 세대 작가임에도 다른 스타일의 작품성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과 영화 사이에는 다른 점들이 몇 가지 있다. 홍콩 작가가 썼다는 점에서 소설은 중국의 전통인 경극의 의미와 공산당 비판이 강조되는 반면, 중국에서 제작된 영화판은 당의 비판보다 인물간의 갈등에 조금 더 무게가 실려 있다. 결말의 경우, 소설에서는 우희가 죽지 않는데 영화에서는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 여담이지만 하루는 리비화의 소설을 다루는 세미나에 장국영(张国荣)이 참석했는데 그는 세미나에서 소설 속 데이를 두고, 소설에 죽는 것은 나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역시 자살했을 거라고 예상하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는데, 리비화는 당시 장국영의 깊이 있는 해석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고사 속의 우희는 강력한 욕망의 소유자로 패왕 앞에서 죽음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완성했다. 그리고 <패왕별희>의 원작 소설에서는 데이가 죽지 않는 것으로 끝났지만 나는 그 소설을 읽었을 때에도 데이가 결국은 자살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데이는 절대적인 미와 예술을 추구하는 인물로, 늙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름다운 우상인 채로 자신의 삶을 끝내려 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장기 : 근대에서 현대로


아이의 손가락을 자르는 엄마, 경극배우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과 체벌, 어른에게 강간당하는 어린 배우. 아동학대와 아동성폭력 및 성매매, 그리고 동성애. 영화는 도입부부터 많은 화두를 던진다. 


제1차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근대 사회가 태동하고, 대량생산으로 자본주의가 팽배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특히 노동자와 아동의 인권 침해가 주목을 받게 된다. 또한 극심한 양극화와 자본가의 독점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생겨나게 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공산주의가 확대되었다. 


근대 사회에서 성장기 아이들에 대한 학대는 당연시되었고 교육이란 이름 하에서는 더욱 정당화되어왔다. 근대의 스승은 절대적인 존재다. 뎨이와 샤오러우도 경극학교에서 (물리적 폭력으로 인해 실제로) 피나는 훈련을 거쳐 유명한 경극배우가 된다. 그러한 폭력은 두 사람에게 뼛속 깊이 각인되어, 연로하여 기력이 쇠한 스승의 폭력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훗날 뎨이는 같은 방식으로 양자 샤오쓰를 교육한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중국에 들어왔고 샤오쓰는 자라면서 공산주의에 매료되었다. 샤오쓰는 이러한 체벌이 범법이라며 스승 뎨이에게 반기를 든다. 시대가 바뀌었다. 



후원은 없고 거래만 있다


어린 시절의 뎨이는 경극을 후원하는 장 내시로부터 강간을 당했다. 뎨이가 성인이 된 후, 부유한 경극후원자 원 대인은 뎨이를 흠모하여 추파를 던지고, 뎨이는 샤오러우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자 원 대인을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에 나타난 후원자는 장 내시와 원 대인 두 사람 뿐이지만, 이는 관객에게 보여지는 극소수의 사건일 뿐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씬 외부의 시공간에서 뎨이는 경극을 해나가기 위해 어릴 적부터 숱하게 성상납을 강요받았을 것이다. 그것이 당시 경극을 해나가는 우희들의 운명인 것이다. 


후원자라는 시스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문은 학자와 예술가, 음악가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러한 지원을 통해 르네상스 예술의 부흥에 이바지하였다. 물론 후원은 단순한 자선사업이 아니다. 좋은 후원자라고 해도 후원자는 후원하는 나름의 목적이 있다.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는 후원자가 없으면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후원자의 힘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후원자의 후원 목적이 불순한 것일지라도, 후원의 대가가 성상납이라 할지라도 지속적인 후원을 원한다면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돈이 없으면 경극을 할 수 없고, 경극 안에서 패왕과 우희로 존재하기 위해서 뎨이는 성상품으로서 자신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했다. 물론 이러한 잘못된 후원 문화는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현대의 연예계는 스폰서와 성 접대 문화로 오염되어 있고, 이것이 아물어 터진 것이 장자연 사건이다. 



경계의 안과 밖


뎨이에게 있어 경극과 우희는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켜내야하는 세계이자 정체성이다. 시대가 흐르며 관객이 변해도 뎨이는 여전히 우희로 남기를 바랐다. 샤오러우는 극과 현실을 분리하여 현실에서는 다른 여자를 찾지만 뎨이는 현실에서의 뎨이와 극 안에서의 우희를 동일시하여 현실에서도 여성성을 드러내고 샤오러우를 사랑한다. 샤오러우에 대한 사랑, 경극, 예술이야말로 그의 존재 기반이다. 


뎨이는 어릴 적에 홍등가에서 자라며 여자아이처럼 길러졌다. 게다가 외모도 곱상하여 경극에서는 여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경극학교에서 끊임없이 여성성을 강요당하지만 그럼에도 뎨이는 남자로서의 성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며 저항했다. 뎨이가 비구니 역할의 대사를 계속해서 틀리는 장면이 이를 나타낸다. 하지만 샤오러우가 뎨이의 입속에 난폭하게 담뱃대를 넣어 쑤신 뒤로는 대사를 틀리지 않고 여자 역할을 해내게 된다. 그때부터 샤오러우를 향한 뎨이의 호감은 여성성을 띄게 된다. 


뎨이가 여성성을 수용함으로써 성인기에는 삼각관계가 만들어진다. 뎨이는 샤오러우를 사랑하지만 샤오러우는 홍등가의 창녀 쥐셴과 서로 사랑한다. 뎨이는 쥐셴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쥐셴도 이를 감지하고 뎨이를 경계하게 된다. 뎨이의 사랑을 동성애로 볼 수 있을까? 또 원 대인의 경우에도 동성애로 볼 수 있을까(애초에 거세를 당한 남성인 원 내시는 논외로 하겠다)? 물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본다면 경계를 확실하게 그어 단정 짓는 일이 쉽지 않다. 


뎨이는 경극 속 우희의 역할에 몰입하여 여성성을 띄는 인물이다. 극 속의 우희는 여성이고 뎨이는 여성으로서, 우희로서 샤오러우를 사랑하고 있다. 경극 애호가인 원 대인의 경우도 뎨이가 연기하는 무대 위의 우희에게 빠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극과 현실의 경계는 모호하며 오히려 극 속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게 자리 잡는다. 두 사람에게 있어 뎨이는 우희이고 여자이다. 말하자면 <패왕별희>는 동성애를 다룬 영화라기보다는 극이라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영화에 가까워보인다.



공산당과 문화대혁명


영화에는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가 남아있다. 영화의 흐름은 공산당의 집권을 기점으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원 대인은 처형당하고 경극은 위기를 맞게 된다. 뎨이의 우희로서의 정체성에도 위기가 오고 뎨이의 후계자이자 양자인 샤오쓰는 홍위병이 되어 경극의 대가 끊기게 된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뎨이와 샤오러우를 비롯한 경극배우들은 거리의 홍위병들에게 인민재판을 당한다. 


어릴 적의 샤오러우는 강인한 남자였다. 어린 경극 수련생들의 두목 격이었으며 경극에서는 패왕의 역을 맡았다. 또 술집에서 불량배들로부터 사랑하는 여인 쥐셴을 구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의 과정에서 샤오러우는 뎨이를 팔아넘기고 쥐셴을 배신하여 자살하게 만든다. 극 속의 항우는 한없이 나약하고 슬픈 운명을 지닌 왕으로 묘사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샤오러우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사면초가의 현실 속에서 경극이라는 전통과 함께 몰락하게 된다. 



장국영과 히스 레저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뎨이와 샤오러우는 두 사람만의 경극을 공연한다. 뎨이는 샤오러우와 함께 어린 시절의 비구니 노래를 부르며 남자로 돌아온다. 뎨이는 마지막 패왕별희를 공연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이 죽었다. 

<패왕별희> 제작을 위해 천카이거와 장국영이 처음 만난 날, 장국영이 말했다. 


“나야말로 뎨이에 적격인 사람이에요. 나는 항상 예술 속에서 살고, 내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바로 뎨이예요.”


천카이거는 그 말을 웃어넘겼다. 그랬던 그가 영화 속에서 충격을 받은 장면이 있었다. 인력거에 탄 뎨이가 일본군에게 둘러싸이는 장면이었는데, 촬영에 들어가고 장국영이 탄 인력거의 덮개를 들추는 순간 장국영의 입가에 번진 연지는 마치 피를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장국영의 눈빛에 담긴 절망과 비애가 그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영화에서는 뎨이가 울지 않는데 장국영은 촬영이 끝난 후에도 뎨이의 감정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계속 울고 있었다. 천카이거는 그때 비로소 처음 만난 날 장국영이 자기가 청데이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천카이거가 말한 입가의 연지가 피처럼 번진 장면에서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떠올랐다.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는 조커를 연구하기 위해 홀로 호텔방에 틀어박혀 배트맨 만화책을 쌓아 놓고 읽으며, 조커의 심정에서 일기를 쓰고, 자학을 하면서 조커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하려고 했었다. 연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가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역이라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다크나이트>를 촬영하고 얼마 후 히스 레저는 약물 오용으로 사망했다. 영화가 개봉된 후 관객들은 조커에 동화된 듯한 그의 연기에 감탄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장국영과 히스 레저는 타고난 연기꾼이었다. 연기에 대한 무서운 집중력과 태도, 경계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패왕별희>의 주인공 뎨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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